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썩은 배들 널브러져…진흙탕물 치우며 복구 '안간힘'(종합)
경남 김해 400.6㎜·전남 401㎜ 폭우에 물난리
낙과 피해·주민대피 등 피해 속출…"주민들 착잡"
- 최성국 기자, 김동수 기자, 박민석 기자, 박지현 기자
(전국=뉴스1) 최성국 김동수 박민석 박지현 기자 = "물이 순식간에 차면서 집이 잠기는 걸 바라만 봐야 했어요. 어떻게든 살아가봐야죠."
지난 19~22일 내린 극한호우로 주택 침수 피해·논과 과수원 농가 피해를 입은 시민들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수해를 입은 시민들은 비가 그치자 삶의 터를 조금이나마 복구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었다.
23일 오전 전남 장흥군 장흥읍 석동마을 일대. 물난리를 겪은 지 하루가 지났지만 마을 전체가 쑥대밭으로 변했다.
도로 위는 강풍과 폭우로 쓰러진 나무들이 널브러져 있고, 수확기를 앞둔 논에는 황토물을 뒤집어쓴 벼들이 쓰러져 있다.
폭우로 석동저수지 제방이 무너지면서 마을 곳곳에 부유물과 토사가 가득했다.
무너진 제방을 넘어 범람했던 하천물이 빠지면서 주택 내부도 엉망으로 변해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수해를 입은 김숙희 씨(56·여)는 연신 눈물을 훔치며 가재도구를 정리하는 데 여념이 없다.
졸지에 수재민이 된 김 씨는 마을회관에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그는 "범람한 강물이 순식간에 집으로 들어찼다"며 "물건 하나 가지고 나올 수 없이 바라만 봐야 했던 기가 막힌 상황이다"고 하소연했다.
경남 김해시 이동마을에서도 주말 새 400.6㎜의 기록적인 폭우가 내리면서 침수 피해를 본 마을 곳곳이 복구 작업으로 분주했다.
마을은 도로와 거리를 채웠던 물이 빠지면서 진흙이 덮이고 잔가지 등 잔해도 널브러져 있었다.
마을 주민 임묘덕 씨(84)는 이번 호우 피해로 집이 침수돼 마을 노인회관에서 생활하고 있다.
임 씨는 "집이 물에 다 잠겨서 옷가지도 못 건지고 쌀도 다 버리게 됐다"며 "매일 먹는 약도 못 챙겼다. 냉장고도 잠겨서 버려야 될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해시는 이날 아침부터 시 전체 공무원 3분의 1 이상을 투입해 침수 피해지역의 복구를 지원하고 있다.
또 각 읍면동 행정복지센터에서 침수 피해 상황을 접수해 정확한 피해 규모가 집계되는 대로 지원 대책 등을 마련할 계획이다.
농가들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이날 오전 찾은 전남 순천시 낙안면의 배 농가는 아수라장 그 자체였다.
나무에서 떨어진 배들이 봉지에 그대로 담긴 채 나뒹굴고 있고, 폭우 전에 찾아온 일소와 흑성병으로 썩은 배들이 널브러져 있다.
낙안면에서 25년간 배 농사를 해온 안정현 씨(57)는 바닥에 떨어진 배를 바라보며 허탈해했다.
안 씨는 올해 개인적인 일정으로 추석 이후 대량 배 수확을 계획했으나 역대급 폭우가 휩쓴 생채기에 할 말을 잃은 듯 착잡한 표정이다.
그는 "일소와 흑성병으로 이미 바닥에 썩은 배들이 넘쳐난다"며 "생각보다 많은 양의 비가 쏟아지면서 예상치 못한 피해가 늘었다"고 토로했다.
폭우가 휩쓴 생채기는 순천 낙안면 배 농가 총 175㏊ 중 30㏊(30만㎡, 축구장 42개 면적)에 낙과 피해를 입혔다.
전남 강진군에서 벼농사를 짓는 청년 농부 송 모 씨(35)는 벼멸구 피해에 이어 폭우가 겹치면서 한숨이 짙어졌다.
그는 "벼멸구가 볏대를 먹으면서 멀쩡한 벼들도 도미노처럼 다 넘어졌다. 인근의 웬만한 마을은 벼멸구 피해와 폭우 피해를 입었을 것"이라며 "비가 그쳐야지 물을 빨리 빼고, 땅이 말라야 벼를 세울 텐데 물 빠지는 것에만 2~3일은 걸릴 것 같다. 다들 올해 농사는 텄다며 자포자기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전남도 이번 집중호우에 따른 피해액을 최소 94억 3400만 원으로 집계했다.
민가주택 496동이 침수피해를 입었으며, 과수·채소 842.5㏊, 농경지 56.5㏊가 물에 잠기고, 벼 8158.3㏊가 도복피해를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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