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를 수없이 되뇌는 극한의 시간…최대 고비 '길만스 포인트'

[킬리만자로를 가다②]지끈거리는 두통 울렁거리는 속…방법은 '견딤'뿐
'10보에 한 번 쉬기'를 다짐하지만 두 다리는 서너 걸음도 떼지 못하고...

편집자주 ...5895m의 아프리카 대륙의 최고봉, 킬리만자로는 전문산악인이 아닌 일반인이 장비 없이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산이다. 하지만 등정 성공률은 60%를 조금 넘긴다. 도전은 쉽지만 성공은 생각보다 어렵다. 추위와 고산증 때문이다. 등정기를 3회에 걸쳐 나눠 싣는다.

"뽈레뽈레" …천천히 천천히 달팽이 처럼 가는 킬리만자로 등정길.2024.10.8./뉴스1 ⓒ News1 조영석 기자

(킬리만자로=뉴스1) 조영석 기자 = 만다라 산장에서 호롬보 산장으로 가는 길은 11㎞에 달한다. 아침 8시에 출발, 오후 3시에 도착했으니 7시간이 소요됐다. 느려진 걸음과 시간은 고산에 들어섰다는 방증이다.

열대 우림의 끝에서 키 작은 관목지대가 시작된다. 관목은 광활한 평원을 가득 채우며 끝없이 펼쳐진다. 가는 길에 킬리를 상징하는 키다리 관목인 자이언트 세라시오가 듬성듬성 모습을 드러내고, '영혼의 꽃'이라 불리는 은빛의 에베레스팅 플라워가 한세상을 이뤘다. 고산의 생존을 위해 꽃잎의 수분을 모두 비운 '영혼의 꽃'이 메마른 고원의 서정으로 피었다.

마웬지 봉(5149m). 키보봉의 우후루 피크와 함께 킬리만자로를 상징하는 두 번째 봉우리이다. 2024.10.8./뉴스1 ⓒ News1 조영석 기자

호롬보 산장에서 하룻밤을 보낸 뒤 다음날도 고산 적응으로 또 하루를 보낸다. 마웬지 봉 중간쯤에 자리한 얼룩말 바위(Zebra Rock. 4050m)까지 왕복 4㎞에 달하는 거리를 3시간에 걸쳐 '뽈레뽈레' 걸으며 고산에 몸을 맡기는 일정이다.

앉았다 일어서기만 해도 지구의 자전이 찾아오고, 일상의 걸음에도 금세 호흡이 가빠진다. 산장의 숙소에서 50여m 아래에 있는 화장실을 다녀오는 길에 주저앉고 말았다. '뽈레뽈레'의 계명을 잊고 발길을 서두른 탓이다.

얼룩말 바위는 화가의 손길을 거친 듯 하얗고 검은 세로 줄무늬가 교차 반복되면서 얼룩말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얼룩말 바위 가는 길의 너럭바위 위에 수많은 돌탑이 저마다의 소망으로 섰다. 탑 위에 돌 하나 보태 얹고 나의 소망을 생각했다.

3720m의 호롬보 산장에서는 앉았다 일어서기만 해도 지구의 자전이 찾아오고, 일상의 종종걸음에도 금세 호흡이 가빠진다. 산장의 숙소에서 50여m 아래에 있는 화장실을 다녀오는 길에 주저앉고 말았다. '뽈레뽈레'의 계명을 잊고 발길을 서두른 탓이다.

얼룩말 바위…흰색과 검은색이 세로로 교차 반복되면서 그려진 얼룩말 무늬가 마치 화가의 그림처럼 사실적이다. 2024.10.8./뉴스1 ⓒ News1 조영석 기자

만취한 다음날처럼 지끈거리는 두통에 식욕이 상실되고 메스꺼움으로 속이 울렁거리지만 도와 줄 방법도, 특효약도 없다. 오롯이 각자의 몫이어서 '견딤' 이외는 달리 방법이 없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산장으로 돌아오는데 끝내 '견딤'을 포기한 여성 여행객 한 명이 수레에 실려 하산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그녀의 무탈을 빌었다.

