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 제발 연락 좀 해줘'…오지 않는 답장에 어머니는 무너졌다
"정규직 전환 앞두고 있던 딸…다음 주에 만날 줄 알았는데"
광주서 실종신고 했는데 서울 가니 "다시 설명해라"…'분통'
- 이수민 기자, 이승현 기자
(광주=뉴스1) 이수민 이승현 기자 = '엄마 미치겠다. 제발, 제발, 제발. 어디야.'
답장이 오지 않을 문자함을 취재진에게 보여주는 엄마의 손이 덜덜 떨린다. 울음을 참으려고 입술을 꾹 깨문다.
수신인 '첫째공주'가 적혀있는 휴대폰 화면 속에는 지난 밤의 악몽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이걸 보낼 때까지만 해도 '부디 살아만 있어다오' 생각했어요. 우리 애가 너무 예뻐서 하늘에서 질투를 했나봐요. 그래도 스물 셋에 데려가는 건 너무하잖아…."
30일 오후 6시 광주 광산구의 한 장례식장. 이태원 핼러윈 참사에서 숨진 만 23세 오씨의 가족들은 갑작스런 죽음에 넋이 나간 표정으로 연신 그녀의 이름만을 되뇌었다.
어머니 임모씨는 여전히 딸의 사망 소식을 믿지 못했다. 딸을 보낼 준비가 되지 않아 시신은 남편이 혼자 확인했고 친척들에게 연락은 조카와 둘째 딸이 대신했다. 임씨가 휴대폰 사진첩을 넘기며 영정사진으로 쓰일 딸의 셀카를 고르다가 끝내 오열한다.
"오후 6시에 통화했어요. 지하철이라고 조용히 속삭이면서 '정규직 필기시험 합격한 기념으로 놀러 간다고'. 너무 기뻐서 잘 다녀오라고 했는데 어쩜…."
지난 2월 계약직으로 은행에 취업한 사회초년생 오씨는 얼마 전 정규직 전환 채용시험에 응시했다. 필기 시험에 합격했다며, 정규직이 되면 고향인 광주로 발령 받을 수도 있다고 말했기에 온가족이 기뻐했다.
"다음 주 면접이 끝나고 온다고 했었어요. 매일 손 꼽아 기다렸는데 어쩜 이래요."
고인의 친구들도 갑작스런 비보에 애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앳된 표정의 친구들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빈소에 도착했다. 한 친구가 오씨 어머니와 눈을 마주치곤 엉엉 울음을 터뜨린다. 눈물을 흘리던 친구들이 가족들에게 '죄송하다'고 사과한다.
고인은 지난 밤 초등학교 시절부터 친했던 친구와 이태원을 찾았다가 숨졌다. 친구 김모씨 역시 변을 당해 시신을 고향인 광주로 옮겨오고 있다. 시신이 도착하는 데로 오씨 빈소 옆으로 빈소를 차릴 예정이다.
오씨 가족은 이번 사고를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인재'라고 입을 모았다. 인파가 몰릴 것을 정부가 인지했음에도 제재를 하지 않고 대책을 세우지 않은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사고 후 조속히 중앙정부와 지역의 핫라인이 구축되지 않아 실종자 신고와 사상자 분류 작업이 진척됐다고도 주장했다.
오씨 아버지는 "밤 12시 뉴스를 보고 처음 사태를 인지했다. 새벽까지 딸이 전화를 받지 않길래 동네 파출소에 신고했다. 기지국 조회를 한 뒤 이태원이 마지막 위치인 것이 확인됐다"며 "곧장 기차를 타고 서울에 갔는데 실종신고 정보를 모르고 있더라. 정신이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인상착의 등을 다시 설명해야 했다"고 증언했다.
오씨 이모는 이태원 술집에서 대목을 맞아 영업하는 방식에도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많은 손님을 받기 위해 술집에서 이용가능 시간을 테이블당 2시간으로 제한했다는 말이 있다"며 "갑작스레 나가라고 하니 쫓겨 나온 시민들이 갈 곳을 찾다가 변을 당한 것 아니냐"고 덧붙였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현 시각 기준 사망자는 153명이다. 이중 97명은 여성, 56명은 남성으로 확인됐다. 부상자는 103명으로 중상 24명, 경상 79명이다. 외국인 사망자는 12개국 20명이다.
이태원 참사와 관련이 있는 광주시 내 사망자는 3명(남성 2명, 여성 1명)이다. 사망자는 장모씨(25·광주 서구), 남모씨(45·광주 남구), 오모씨(23·여·광주 서구) 등이다. 또 뇌사 상태의 박모씨(27·여·광주 북구)도 서울대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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