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지출 먼저 요구하는 재난적 의료비는 입법 취지 위배"

건보공단, 기초수급대상자에 "병원비 먼저 내고 받아라"
법원 "입법 취지 정면 위배"…항소심도 "건보 패소 정당"

광주고등법원의 모습./뉴스1 DB ⓒ News1

(광주=뉴스1) 최성국 기자 = 병원비 감당이 불가능한 기초생활수급자 등을 지원하기 위한 정부의 '재난적 의료비' 제도의 허점을 지적하는 1심 법원의 판단이 항소심에서도 유지됐다.

광주고등법원 제1행정부(재판장 양영희)는 A 씨가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재난적 의료비 부지급 처분 취소' 소송 항소심에서 1심과 마찬가지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고 8일 밝혔다.

기초생활수급자인 B 씨는 뇌졸중으로 지난 2019년부터 약 2년간 광주 전남대학교병원에 입원 치료를 받았고, 끝내 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B 씨의 유족인 A 씨는 2년간 쌓인 병원비 2700여만 원을 감당하지 못했다. A 씨는 환자 사망 책임 소재를 두고 병원과 민사소송까지 벌이게 됐다.

이같은 소식을 들은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전남지부와 광주 서구는 A 씨 대신 총 900만 원을 병원 측에 지원하기도 했다.

지자체와 지역사회의 도움에도 병원비를 다 낼 수 없던 A 씨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찾아가 재난적 의료비를 신청을 하며 '민사소송이 확정된 이후 재난적 의료비가 지급될 수 있도록 지급 신청기한을 유예해 달라'고 요청했다.

정부는 고액의 수술이나 치료비 등 소득에 비해 '과도한 의료비 지출'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기초수급자, 차상위계층, 장애아동 등에 '재난적 의료비'를 지원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통상적으로 가구의 정기적 소득 대비 의료비가 10% 이상일 경우를 재난적 의료비 지출로 본다.

문제는 이 '지출'이란 단어의 해석을 두고 발생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A 씨나 B 씨가 병원에 실질 지출한 의료비가 현재 전혀 없다'는 점을 들어 의료비 지원 대상이 아니라고 봤다.

즉 재난적 의료비 대상인 건 맞지만 병원비를 낸 적이 없어 의료비 지원 대상이 아니라는 의미다.

1심 재판부는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리며 '재난적 의료비 지출'의 의미를 명확히 했다.

1심 재판부는 "건보공단의 주장대로 '지출'의 개념을 의료기관에 의료비를 납부한 경우로만 한정해 해석한다면, 의료비 일부를 당장 납부할 여력이 있는 사람은 건보공단으로부터 의료비를 지원받을 수 있고 그보다 경제적 사정이 열악한 사람은 의료비를 실제 납부하지 못해 오히려 의료비 지원을 전혀 받지 못하는 모순된 상황이 발생한다"고 밝혔다.

특히 재판부는 "건보공단의 한정 해석을 따르면 A 씨는 지원을 받지 못하거나, 의료비를 병원에 먼저 납부해 민사소송을 포기하게 되는 매우 불합리한 결과가 발생한다"며 "이는 지나치게 가혹할 뿐만 아니라 재난적 의료비 지원법의 입법 취지에 정면으로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항소심 재판부도 "건보공단은 원고에게 병원과의 민사소송 결과가 나온 후 재신청을 하라고 재난적 의료비 지원을 거부할 게 아니라 민사소송 종결 이후 지급비용에 대한 처분을 하면 될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star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