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흥학관을 아시나요…"1929년 광주학생독립운동 지휘본부"

광주 동구·시민모임 '학술토론회' 열어…기억공간화 모색

광주 사적 흥학관 기억공간 조성 토론회에 참석한 시민모임 회원들과 주제발표자들이 흥학관의 조속한 기념공간 조성을 결의하고 있다.(흥학관 기억시민모임 제공) 2024.9.5

(광주=뉴스1) 최성국 기자 = 광주 청년들의 소양 공간인 흥학관이 1929년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지휘본부이자, 독립운동의 전국 확산 거점이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흥학관기억시민모임과 광주 동구는 5일 광주시의회 회의실에서 '광주 사적 흥학관 기억공간 조성 토론회'를 열었다.

토론회는 남도역사연구원이 주관하고, 광주광역시, 광주광역시의회가 후원했다.

흥학관은 1921년 광산동 100번지 일대에 광주 유지인 최명구가 회갑 잔치를 기념, 청년들의 수양 공간으로 건립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방 이후엔 광주시청의 부속건물, 시의회 건물로 활용됐다. 1960년대에 광주시청이 계림동으로 이전되며 건물 자체가 헐렸다. 현재는 토지가 분할돼 개인 소유가 됐다.

이날 토론회에서 노성태 시민모임 대표는 '흥학관과 광주학생독립운동'이라는 주제 발표에 나섰다.

노 대표는 "1929년 11월 3일 광주 고보생과 일본 학생들이 동문다리 등지에서 대치하던 급박한 상황에 전남청년연맹 집행위원장 장석천과 나승규, 국채진 등이 흥학관에서 긴급회의를 개최하고 투쟁 방향의 대전환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흥학관의 긴급 지침은 독서회 중앙부 책임비서였던 장재성에게 전달됐고 독서회 회원들을 주축으로 오후부터 거리 시위로 전환됐다"고 강조했다.

노 대표는 "오전의 학생들 간 패싸움이 일제를 타깃으로 한 저항의 거리시위로 바뀌면서 거대한 광주학생독립운동이 발발하게 됐다"고 말했다.

특히 "광주지역 최초의 학생 비밀결사조직인 1926년 11월 성진회 결성도 흥학관 출입 학생 중에서만 회원을 선발하라는 문건이 있었다"고도 밝혔다.

신주백 전 한국독립운동사 연구소장도 "광주학생독립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될 수 있었던 것은 흥학관에 터를 잡은 광주청년동맹이나 광주소년동맹, 흥학관에서 활동했던 전남청년연맹 소속 간부들의 활동 때문"이라며 "흥학관이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전국의 전국 확산 본부였다"고 발표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흥학관 기념공간 조성 방안으로 지자체나 민간단체가 직영 또는 위수탁하는 방안 등의 거론됐다.

명진 광주시의회 교문위원장은 토론회 축사를 통해 "흥학관은 광주학생독립운동과 광주청년운동의 산실로써 역사적 상징성이 매우 큰 만큼 지역사회가 함께 기억공간으로 조성하는 방안을 모색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star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