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계엄군들 44년만에 '역사의 법정' 선다…진실찾기 마지막 기회

반인륜적 범죄 공소시효 배제가 국제법 추세
"재발 방지와 과거사 청산의 모범사례 될 것"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 최용주 조사1과장(가운데)이 12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5·18 당시 민간인 학살에 가담한 계엄군 15명에 대한 고발장을 제출에 앞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조사위 박진언 대외협력담당관, 최용주 조사1과장, 김남진 조사4과장. 2024.6.12/뉴스1 ⓒ News1 박정호 기자

(광주=뉴스1) 이수민 기자 =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민간인을 상대로 학살을 자행한 계엄군들이 44년 만에 '역사의 법정'에 서게 될 전망이다.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조사위)가 12일 대검찰청에 계엄군 15명(중복 포함)에 대한 고발장을 제출하면서다.

이는 5·18조사위 구성 후 5·18민주화운동특별법에 따른 최초의 고발·수사 요청이다.

전두환과 노태우 등 신군부 핵심 인물이 숨지고 조사위가 4년간의 활동을 종료한 특수 상황에서 '마지막 진실찾기'의 기회가 열렸다.

◇수십 년 지났어도 민간인 학살 계엄군 고발 가능

5·18조사위는 지난 1일 오전 열린 제128차 전원위원회에서 5·18민주화운동 당시 민간인을 학살한 계엄군을 검찰에 고발하는 안건을 논의했다.

그 결과 전원위 참석자 8명 중 5명이 찬성하고 3명이 반대해 최종 고발하기로 결정했다.

앞서 조사위는 44년 전 벌어진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 문제를 두고 고발이 가능할지 논의해왔다.

5·18의 경우 진상규명특별법에 의해 다뤄지는데 이 법 자체에서 공소시효 연장을 다루진 않는다.

주남마을·송암동 민간인 학살은 군부에 의해 자행된 제노사이드(집단학살)이기 때문에 국제법상 공소시효가 적용되지 않아 고발할 수 있다.

특히 헌법재판소는 1996년 2월 16일 '법적 정의의 요청이 강력한 예외적인 경우에는 법적 안정성을 다소 해치더라도 법적 정의가 우선 적용돼야 한다'며 '이러한 예외적인 경우에는 진정소급입법이라 하더라도 위헌법률이라 할 수 없다'고 결정한 바 있다.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4조 제1항에서도 '위원회 조사 결과 조사한 내용이 사실임이 확인되고 범죄혐의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 검찰총장에게 고발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위원회는 법률자문단 소속 법무법인의 자문절차를 거쳤고 그 결과를 참고로 전원위원회에서 가결돼 고발 조치에 이르게 됐다.

조사위 관계자는 "반인륜적 집단살해행위에는 공소시효를 배제하도록 하는 것이 국제법적 추세"라며 "이러한 행위를 처벌해 법적 정의를 세우는 것은 향후 재발 방지와 세계사적 과거사 청산의 모범사례로 평가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1988년 국회에서 구성된 5·18 진상조사특별위원회가 1989년 1월 14일 광주시 동구 주남마을을 찾아 현장검증을 벌이고 있다. (광주일보 제공) 2017.9.18 /뉴스1

◇'마을주민 무차별 학살' 주남마을·송암동 재조명

양민학살 계엄군에 대한 고발건은 80년 5월 23일 주남마을에서 발생한 양민학살 사건과 다음날인 24일 송암동에서 발생한 학살 사건을 자행한 계엄군 9명(각 5명, 중복 1명)에 대해 집단 살해죄를 적용해 처벌하라는 게 골자다.

이 사건은 계엄군이 연행한 시민들을 임의로 처형하는 범죄에 해당하는 사례다.

주남마을에서는 11공수여단에 의해 민간인들이 대거 사망했다. 마이크로버스 총격 과정에서는 총격 후 차 안에 계엄군이 올라 확인사살까지 가했다.

송암동 학살사건은 1980년 5월 21일부터 23일까지 송암동, 효천역 일대에서 20사단 61연대가 광주 외곽봉쇄작전 중 벌인 민간인 학살과 5월 24일 11공수여단에 의해 발생한 민간인 학살 사건이다.

집단살해죄의 방지와 처벌에 관한 협약에 규정된 집단살해에 해당하는 범죄는 '헌정질서 파괴범죄의 공소시효 등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공소시효가 적용 대상이 아니다.

◇피해자 7명 추가로 발견…정호용·최세창 등 고발

내란목적살인죄 추가 고발건은 80년 5월 27일 광주재진입작전 중 사망한 시민 피해자 관련이다.

앞서 밝혀졌던 18명의 피해자 이외에 조사위가 추가로 발견한 피해자 7명에 대한 피해를 추가로 고발한다.

조사위가 이들을 고발하려는 데에는 1997년 대법원 판결 당시 드러나지 않았던 범죄 사실이 이번에 추가로 확인됐다는 판단에서다.

당시 내란목적살인 혐의는 1980년 5월 27일 새벽 계엄군의 광주재진입작전에서 윤상원 열사 등 저항시민 18명을 살해한 혐의와 관련됐다.

이번 조사 과정에서 시민 7명이 같은 날 살해된 것이 추가로 밝혀져 별도의 범죄로 처벌이 가능해졌다.

이미 사망한 전두환 등 4명은 공소권이 소멸해 기소가 불가능한 반면 정호용 씨와 최세창 씨 등 6명은 고발 대상에 포함할 수 있다.

또 내란목적살인죄는 피해자별로 성립하는 실체적 경합범이므로 추가 고발이나 기소가 가능하다는 판단에 따른 결정이다.

13일 광주 북구 전남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2호관에서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의 활동결과에 대한 비판적 검토와 향후 과제'에 대한 세미나가 진행되고 있다. 2024.5.13/뉴스1 ⓒ News1 이승현 기자

◇조사위 보고서 비판했던 시민사회…결집 가능성도

조사위는 개별조사보고서 발표 후 '부실한 조사'를 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대부분의 직권과제에 대해 진상규명 불능 처리했을 뿐 아니라 권한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해 주요 쟁점을 밝혀내지 못했고 각 개별 보고서간의 내용도 일치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광주 시민사회는 이에 분노해 수차례 기자회견을 개최했고 보고서의 폐기를 요구하기도 했다.

이에 송선태 조사위원장은 지난 4월 광주를 찾아 "실망시켜드린 점에 대해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사죄하기도 했다.

다만 이번 고발건 이후 조사위의 활동이 더욱 적극적임에 따라 시민사회의 반응도 기대해볼 만하다.

5·18기념재단은 이날 조사위의 고발장 제출 뒤 "뒤늦은 감이 있지만 이를 환영한다"며 "양심있는 대한민국 국민과 전 세계 시민들이 함께 주시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어 "검찰총장은 위 사건의 수사·공소제기와 공소유지를 담당할 검사를 최대한 빠른 시일에 지명해 배당하는 등 엄정히 수사하는 데 필요한 모든 조치를 수행해야 한다"며 "피고발인들의 신병 확보를 위한 출국금지 등의 조치도 시급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고발에 따른 검찰의 수사 과정과 결과를 엄중히 지켜보고 있다"며 "수사가 늦어진다면 특검을 도입해서라도 반인륜범죄자들을 법정에 세워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breath@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