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의 정·흥정 찾아보기 어렵다"…강점 상실한 전통시장
[위기의 전통시장]물가 상승·고객감소에 가격경쟁력 골머리
상인들 스스로 변하지 않고 정부 지원만 바라는 현실 염증도
- 최성국 기자, 이수민 기자, 이승현 기자, 박지현 기자
(광주=뉴스1) 최성국 이수민 이승현 박지현 기자 = "전통시장이 대형마트나 복합쇼핑몰과 겨뤄 살아남으려면 '차별점'을 둬야 한다."
<뉴스1>이 10월 한 달간 만난 전통시장 상인들은 생존의 최우선 순위로 '차별점'을 꼽았다. 거대 자본을 앞세운 대형 기업들과 경쟁에서 생존하려면 '경쟁력'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상인들이 생각하는 대형 마트나 복합쇼핑몰보다 전통시장이 우위에 있는 '경쟁력'은 무엇일까.
<뉴스1>이 심층 인터뷰한 상인 100명 중 39명은 '시장의 정과 친근함'을 꼽았다. 가격경쟁력이라는 답변은 28명, 제품 신선도란 답은 12명이었다. 7명은 시장 접근성, 6명은 제품 다양성, 나머지는 기타였다.
그런데 상인들이 강점을 뽑은 뒤 한결같이 덧붙인 이야기가 있었다.
"전통시장은 갈수록 강점을 잃어가고 있다."
아직 들어서지 않은 복합쇼핑몰은 다가오는 파도일 뿐 기존 강점을 되찾지 않으면 대형 복합쇼핑몰들과 상생할 기회조차 얻지 못할 것이란 자조적 목소리가 대부분이었다.
송정역 시장의 A 씨(50)는 "시장도 옛말이다. 이제는 마트가 가격이 더 싸고 직원들도 더 친절하다"며 "마트에서 3800원인 대파는 시장에서 7000원에 판다. 신선도나 원산지는 시장 것이 훨씬 좋지만 소비자로선 가격 먼저 보는 게 당연한 것"이라고 했다.
말바우시장의 B 씨(57)는 "시장은 '깎는 흥정'과 정이 묘미이지만 이제 그런 것도 없다. 상인들이 먼저 고객에게 신뢰감을 주고 친절한 모습을 보이도록 노력을 많이 해야 한다"고 자성했다.
광주 양동시장에서 25년째 반찬가게를 운영하는 장숙희 씨(60·여)는 장사 근황을 묻는 말에 깊은 한숨부터 내쉬었다.
그는 저렴한 가격에 싱싱한 채소를 구매한 뒤 반찬으로 조리해 판매하는 식으로 가게를 운영한다고 했다.
반찬 가게 홍보 직원, 음식 조리 직원, 채소 다듬는 직원 등 직원만 13명이다. 장 씨와 운명 공동체인 이들의 월급은 최저임금으로만 잡아도 한 달에 3000만 원이 빠져나간다.
반면 물가는 턱없이 올랐다. 김치를 담그는 것부터 문제다. 지난해만 해도 배추 4포기를 1만 원에 살 수 있었지만 올해는 1포기에 같은 값을 줘야 했다.
장 씨는 "오른 물가에 맞춰 가격을 올리면 손님들이 빠져나간다"며 "울며 겨자 먹기로 손해를 보면서 판매하는 구조다. 가겟세나 인건비를 빼면 남는 수익도 거의 없다. 그만큼 고객에게 가는 덤도 줄어든다"고 말했다.
양동시장에서 17년째 업장을 운영하는 C 씨(60대·여)는 "백화점과 마트는 깨끗하고 직원들도 친절 교육을 잘 따른다. 손님들은 1만 원어치 물건만 사도 '손님 대우'를 받는다"면서 "전통시장은 온누리상품권 행사 등 국가 지원을 받음에도 그렇지 않다. 반성해야 한다"고 씁쓸해했다.
이어 "전통시장의 차별점은 물건 흥정이고, 여기에서 정이 나온다"며 "10만 원어치를 사면 서비스도 주고, '깎아주세요' 하면 깎아줘야 하는데 요즘 시장 분위기는 그렇지 않다. 상인도 먹고살기 힘드니 옛날 방식처럼 가격을 물어보면 짜증 내고 불친절하다"고 토로했다.
불편한 주차 문제나 젊은 세대의 변화한 트렌드를 꼽는 의견도 나왔다.
양동시장 원단상회 업주 노순동 씨(73)는 "양동시장은 주차장이 문제"라며 "도보나 대중교통의 접근성이 좋지만 잔뜩 장 봐서 지하철을 탈 수도 없지 않느냐"고 아쉬워했다.
대인시장에서 35년째 식당을 운영하는 D 씨(70대)는 "젊은 사람들이 가만히 앉아 손가락만 까딱하면 홈쇼핑, 인터넷, 대기업 배송이 다 가능한 시대에 왜 시장 오겠느냐"며 "장 보는 세대들이 달라졌으니 별수 없다"고 체념했다.
자구책 마련이 어려워 중앙정부나 지자체 지원만 바라보고 있는 현실에 대한 염증도 가득했다.
양동시장 한복집 업주 김 모 씨(66·여)는 "전통시장은 냉난방 시설이 부족하고 주차장 문제로 접근성이 너무 부족하다"면서 "이걸 누가 해결해야 하나. 바로 상인들이다. 그런데 상인회 회비는 월 5000원 수준이어서 무언가를 해소하긴 어렵다. 상인들도 이제 스스로를 되돌아봐야 한다"고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
고객 감소와 물가 상승, 유동 인구 감소는 물론 상인 고령화, 시설 낙후, 주차 문제와 교통 문제, 홈쇼핑, 인터넷 쇼핑 등 트렌드 변화, 시장 상인들 스스로 자구책이 없는 현 상황이 시장의 위기를 부채질한다는 것이다.
상인들은 모두 전통시장이 위기에 처한 이유를 알고 있다. 그냥 두면 도태될 수밖에 없는 상황. 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오랜 기간 반복되고 지속되면서 상인들 마음속에 깊게 자리 잡은 '체념'과 '비관'을 벗겨내는 게 우선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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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광주지역 전통시장의 위기가 높아지고 있다. 일일배송과 상인 고령화 등 이유는 셀 수 없이 다양하다. 3년 뒤부터는 대규모 복합쇼핑몰이 줄줄이 들어선다. 총 4곳의 복합쇼핑몰과의 생존 경쟁을 대비하기 위해 주어진 시간은 3년인 셈이다. 뉴스1은 전통시장 상인 100명과의 심층 인터뷰를 통해 광주와 전통시장에 주어진 '모래시계'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 지 7회에 걸쳐 진단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