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남편에 진료예약 변경 문자…확인 못한 80대 아내 '발동동'
"예약 변경 문자 못 봐"…전남대·조선대병원 교수 각각 30% 휴진
"의지할 곳 의사뿐인데 우리는 어떡하냐" 환자 불안 가중
- 이수민 기자, 이승현 기자
(광주=뉴스1) 이수민 이승현 기자 = "그냥 집에 돌아가는 수밖에 없나요? 진료 좀 봐줬으면 좋겠어요."
정부의 의대 증원에 반발해 의사들이 집단 휴진을 예고한 18일 오전 광주 동구 전남대학교병원 접수 창구에서 만난 최금임 씨(88·여)는 한숨부터 내쉬었다.
치매를 앓는 남편의 진료 예약 종이를 들고 두 시간이나 일찍 병원에 도착했지만 다시 집으로 발길을 돌려야 하는 처지에 놓이면서다.
대한의사협회가 주도한 집단 휴진 여파로 전남대병원 약 30%의 교수들의 휴진이 예고돼 남편의 휴대전화로 진료 예약 일정 변경 문자가 왔지만, 고령의 나이로 휴대전화 사용이 힘든 탓에 이를 미처 확인하지 못했다.
최 씨는 사정을 설명하며 진료과에 진료 가능 여부를 재차 물었지만 돌아오는 답은 불가능하다는 답변이었다.
최 씨는 "병원에서 진료 예약 일정 변경 문자 못 봤냐고 묻는데 아픈 남편 휴대전화로 안내가 오는 건 아무 소용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그러면서 "나이도 있고 남편도 나도 둘 다 아파서 집에서 먼 길을 한번 나오기가 힘들다"며 "오늘 진료받게 해줬으면 하는데 안 된다고 하니 하는 수 없이 20일에 다시 와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전남대병원은 화요일 진료 교수 87명 중 약 30%인 26명이 집단 휴진에 동참한 것으로 파악됐다.
쉽게 발길을 돌리지 못하는 최 씨의 상황을 보며 정상 진료를 받는 이들도 걱정을 내비쳤다.
남옥순 씨(77·여)는 "환자를 돌봐야 할 의사들이 없다니 우리처럼 매일 아픈 사람들은 겁이 날 정도"라며 "우리 나이는 온몸 이곳저곳 안 아픈 곳이 없어 병원에, 의사에 가진 돈을 다 주고 산다. 의지할 곳이 의사밖에 없는데 파업해버리면 우리는 어떡하냐"고 울상을 지었다.
이날 병원은 대기석이 여유 있는 등 평소보다 한산한 모습을 보였다. 병원 앞에서는 보건의료노조 관계자들이 '명분 없는 집단 휴진 반대'가 적힌 피켓을 들고 있었고, 병원 내부 게시판에 관련 성명이 붙어있기도 했다.
광주의 또다른 상급종합병원인 조선대병원 대기석에도 환자들의 우려가 가득했다.
조선대병원도 이날 진료 교수의 30%가 휴진했다.
휴진으로 진료가 불가능한 과의 환자들은 병원 측의 사전 안내를 받아 병원은 평소 대비 썰렁한 모습을 보였다.
입원해 있는 가족을 돌보러 완도에서 올라온 명 모 씨(59)는 "간 쪽에 종양이 발견돼 오늘 시술 받기로 했다. 혹시나 수술을 받는 중 무슨 문제가 생겼을 때 대응이 잘 안 될까봐 걱정이다"며 "정부와 의사단체의 입장도 중요하지만 환자들에게 중요한 건 생명의 위협을 느끼지 않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pepper@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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