"수원 화성행궁 개관을 고합니다"… 119년 만에 되찾은 '정조의 넋'
복원 완료에 따른 우화관·별주 개관식 개최
이재준 수원시장 "마침표 아닌 새로운 시작"
- 김기현 기자
"수원 화성 우화관과 별주를 중건하고 개관합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실정을 어여삐 여겨 항상 보위해 주시옵소서."
(수원=뉴스1) 김기현 기자 = 24일 오후 2시 50분 경기 수원시 팔달구 남창동 화성행궁 화령전 운한각에서 '고유제' 가 열렸다. '화성행궁 복원 완료에 따른 우화관·별주 개관식' 행사의 일부다.
'화성행궁 개관'을 천지신명과 정조대왕에 알리기 위해 마련된 이날 고유제는 윤여빈 성균관전례연구위원의 인도로 치러졌다.
헌관을 맡은 이재준 수원시장은 운한각에 들어와 손을 씻고 정조대왕 어진 앞에 꿇어앉은 뒤 향을 3번 살라 연기를 하늘로 날려 보냈다.
이 시장은 이후 집사로부터 제주(청주)를 채운 술잔을 받아 머리 위로 들어 올렸고, 집사는 이를 다시 받아 신위전에 올렸다.
그리고 이 시장 왼편에 꿇어앉은 집사는 정조대왕에 화성행궁 '우화관'과 '별주' 중건을 알리는 축문을 낭독하기 시작했다. 그 사이 이 시장은 엎드려 예를 표하기도 했다.
이 시장은 축문 낭독이 끝난 뒤엔 집사를 따라 운한각 밖으로 나와 4번 절하며 정조대왕을 송신하고 고유제를 마무리했다.
이를 지켜보던 시민 안영자 씨(69·여)는 "1975년부터 수원에서 살아왔는데 늘 화성행궁이 온전치 못해 마음이 아팠었다"며 "수원시민의 자부심이자 자랑인 화성행궁이 본래 모습을 되찾아 너무 기쁘다"고 말했다.
화성행궁은 제 모습을 잃기 시작한 1905년 이후 119년 만에 완전히 복원됐다. 복원 사업을 착수한 1989년 이후 35년 만이기도 하다.
화성행궁은 1789년 정조대왕이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를 수원부 읍치 자리(화성시 융릉)로 이장하고, 신읍치를 팔달산 기슭으로 옮기면서 건립한 곳이다.
그러나 1905년 우화관에 수원공립소학교가 들어서면서 파괴되기 시작했다. 1911년엔 봉수당이 자혜의원으로, 낙남헌이 수원군청으로, 북군영이 경찰서로 이용됐다.
또 1923년에는 일제가 화성행궁 일원을 허물고 경기도립병원을 신축했다. 화성행궁이 존폐 위기에 놓였던 것이다.
화성행궁 복원 사업은 1989년 구성된 '수원 화성행궁 복원추진위원회'가 행궁 복원을 위해 경기도립병원 이전을 건의하고 경기도지사가 이를 받아들이면서 시작됐다.
화성행궁 복원 사업은 2단계로 나뉘어 추진됐다. 화성성역의궤, 정리의궤 등 기록·발굴자료를 바탕으로 한 완성 당시 모습을 복원하는 게 원칙이었다.
이에 따라 화성행궁 중심 건물인 봉수당을 시작으로 모두 482칸을 복원해 2002년 1단계가 완료됐다. 2003년부턴 화성행궁에서 가장 먼저 건립된 건물이자 관리·사신들이 머물던 '우화관'을 비롯해 '별주' 등을 복원하는 2단계 사업이 추진됐다.
별주는 임금이 행차할 때 음식을 준비하고 임금이 머물 때 대접할 음식의 예법을 기록한 문서를 보관하는 장소다.
이 시장은 이날 기념사를 통해 "화성행궁 복원은 마침표가 아닌 새로운 시작"이라며 "시민들과 함께 정조대왕의 꿈이 담긴 프로그램을 만들어 복원된 화성행궁에서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개관식에선 고유제와 경과보고, 유공자 표창, 축사·기념사, 우화관 현판 제막식 등이 진행됐다. 이 자리엔 이 시장을 비롯해 오병권 경기도 행정1부지사, 김영진·염태영·김준혁 국회의원 당선인, 최응천 문화재청장 등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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