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역만리 아버지 유해 80년만에 고향땅 모신 건 기적"

타라와섬 강제동원 희생자 故 최병연씨 영광서 유해봉환식

타라와 강제동원 희생자인 고(故) 최병연씨의 차남인 최금수씨가 4일 전남 영광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유해봉환식에 앞서 취재진과 인터뷰하고 있다. 2023.12.4/뉴스1 ⓒ News1 이수민 기자

(광주=뉴스1) 이수민 기자 = "아버지가 '금수야!' 한번 불러주는 음성이라도 들었으면 여한이 없었겠지만 이역만리 멀리 있다가 형제 있는 곳으로 오신 것만으로도 바람이 없습니다."

타라와섬 강제동원 희생자인 고(故) 최병연씨의 차남 최금수씨(81)는 4일 첫돌도 되기 전 헤어졌던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이같이 말했다.

최병연씨는 1942년 11월25일 태평양 타라와로 강제동원됐다. 이후 약 1년 뒤 사망했는데 타라와전투(1943년 11월 20~23일) 중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2019년 미국 DPAA(국방부 전쟁포로 실종자 확인국)가 태평양 격전지인 타라와에서 유해발굴을 시작한 뒤 극적으로 최씨의 신원이 확인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과 국내 행안부·미 DPAA간 업무협의로 인해 80년 만에 최씨의 유해가 고국으로 돌아왔다.

아들 최금수씨는 유해봉환 추모식 진행에 앞서 취재진과 만나 "문재인 정부인 2019년부터 유해발굴을 한 이후 처음으로 기적적으로 내 DNA와 (아버지 유해가)일치했다고 들었다. 처음엔 믿기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80년이 됐는데 그 뼈대가 과연 맞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나중에 들어보니 발굴로 찾아낸 50g의 뼈대와 제 피가 일치한다고 하더라. 그때서야 실감하고 하루 빨리 선산에 모시면 쓰겠다고 생각했다. 기적적이었다"고 회상했다.

타라와 강제동원 희생자인 고(故) 최병연씨의 차남인 최금수씨가 4일 전남 영광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유해봉환식에 앞서 취재진과 인터뷰하고 있다. 2023.12.4/뉴스1 ⓒ News1 이수민 기자

금수씨는 아버지의 얼굴과 그와의 추억, 끌려가시던 모습조차도 기억하지 못했다. 최씨가 겨우 태어난 지 50일 됐을 무렵 아버지가 강제징용 가셨다는 말을 어머니와 형님께 들은 것이 전부였다.

"우리 형님 기억에는 형님 머리를 쓰다듬고, 그 다음에 아기인 내 머리를 쓰다듬은 다음 '내가 돌아올 때까지 어머니하고 잘 있어라' 그 한마디를 남겨놓고 강제징용으로 끌려가셨다고. 그런 얘기만 들었습니다."

먹고 살기 어려웠던 시절 돈을 벌러 타국으로 간 가장을 대신해 겨우 서른여섯이었던 어머니가 두 아들을 키웠다.

농사를 짓고 돈이 없으면 굶기를 밥 먹듯이 했던 어머니는 형제가 밥을 못 먹고 있을 때 집 뒤에서 숨어 울던 모습이 금수씨 눈에는 생생하다고 했다.

최금수씨는 "아버지에 대한 실체도 없이 참 그리움만 남고…. 젊은 날에는 원망도 했다. 그럼에도 내 손으로 이렇게 매장을 할 수 있다는 자체가 참 감회가 깊고 정부에 감사하다"며 "형님은 작년까지 '나 살았을 때 우리 아버지 선산에 모셨으면 쓰겠다'고 말했는데 애석하게도 병고에 시달려 하늘로 가셨다"고 토로했다.

최씨는 '만일 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그를 뵙고 하고 싶었던 말이 있느냐'는 질문에 한치 고민없이 하늘을 올려봤다.

그는 "아버지! 진짜 보고 싶고 그리웁고 또 불러보고 싶었었다"며 "이역만리 타국에 계셨던 아버지가 오늘 이처럼 우리 어머니 품으로 돌아온다고 해서 너무 감사하고 대환영한다"고 인사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우리 아버지가 생전에 고생만 하고 돌아가신 어머니와 하늘에서 만나 어머니를 보듬고, 안고, 생전에 못했던 사랑 앞으로 많이 주셨으면 좋겠다"며 "한쌍의 원앙이 되어서 천지를 훨훨 나르면서 금슬좋게 지냈으면 하는 것이 제 소망과 희망이다"고 전했다.

4일 전남 영광예술의전당에서 타라와 강제동원 희생자인 고(故) 최병연씨의 유해봉환식이 열리고 있다. 2023.12.4/뉴스 ⓒ News1 이수민 기자

타라와 사망자 1117명 중 최병연씨를 제외한 1116구의 유해가 아직 가족의 곁으로 돌아오지 못한 것에 대한 바람도 전했다.

최금수씨는 "그때 당시에 일제 징용을 같이 가신 분들의 가족들은 지금도 유해봉환을 애타게 기다리는 실정"이라면서 "행정안전부와 국가에서 최선을 다해서 기쁜 소식을 주었으면 그 바람이다"고 했다.

한편 이날 오후 2시 전남 영광문화예술의전당 1층 대공연장에서 최병연씨의 유해봉환 추도식이 열렸다.

행정안전부가 주최한 추도식에는 금수씨를 비롯해 이상민 행안부 장관, 강종만 영광군수 등 200여명이 참석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추도사를 통해 "강제동원 희생자분들의 유해 봉환은 '국가의 책무'이자 우리의 아픈 역사를 치유하기 위한 대단히 중요한 일"이라며 "정부는 마지막 한 분의 유해가 국내로 봉환될 때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breath@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