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장 없는 광복절 맞은 독립기념관…관람객들이 '빈자리' 채워
곳곳에 '사퇴하라' 현수막…외부 일정 이유로 모습 안 보여
- 이시우 기자
(천안=뉴스1) 이시우 기자 = 폭염도 역사관 논란도 광복절의 의미를 퇴색시키진 못했다. 신임 독립기념관장은 자리를 비웠지만 '광복'의 의미를 되새기는 시민들이 그 '빈자리'를 메웠다.
제79주년 광복절인 15일 오전 9시 충남 천안 독립기념관엔 이른 아침부터 방문객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4주째 폭염이 이어지며 좀처럼 사라지지 않은 뜨거운 열기가 온몸을 휘감았지만, 관람객들은 경쾌한 걸음으로 주차장에서 겨레의 집까지 700m가 넘는 거리를 걸었다.
이날 독립기념관을 찾은 A 씨(40대)는 함께 온 딸(13)을 가리키며 "갓난아이 때부터 매년 광복절마다 독립기념관에 온다"며 "우리나라 역사를 공부하기도 하지만 가족의 역사를 쌓아가는 시간이기도 하다"고 방문 이유를 설명했다.
독립기념관 내 겨레의 집은 광복절 경축식 준비로 분주했다. 당초 이곳에선 독립기념관이 주관하는 경축식이 예정돼 있었지만, 김 관장 취임 후 이를 취소하는 바람에 독립기념관에서 경축식이 열리지 않은 3번째 광복절이 될 뻔했다.
이런 가운데 광복절 하루 전인 14일 천안시가 이곳에서 경축식을 치르기로 결정하면서 그 '명맥'을 이어갈 수 있게 됐다.
이날 광복절 경축식에 참석하지 않는 관람객들은 기념관 내 전시 시설을 둘러봤고, 어린아이들은 운동장에라도 놀러 온 듯 뛰어다니며 "독립 만세"를 외쳤다. 한 손에 태극기를 손에 들고 만세를 외치던 한 소년은 "우리나라에 좋은 날"이라며 해맑게 웃었다.
이날 오후 1시까지 독립기념관엔 1만여 명의 시민들이 찾았다.
언뜻 예년과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지만 독립기념관 곳곳에선 김 관장 취임을 비판하는 내용의 현수막과 팻말이 쉽게 눈에 띄었다.
경부고속도로 목천IC 입구 회전교차로에서 독립기념관 입구에 이르는 삼방로 도로변엔 김 관장의 역사관을 문제 삼아 사퇴를 촉구하는 내용의 현수막이 나붙었다. 주차장은 물론 기념관 주변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관람객이 드나드는 겨레의 마루에선 오전 내내 김 관장과 윤석열 정부를 비판하는 집회가 이어졌다.
석오 이동녕 선생 선양회의 김중영 공동대표는 작열하는 태양 아래에서 "광복절을 부정하는 김형석은 관장이 될 수 없다"는 문구가 적힌 팻말을 들고 관람객들을 맞았다.
아들(12)과 함께 이 집회를 지켜보던 B 씨(30대·경기 화성)는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반대하는 관장을 굳이 자리에 앉히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며 "아들에게도 집회하는 이유를 설명해 줬다"고 말했다.
서창원 씨(70·서울)는 김 관장 논란을 지켜보다 독립기념관을 처음 방문했다고 한다. 서 씨는 "어떻게 친일 역사관을 가진 사람이 독립기념관장 자리에 앉을 수 있느냐"며 "찾아오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 처음 독립기념관을 찾았다"고 말했다.
반면 93세 아버지를 모시고 독립기념관을 방문한 C 씨(70대)는 "(광복절) 경축식을 하는 줄 알고 왔는데 허탕 쳤다"며 "관장이 친일한 증거가 있느냐. 광복회장 등이 추천한 인사가 탈락해 화풀이하는 것 아니냐"고 볼멘소리를 냈다.
관람객들의 발길은 낮 최고기온 33도를 기록한 오후 2시가 넘어서도 멈추지 않았다. 2시 30분부턴 공군 특수비행팀 '블랙이글스'의 에어쇼를 시작으로 국악, 팝페라, 재즈, 가요 등 문화공연 행사가 이어졌다.
독립기념관은 홈페이지를 통해 광복절 경축 행사를 '독립기념관 최대 행사'로 규정했다. 그러나 이달 8일 독립기념관장에 취임한 김 관장은 외부 행사를 이유로 이날 연중 '최대 행사'가 열린 독립기념관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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