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층 위까지 오르고 싶다"는 꿈이 이끈 킬리만자로

[킬리만자로를 가다①] 누구나 갈 수 있지만 아무나 허락하지 않는 산
첫 키스만큼 설렌 첫 인사…울창한 숲길 4시간 걸어 첫 숙영지 만다라산장에

편집자주 ...5895m의 아프리카 대륙의 최고봉, 킬리만자로는 전문산악인이 아닌 일반인이 장비 없이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산이다. 하지만 등정 성공률은 60%를 조금 넘긴다. 도전은 쉽지만 성공은 생각보다 어렵다. 추위와 고산증 때문이다. 등정기를 3회에 걸쳐 나눠 싣는다.

킬리만자로 정상의 키보 봉우리. 아프리카 최고봉으로 일반인이 장비 없이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산이다. .2024.10.4./뉴스1 ⓒ News1 조영석 기자

(킬리만자로=뉴스1) 조영석 기자 = 비행기 유리창문 밖으로 킬리만자로 봉우리가 아스라이 모습을 드러냈다. 산봉우리는 외딴 섬처럼 흰 구름 위로 머리를 내밀어 햇살에 빛났다. 푸른 하늘아래 하얀 운해가 깔리고, 킬리만자로는 그 경계에서 천상의 언어를 지상으로, 지상의 언어를 천상으로 이었다. 기내가 술렁이고 가느다란 탄성이 터져 나왔다.

스스로 희망이 되어 우뚝 선 산, 누구나 갈 수 있지만 아무나 허락하지 않는 산, 생애 단 한 번은 마주하고 싶었던 산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불모의 땅에 스스로 희망이 되어 우뚝 선 산, 누구나 갈 수 있지만 아무나 허락하지 않는 산, 생애 단 한 번은 마주하고 싶었던 산- 킬리만자로와의 만남은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 공항에서 탄자니아 킬리만자로 공항으로 가는 환승 비행기 안에서 그렇게 이뤄졌고, 첫 인사는 첫 키스만큼 설렜다.

킬리만자로 국제공항으로 가는 환승 비행기 안에서 유리창을 통해 본 킬리만자로 봉우리. 흰 구름 위로 솟은 봉우리가 바다에 떠있는 섬같다.2024.10.4./뉴스1 ⓒ News1 조영석 기자

킬리만자로, 그리고 아프리카. 두 대명사가 이룬 감성적 조합에 끌려 덜컥 킬리만자로행 비행기에 올랐다. 가을 하늘에 깃든 흰 구름을 쫒다 "구름층 위까지 걸어서 오르고 싶다"는 일상화 된 꿈도 함께 탑승했다. 60대 중반의 나이. 어쩌면 나이 앞에 '7'자가 붙으면 '불가능한 꿈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조급함도 한 몫을 했다.

전문 산악인이 아닌 아마추어 등산가가 오를 수 있는 한계점인 킬리만자로는 아프리카 대륙 최고봉으로 '킬리'라는 애칭으로도 불린다.

우후루 피크(5895m) 정상의 표지판. 맨 위의 탄자니아 국기 아래 산 이름과 환영인사, 높이 등이 나무판자에 쓰여 걸려 있다.2024.10.4./뉴스1 ⓒ News1 조영석 기자

스와힐리어 Kilima(산)와 njaro(빛나는)의 합성어로 빛나는 산, 하얀 산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킬리'는 최고봉인 키보(Kibo)의 우후루 피크(Uhuru Peak. 5895m)와 마웬지(Mawenzi.5149m)의 두 봉우리가 서로 마주보고 있다. 키보봉은 마웬지봉 보다 늦게 태어난 동생이지만 형보다 큰 키로 '킬리의 영광'을 홀로 차지하고, 영광을 양위한 형은 머리에 왕관을 쓴 모습의 절경으로 위엄을 내뿜고 있다.

우림지대가 끝나면서 고산증이 찾아오고 정상 근처 5000m를 넘어서면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달팽이처럼 움직이게 된다

여정은 마랑구 게이트(1980m)에서 시작해 우후루 피크를 찍고 원점으로 되돌아오는 5박 6일의 일정이 일반적이다. 고도가 평균 1000m 가량 오를 때마다 자리하는 3개의 산장을 중심으로 등정이 이뤄진다. 만다라 헛(Mandara Hut. 2720m), 호롬보 헛((Horombo Hut. 3720m), 키보 헛(Kibo Hut.4720m)으로 중간지대에 위치한 호롬보 산장이 베이스캠프 역할을 한다.