일찍 잠들어 일찍 깨어난 한밤, 산장 밖에서는 머리 위로 유성이 쏜살같이 흐르고 은하수 사이로 별이 눈처럼 쏟아진다. 직사각형의 네 점 별꼭지 안에 별 셋이 일렬로 정렬한 별자리가 유난히 밝다. 오늘 밤 내가 알 수 있는 유일한 별자리, 오리온이다. 이름을 불러주지 못한 저마다의 별들이 모두 '킬리만자로 별자리'로 기억될 것이다.

호롬보 산장의 밤하늘.2024.10.8./뉴스1 ⓒ News1 조영석 기자

추위에 쫓겨 별 바라기를 마치고 산장의 숙소로 들어와 몸을 구겨 넣은 침낭 안에 냉기가 가득하다. 어제 밤 저녁식사를 마치고 가져 온 보온 플라스틱 식수통을 침낭 안에 넣어 핫팩 대용으로 이용했으나 이미 식었다. 겨울 패딩 하나를 걸치고 지구의 자전을 느끼며 밖에서 보았던 별들의 세계로 들어간다.

일찍 잠들어 일찍 깨어난 한밤, 산장 밖에서는 머리 위로 유성이 쏜살같이 흐르고 은하수 사이로 별이 눈처럼 쏟아진다. ... 이름을 불러주지 못한 저마다의 별들이 모두 ‘킬리만자로 별자리’로 기억될 것이다.

호롬보 산장에서 킬리만자로 정상 밑에 자리한 키보 산장을 가기 위해서는 복장을 추동복으로 갈아입어야 한다. 낮과 밤의 기온 차이로 지금까지는 산행 시 여름복장이었으나 4000m를 넘어서면서는 추위가 한 낮에도 어슬렁거린다.

호롬보 산장(H0rombo Hut. 3720m).두 번째 산장으로 베이스 캠프 역할을 한다.2024.10.8./뉴스1 ⓒ News1 조영석 기자

마지막 샘터인 '라스트 워터 포인트(last water point)'를 지나 마웬지 능선이 시작되면서 관목들도 자취를 감추고 끝없이 펼쳐진 화산재 사막 너머로 우뚝 솟은 산봉우리 하나가 모습을 드러낸다. 흰 눈썹을 머리에 인 킬리만자로 정상부의 피크 봉이다. 멀리서 보면 한라산의 백록담을 사막지대로 옮겨놓은 듯하다.

"비로소 우후루 피크로 가는 킬리 등정의 하이라이트가 시작됐다. 하이라이트는 ‘포기’라는 단어를 수없이 되뇌는 극한의 한계와 마주하는 시간이다

호롬보 산장에서 키보 산장까지는 9㎞. 아침 7시에 출발, 오후 2시 무렵에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4720m의 키보 산장에 도착했다. 야간 등정을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으나 부산스러움에 깨어나니 밤 11시다.

비로소 우후루 피크로 가는 킬리 등정의 하이라이트가 시작됐다. 하이라이트는 '포기'라는 단어를 수없이 되뇌는 극한의 한계와 마주하는 시간이다.

헤드 랜턴을 켜고, 겨울파카 위에 바람막이를 하나 더 걸치고, 두 켤레의 양말을 한꺼번에 신고, 방한모에 장갑까지 꼈으나 서늘함이 스멀스멀 몸을 파고 든다.

소년 포터. 어린 소년이 짐을 내려놓고 마웬지 봉을 바라보며 가쁜 숨을 달래고 있다. 본인의 배낭과 여행객의 2명의 짐을 지고 우후루 피크까지 올라야 한다.2024.10.8./뉴스1 ⓒ News1 조영석 기자

킬리 정상인 우후루 피크까지는 5㎞. 가는 길에 경유하는 길만스 포인트(Gilman‘s Point. 5685m)가 킬리만자로 등정의 고비다. 등정 성공률이 60%를 조금 넘긴다는 킬리만자로 등정의 성패가 갈리는 구간이다.

키보 산장에서 길만스 포인트까지 고도 1000m를 오르는 3㎞의 거리를 6시간에 걸쳐 오른다. 산소량이 평지의 절반 이하로 떨어진 탓이다. 마음속으로 '10보에 한 번 쉬기'를 다짐하지만 기력을 잃은 두 다리는 서너 걸음도 떼지 못하고 멈춰서기를 반복한다.<계속>

kanjoys@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