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으로 둔갑 3천평 폐교 운동장…알고보니 마을이장이 불법경작
보성 벌교 옛 영등초…사업계획서는 '체험농장' 운영
주민들 강력 반발…교육당국 계약해지·원상복구명령
- 김동수 기자
(보성=뉴스1) 김동수 기자 = "폐교를 문화공간으로 활용하기는커녕, 개인의 이익을 위해 사용해서야 되겠나."
26일 오후 찾은 전남 보성군 벌교읍 옛 영등초등학교. 이 학교는 학생 수 감소로 지난 2004년 문을 닫았다.
학교 건물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됐고, 철문만 굳게 닫힌 채 이곳을 지켰다.
문제는 철문 뒤로 1만㎡(3000평) 규모에 달하는 운동장. 운동장이어야 할 땅은 논으로 둔갑해 푸른 벼가 자라고 있다. 방금 막 논을 돌본 듯 삽과 비료포대 등이 널브러져 있다.
학교 운동장은 폐교 이후 20년간 방치됐다가 지난달 1일 마을 이장 A 씨가 부지를 매입했다.
A 이장이 법인대표로 있는 한 영농법인이 보성지원교육청과 2027년까지 3년간 부지 임대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A 이장은 딸기와 쌈배추 등 친환경 농산물을 재배하는 체험농장을 만들겠다는 사업계획서를 교육당국에 제출했다.
하지만 당초 계획과 달리 폐교 운동장이 논으로 둔갑하면서 마을주민과 동문들의 반발이 거센 상황이다.
마을 주변 곳곳에는 '추억이 깃든 모교 영등초등학교 지체 말고 당장 원상복구하라', '영등초등학교 운동장에 벼가 웬말이냐 A 이장은 당장 원상복구하라'는 내용의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영등초 동문 B 씨는 "전국 대다수 지자체가 방치된 지역 폐교를 문화예술공간으로 새단장해 보존하고 있지 않냐"며 "학교가 개인의 욕심에 의해 활용되면 되겠느냐"고 분통을 터트렸다.
또 다른 주민 C 씨도 "이 부지가 마을 초입에 위치해 있는데, 당장 명절에 고향을 찾을 이들이 무슨 생각을 하겠나"며 "논을 철거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논란이 일자 교육당국은 지난 17일 법인과 계약을 해지하고 불법 경작을 한 A 이장에게 원상복구명령을 통보했다.
경작자의 농작물 소유권에 대해서는 강제할 수 없는 만큼 당장 철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교육당국은 폐교 관리·감독이 부실했다는 지적 또한 피할 수 없게 됐다.
보성지원교육청 관계자는 "농작물을 재산권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강제 철거는 쉽지 않다"며 "9월 30일까지 원상복구해 줄 것을 통보했고, 이행하지 않을 경우 변상금 처분을 할 예정이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A 이장은 "부대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운동장에 벼를 심었다"고 교육당국에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뉴스1은 A 이장에게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으나 통화가 이뤄지지 않았다.
kd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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