킬리만자로 전초기지 역할을 하는 탄자니아 모시(Moshi) 시내의 스프링랜즈 호텔. 킬리만자로 등정을 위한 여행객들이 대부분 이용하는 숙소이다.2024.10.4./뉴스1 ⓒ News1 조영석 기자

킬리의 정상을 향해 가는 동안 풍경이 크게 세 번 바뀐다. 열대 우림에서 키 작은 관목지대를 지나고 마지막에는 킬리를 눈앞에 두고 화산재가 덮은 광활한 고산사막지대를 관통한다. 우림지대가 끝나면서 고산증이 서서히 찾아오고 정상 근처 5000m를 넘어서면 산소량이 평지의 절반으로 줄어들어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달팽이처럼 움직이게 된다.

여행객들은 '하이(Hi)'라는 영어 대신 '잠보잠보(Jambo Jambo)'라는 현지어로 인사를 나누며 서로의 고단한 발길을 위로한다. '뽈레뽈레', '잠보잠보'는 고산증에 유효한 킬리만자로의 비타민이다

우후르 피크 근처에서 주검으로 발견됐다는 '킬리만자로의 표범'은 하이에나가 아니라 정작 '달팽이 닮기'를 거부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모시 시내에 있는 스프링랜즈 호텔 입구에서 바라 본 일출 무렵의 킬리만자로.2024.10.4./뉴스1 ⓒ News1 조영석 기자

첫 번 째 숙영지 만다라 산장을 만나러 가는 길은 여느 울창한 숲길과 크게 다르지 않다. 늘어진 이끼가 넝쿨처럼 나뭇가지에서 내려오는 짙은 숲길에서 가끔씩 만나게 되는 원숭이가 아프리카임을 깨닫게 한다.

만다라 산장까지는 8㎞. 4시간이 소요됐다. 1시간에 2㎞의 속도인데도 '천천히'라는 현지 가이드들의 '뽈레뽈레(Pole Pole)'는 집단의 유행어가 되어 길을 동행한다.

등정의 출발점이자 원점회귀 지점인 마랑구 게이트의 킬리만자로 국립공원 사진 광고판.2024.10.4./뉴스1 ⓒ News1 조영석 기자

한국의 '빨리빨리'가 아프리카 대륙으로 건너와 느림을 의미하는 '뽈레뽈레'로 반전을 이뤘다는 상상은 터무니없다.

오르내리며 만나는 여행객들은 '하이(Hi)'라는 영어 대신 '잠보잠보(Jambo Jambo)'라는 현지어로 인사를 나누며 서로의 고단한 발길을 위로한다. '뽈레뽈레', '잠보잠보'는 고산증에 유효한 킬리만자로의 비타민이 된다.

마랑구 게이트를 지나 만다라 산장으로 가는 길에 만나는 열대우림 지역.2024.10.4./뉴스1 ⓒ News1 조영석 기자

2층 침상을 갖춘 4~20인실의 산장은 태양열 발전시설을 갖춰 전등을 밝힐 수 있으나 인터넷이 불가한 세상이다. '인터넷 불가'는 해가 지고 어둑살이 내리면 선택의 여지 없는 '잠자는 일'만 덩그러니 남는다는 서술의 귀납이다. 킬리만자로에서 느는 것은 잠뿐이지만 고산의 잠은 자고 또 자도 부족하다.

산소결핍의 산장 생활에 포터들의 친절이 큰 도움이 된다.

킬리만자로 등정의 첫번째 산장인 만다라 산장(Mandara Hut.2720m).2024.10.4./뉴스1 ⓒ News1 조영석 기자

식사 시간이 되면 공동식당에 현지인 한식요리사가 백반식의 식사를 제공하고, 아침저녁으로 포터가 보온병에 세숫물과 발숫물을 담아 온다. 아침 기상시간에는 꿀차나 커피를 별도로 가져와 피곤한 여행객의 잠을 깨운다.<계속>

kanjoys@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