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볕에 쓰러졌는데 1시간 방치"…엄마는 20대 아들을 보낼 수 없었다

28살 에어컨 설치 보조 작업 노동자 출근 이틀만에 온열질환 사망
"119만 제때 불렀어도"…유족, 19일째 장례 미루며 진상규명 촉구

전남 장성의 한 중학교에서 폭염 속 에어컨을 설치하다 숨진 A 씨 유가족이 지난 19일 광주지방고용청 앞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원하청 사용자 고소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노동 안전보건지킴이 제공)2024.8.19/뉴스1

(광주=뉴스1) 박지현 기자 = 폭염에 쓰러졌지만 1시간 동안 야외에 방치된 20대 아들을 잃은 어머니 신 씨(50)는 19일째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있다.

지난 13일 오후 5시 9분 신 씨는 한 통의 메시지를 받았다. 이틀 전 취업한 아들 회사 인사담당자였다.

메시지에는 아들 A 씨(28)가 화단에 쓰러져 있는 사진이 담겨 있었다.

신 씨는 "인사담당자는 아들에게 평소 정신질환이 있는지를 물으며 직접 (아들을) 데려가라고 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급하게 택시를 타고 전남 장성으로 향하던 신 씨는 회사 팀장에게서 "119에 신고해도 되느냐"는 내용의 전화를 다시 받았다.

A 씨는 오후 5시 40분에 출동한 119구급대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다.

119 도착 당시 A 씨는 고온으로 체온측정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숨진 이후 체온측정 결과는 40도 이상이었다. 사고 당일 장성 최고 기온은 34.4도였다.

병원 소견서에는 A 씨가 앓고 있는 기저질환이 없고, 건강에 이상 없는 상태로 출근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신 씨는 "씨씨티비(CCTV) 영상을 보니 처음 구토 등 온열질환 증세를 보인건 오후 4시 40분이었다 "1시간 동안 아무나 119에 전화만 한 통 해줬어도 죽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울먹였다.

이어 "아들을 1시간 동안 땡볕에 방치한 회사 관계자들은 아직까지 제대로 된 사과 한마디 없다"고 분노했다.

회사 관계자들은 분향소를 찾아 "평소 A 씨가 물을 많이 마시는 등 건강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는 등의 발언을 이어갔다는 게 유족의 설명이다.

전남 장성의 한 중학교에서 폭염 속 에어컨을 설치하다 숨진 A 씨 유가족이 지난 22일 근로복지공단 앞에서 산업재해 신청 전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노동 안전보건지킴이 제공)2024.8.19/뉴스1 ⓒ News1 박지현 기자

그는 "도저히 그들의 행동이 납득가지 않아 차가운 안치실에 아들을 두고 19일째 장례를 못 치르고 있다"고 울먹였다.

A 씨는 지난 8월 12일 광주의 한 에어컨 설치업체에 첫 출근, 전남 장성군의 한 중학교에서 설치 보조로 일했다.

출근 이틀째인 13일 A 씨는 광주 광산구에 있는 회사에 들른 후 팀장·팀원과 함께 사고 현장인 중학교로 향했다.

신 씨는 폭염 속에 방치한 팀장 등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지난 16일 장성경찰서에 고발했다.

또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등의 혐의로 원·하청 업체에 대한 수사를 요청하는 고소장을 지난 19일 광주지방고용노동청에 제출했다.

신 씨는 아들의 죽음에 대한 진상을 규명하고 재발 방지 대책이 마련될 때까지 장례를 미루기로 했다.

신 씨는 "아들이 폭염 속에 일하다 뙤약볕에서 사망했는데 책임지는 사람도, 사과도 전혀 없다"며 "저희 가족한테 일어난 일이 누구에게도 다시 일어나지 않는 게 진정한 해결이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하청 업체 대표는 "이번 사고에 대해 유가족분들께 깊은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며 "앞으로 산업재해와 보상 관련 유가족분들에게 필요한 조치에 대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war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