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키는 이 없어도…'약속 지키는' 세월호상주모임의 원동력은
[세월호 10년] "내 일일 수 있다" 기억과 공감의 힘
개개인 모여 추모제·분향소 10년째…"조금 더 나은 내일"
- 이승현 기자
(광주=뉴스1) 이승현 기자 = 세월호광주시민상주모임은 독특하다. 시민 단체나 조직을 중심으로 꾸려진 곳은 많지만 이곳처럼 시민 개개인과 마을 단위가 주축이 돼 활동하는 곳은 찾아보기 힘들다.
누구 하나 일을 시키는 사람도 없고 지원정책도 없지만 10년 동안 꿋꿋이 안전한 대한민국을 위해 두 팔 걷고 나선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답은 '비상식적인 참사' 그 자체와 '남의 일이 아니다'라는 공감대에 있었다.
10년 전 전남 진도 해상에서 벌어진 참사는 304명의 목숨을 집어삼켰다. 들뜬 마음으로 수학여행에 나선 안산 단원고 학생 250명을 비롯해 회갑 기념 여행을 떠나던 중년과 노년층까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다.
골든 타임을 놓쳐 제대로 된 구조가 이뤄지지 않았고, 선장이 "객실에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을 하며 현장을 떠나 피해를 키우기도 했다.
3번이나 구성된 조사위원회도 침몰 원인에 대해 제대로 된 진상규명이 이뤄지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로 처벌받은 국가 책임자도 단 1명에 불과했다.
상주모임 참여자들은 그날의 진실에 대해 누구 하나 속 시원한 답을 내리지 못하는 '비상식적인 참사'로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의 아픔에 대한 '공감'을 원동력으로 꼽았다.
문은미 상주는 "세월호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며 "참사 당시 저는 초등학생 2명의 엄마였다. 아이들이 수학여행을 기대하고 있던 상황에서 접한 참사는 우리 아이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고 소회했다.
그는 "제가 할 수 있는 일, 시민들이 세월호를 기억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다가 가장 쉬운 게 노란 리본이었다"고 말했다.
리본은 특정 사회적 문제에 대한 인식 개선과 관심을 촉구하기 위한 상징이다. 참사 당시 사고 실종자들의 무사 귀환을 바라는 의미로 '하나의 작은 움직임이 큰 기적을'이라는 문구가 적힌 노란 리본이 전국적으로 확산돼 현재 '세월호'가 '노란 리본'을 대표하게 됐다.
이 일을 계기로 문 씨는 노란 리본을 만들고 노란 리본이 그려진 피켓을 들고 길거리로 나섰다.
그는 "상주모임에 참여하게 됐지만 누군가 역할을 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모두들 자신이 할 수 있는 걸 각자 찾아나갔다"면서 "모두가 '이런 일은 다시 일어나지 않아야 된다'는 마음뿐이었고 지금도 그렇다"고 설명했다.
정민기 씨 또한 참사에 마음 아파하며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찾아 나섰다. 자신의 마을에서 시작한 일이 공동체를 움직이게 했고 창소년들의 자발적 참여도 이끌어냈다.
정 씨는 "상주모임은 단체가 아니라 개개인의 모임"이라며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200명을 넘겼고 모두가 힘을 모으니 매년 추모제를 진행하고 분향소를 설치하는 등 커다란 움직임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세월호광주시민상주모임의 원년 멤버인 박미자 씨는 사회에 '기억은 힘이 세다'라는 메시지도 전한다.
박 씨는 "희생된 학생들의 부모 옆에서 힘이 되어주고자 하는 마음이 컸다"며 "우리는 끝까지 잊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우리는 유가족분들이 버티고 있는 한 끝까지 그들의 손을 잡고 함께 나아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연대하고 투쟁하는 과정이 힘들지만 이렇게나마 기억해야 조금은 더 나은 내일을 만들고, 더 나아가 진상규명까지 이어질 수 있는 것 아니겠냐"고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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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국민들에게 '세월호'는 '노란 리본'이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탑승자들의 무사 귀환을 바라는 의미이자 상징이다. '아직도'가 아닌 '여전히' 노란 리본의 봄을 잊지 않고 있는 세월호광주시민상주모임을 들여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