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 저수지 살인 사건' 21년 만에 현장 검증…고의 살인? 사고?
변호인 "경찰 엉터리 조사·허위 공문서 작성"…재심 결정
졸음운전으로 인한 '사고' 주장…피고 무기수는 4월 사망
- 이수민 기자
(진도=뉴스1) 이수민 기자 = 재심을 진행 중인 '진도 저수지 살인사건'의 현장검증이 사건 발생 21년 만에 다시 열렸다.
광주지법 해남지원 제1형사부(박현수 재판장)는 3일 오후 2시 전남 진도군 의신면 송정저수지(사건 당시 명금저수지)에서 현장검증을 진행했다.
검증은 운전자이자 피고인인 무기수 장 모 씨(66·사망) 측이 주장하고 있는 졸음운전으로 인한 '사고'의 가능성과 검찰 측 주장인 '살인'의 고의성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마련됐다.
현장검증은 법원이나 수사 기관이 현장이나 기타 법원 외 장소에서 실시하는 검증이다.
이날 사고 현장에서 실시된 검증에는 검사 측과 변호사 측, 재판부, 도로교통공단 관계자, 증인 등이 참석했다.
검증은 도로교통공단 관계자들과 당시 사고 현장 잠수·차량 인양 작업에 참여했던 증인들이 차량 발견 지점을 특정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잠수와 인양을 진행했던 박은준 씨가 당시부터 설치돼 있던 구명 조끼 보관함을 기준으로 차량 발견 지점을 설명했다.
이후 검증 차량을 이용해 검사 측과 변호사 측이 핸들을 사용하거나 사용하지 않는 방법 2가지로 여러 차례 차량을 주행해봤다.
주행은 피고 일행의 출발지인 약수터부터 졸음 운전이 시작됐다고 주장하는 삼거리, 저수지 사고지점까지 진행했다.
재판부는 차량이 도로를 직진할 때 저수지에 다다라 빠질 수 있는지(사고 가능성)와 도로에서 차량 방향을 틀어야만 저수지에 빠지는지(살인에 초점)를 분석했다.
마지막으로 사건 직후와 과거 현장검증 때의 사진과 비교해 현재 사고 예측 지점을 확인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검찰 측은 원심 당시 주장을 이어가며 '고의 살인' 가능성을 제기했다.
담당 검사는 "피고인이 졸음운전이 아닌 차선을 정상적으로 준수하면서 운전했다가 저수지 추락지점에 도달한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이어 "추락 지점까지 이르는 도로의 높낮이가 심하고 좌·우 커브가 10개 이상 반복되는 험난한 도로 사정이 있기 때문에 그 사정에 비춰서 졸음운전을 했다는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고 했다.
또 "피고인은 사건 초기부터 법원 검증 당시까지 이 길을 수도 없이 지나다녀서 익숙한 길이라고 주장했다"며 "피고인이 자신의 목적지인 귀갓길이 아니라 갈림길에서 정반대 방향으로 좌 조향해서 추락 지점에 이르렀다는 것은 졸음운전의 신빙성이 떨어지고 고의로 추락했을 가능성이 상당하다"고 의견을 내놨다.
숨진 피고인의 재심 사건을 맡은 박준영 변호사는 무죄를 강력하게 주장했다.
그는 "졸음운전의 양상은 다양할 수밖에 없다. 특히 야간에 지방에 있는 왕복 2차선 도로를 차선을 지켜서 주행했을 것을 장담할 수 없다"며 "차선의 중앙선에 가깝게 주행했을지, 아니면 흰 선에 가깝게 주행했을지 아무도 모른다"고 말했다.
아울러 "추락 지점에 이르는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조향을 했는지 여부도 확인할 길이 없다"며 "특히 검증은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해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데 현재는 폐쇄회로(CC)TV나 블랙박스 등 장비도 없기 때문에 완벽한 재현이 힘들다"고 했다.
재판부는 7월 15일 오후 2시로 다음 기일을 정하고 그때까지 이날 현장 검증에 대한 분석을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2003년 7월 9일 오후 8시 39분쯤 1톤 트럭을 운전하던 피고인 장 씨의 차량이 명금저수지(현 송정저수지) 경고 표지판을 들이받고 물속에 추락했다.
사고로 트럭에 동승해 있던 장 씨의 아내 A 씨(사망 당시 45세)가 숨졌다. 검찰은 장 씨가 A 씨 앞으로 가입된 8억 8000만 원의 보험금을 노리고 고의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판단했다.
장 씨는 단순 사고임을 주장했지만 2005년 살인 혐의에 대한 무기징역을 확정받았다.
이후 2020년 충남경찰청 현직 경찰관이 당시 경찰이 엉터리 현장조사와 허위공문서를 작성하는 등 수사를 조작했다는 정황을 주장하면서 재심이 결정됐다.
하지만 장 씨는 재심을 받기 위해 군산교도소에서 해남교도소로 이감되는 도중 급성백혈병이 발견돼 항암치료를 받다가 지난 4월 숨졌다.
breath@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