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ARE NOW AT'…정상엔 지난한 발길에 대한 최고봉의 헌사가
[킬리만자로를 가다③] 행운을 부르는 '하쿠나 마타타 킬리만자로' 노래로 완등 축하
'포기'하고 싶을 때, 풀잎 하나, 바람 한 줄기가 모두 위로의 언어가 되리라 믿는다
- 조영석 기자
(킬리만자로=뉴스1) 조영석 기자 = 길만스 포인트로 가는 길은 직벽을 오르는 듯한 가파른 경사에 모래자갈과 화산재로 덮여있다. 그러다보니 발걸음은 뗄수록 뒤로 밀리기 일쑤다. 발길은 컨베이어 벨트 위를 거꾸로 걷듯 자꾸만 뒤로 밀리고, 추석명절을 하루 앞둔 '아프리카의 달'은 검은 산봉우리 위에서 처연히 밝았다. 앞사람의 밀리는 발걸음으로 자욱하게 날리는 화산재가 잔기침을 불러오고, 뱃속에서는 너울파도가 일어 곧 범람할 기세다. 손발에 감각이 사라진 지는 오래다.
길만스 포인트를 100m쯤 남겨놓고 오한에 떨던 몸이 접신하듯 진동을 시작했다. 제어되지 않는 진동은 시간과 함께 속도와 폭을 더해갔다. 마음속에서 "포기 하자"와 "설마 죽기야 하겠냐"가 수없이 교차했다. 한 쪽에서는 "너 그러다 죽는다"고 겁박하고, 한 쪽에서는 "이 고비만 넘기면 된다"고 부추겼다. 길만스 포인트 가는 길의 막바지 100m는 가늠되지 않는 세상의 끝에서 아득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길을 한 걸음 떼고 한 번 쉬며, 오르고 또 올라 길만스 포인트에 닿으면 고비를 넘긴 길은 우후루 피크까지 순탄하게 이어진다. 고도 200m 오름이 2㎞로 이어지는 완만한 분화구 능선 길을 2시간에 걸쳐 간다.
길만스 포인트를 100m쯤 남겨놓고 오한에 떨던 몸이 접신 하듯 진동을 시작했다. 제어되지 않는 진동은 시간과 함께 속도와 폭을 더해갔다. ...막바지 100m는 가늠되지 않는 세상의 끝에서 아득했다.
킬리만자로 피크봉의 5895m 우후루 피크에는 나무판을 층층으로 걸친 사다리꼴의 소박한 표지판이 정상에 이른 발길을 맞는다. 표지판 맨 위의 탄자니아 국기 아래 써 붙은 산의 이름(MOUNT KILIMANJARO)과 축하인사(CONGRATULATIONS-YOU ARE NOW AT)’가 이국땅의 모국어처럼 반갑다. 축하인사의 'YOU ARE NOW AT'은 당신의 지난한 발길에 대한 킬리만자로의 헌사이다.
우후루 피크 정상으로 가는 능선 길 좌우로 녹다 만 만년설이 모습을 드러낸다. '빛나는 산'이나 '하얀 산'으로 부르게 된 킬리만자로 정체성의 시원이다. 모여서 기다랗게 펼쳐지거나 부서진 사금파리처럼 띄엄띄엄 떨어져 있다.
물결표(~) 형태의 눈썹처럼 보였던 정상의 만년설은 기후변화로 2000년대 들어 급격히 사라지고 있다. 1912년 만년설을 처음 측정했을 때에 비해 2011년에는 85%가 소멸했다. 2050년대에는 이마저 볼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이 세계자연보전연맹(ICUN)의 예측이다.
하산에 앞서 스텝진이 춤을 추며 ‘하쿠나 마타타(Hakuna Matata) 킬리만자로’ 노래를 부르는 이벤트로 완등을 축하했다. 이벤트는 내면의 두려움을 털어내고, 자신의 다짐과 용기를 확인하는 결연한 제전의식의 다른 이름이다.
어제 밤 11시에 출발한 일정을 다음날 일출이 따라 잡지 못했다. 정상에서의 일출을 기대했으나 얼어가는 몸으로 40여분을 더 기다리기에는 무리다. 인증사진을 찍고 서둘러 내려가야 한다.
키보 산장을 거쳐 호롬보 산장에서 하룻밤을 묵은 뒤 출발지점인 마랑구 게이트로 향했다. 하산에 앞서 스텝진인 가이드와 포터들이 춤을 추며 '하쿠나 마타타(Hakuna Matata) 킬리만자로'노래를 부르는 이벤트로 완등을 축하했다.
이벤트는 내면의 두려움을 털어내고, 자신의 다짐과 용기를 확인하는 결연한 제전의식의 다른 이름이다. 모시(Moshi)의 스프링랜즈 호텔을 나서면서도, 마랑구 게이트에서 등정 출발 전에도 규율처럼 치렀던 의식이다. '하쿠나 마타타'는 행운을 부르는 말로 '걱정하지 마, 잘 될 거야'라는 의미다. 하산 길의 발걸음은 가볍고, 지긋지긋한 고산의 두통도 점차 사라졌다.
외롭고 힘들어 '포기'하고 싶을 때, 나는 킬리만자로의 그 지독한 추위와 밤하늘 별빛을, 바람에 흔들리던 '영혼의 꽃'을 떠올릴 것이다. 풀잎 하나, 바람 한 줄기가 모두 위로의 언어가 되리라 믿는다.
하산 길을 동행하며 날 '빅 브라더'라고 부르던 포터에게 땀에 절은 내 등산모를 건넸다. 내가 킬리만자로와 함께 그를 기억하듯, 포터로서는 늙어버린 쉰 한 살의 그가 은퇴 후 어느 이른 가을날, 날 기억하길 바랐다.
마랑구 게이트 앞에서 탄자니아 정부의 등정 인증서를 받고 기념사진을 찍는 것으로 킬리만자로 등정 일정을 갈무리했다. 기념품 가게에서 만년설이 내려앉은 킬리가 새겨진 기념 셔츠를 사 입고 버스에 올랐다. 세상은 '극한'이라는 이름의 킬리만자로를 오른 표범과 오르지 않은 표범으로 나뉜다는 것을 확인하는 5박6일의 시간이었다.
외롭고 힘들어 '포기'하고 싶을 때, 나는 킬리만자로의 그 지독한 추위와 밤하늘 별빛을, 바람에 흔들리던 '영혼의 꽃'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풀잎 하나, 바람 한 줄기가 모두 위로의 언어가 되리라 믿는다. <끝>
/여행 팁/ – 킬리만자로는 에티오피아 항공편을 이용해 아디스아바바 공항에서 킬리만자로 국제공항으로 환승한다. 아디스아바바 공항까지 12시간, 킬리만자로 공항까지 2시간 30분 쯤 소요된다. 시차는 한국보다 6시간 늦다. 탄자니아 입국 비자를 발급받기 위해서는 황열병 예방접종 증명서가 필요하다. 킬리만자로는 법규상 혼자 등정할 수 없다. 여행사를 통해 가이드와 포터 등을 고용해야 한다. 음식을 판매하는 곳이 없기 때문에 요리사도 동행한다.
우후루 피크를 등정하는 마지막 날에는 오리털 방한 파카 등 겨울 채비가 반드시 필요하다. 최저 온도가 영하 10도쯤이라고 하지만 체감 온도는 극한에 가깝다. 등정 최대의 걸림돌은 고산증이다. 두통이나 메스꺼움, 어지러움 등의 고산증이 일상이지만 증상이 심하면 하산해야 한다. 킬리만자로 아래 전초기지 역할을 하는 모시(Moshi)라는 도시의 호텔에서 탄자니아의 첫날과 마지막 날을 보낸다. 별 셋의 호텔로 뷔페 식사가 제공된다. 기념품은 커피원두가 대표적이다. 에디오피아나 탄자니아 커피는 품질이 뛰어나 애호가들의 선호도가 높다. 가급적 환승 공항인 아디스아바바 공항에서 구입하는 것이 좋다. 모시에도 기념품 가게가 있으나 면세점 가격보다 훨씬 비싸다.
kanjoy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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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5895m의 아프리카 대륙의 최고봉, 킬리만자로는 전문산악인이 아닌 일반인이 장비 없이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산이다. 하지만 등정 성공률은 60%를 조금 넘긴다. 도전은 쉽지만 성공은 생각보다 어렵다. 추위와 고산증 때문이다. 등정기를 3회에 걸쳐 나눠 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