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넘은 경북 영양시장 오후 2시에 이미 ‘파장’…올해 첫 ‘4차로’ 건설[지방소멸은없다]
'고속도로·철로·4차로' 없는 '내륙의 섬'…21년 전 2만명 붕괴
'인구소멸위험' 영양군, '3有' 건설에 사활
- 공정식 기자
(영양=뉴스1) 공정식 기자 = 지난 2월24일 2월 마지막 장이 열린 경북 영양군 영양전통시장.
영양시장은 매월 뒷자리 4, 9일 장이 열리지만, 2월에는 29일이 없어 이날이 마지막 장날이었다.
수년째 과일을 싣고 동해안과 경북 북부지역을 '장돌뱅이' 처럼 다닌다는 상인 A씨는 "손님요? 없어요 없어…오늘 장사도 이미 파장"이라고 했다.
그는 "다음 장날엔 영덕이나 청송으로 가봐야겠다"며 꼬깃꼬깃 접은 지폐 몇장을 정리했다. 그는 "하루 매출이 다른 장의 절반도 안된다"고 푸념했다.
1918년 문을 연 영양시장은 100년 넘은 전통과 뿌리를 가진 곳이다. 동해안의 수산물과 내륙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이 물물교환 방식으로 거래됐다.
산나물, 건고추, 과일 등 지역 대표 농산물 거래가 활발할 때는 장날마다 시장이 북새통을 빚었지만, 이젠 명성을 잃은지 오래다.
트럭으로 갈치와 동태 등을 싣고와 전을 펼쳤던 상인 B씨는 정오가 지나자 내놓은 물건을 정리하며 "영양 주변에 중앙고속도로와 당진영덕고속도로(상주-영덕)가 뚫려 외지로 나가는 길이 좋아지면서 영양시장을 찾는 사람이 갈수록 줄고 있다"고 말했다.
상인 C씨도 "장날 손님이라고 해봐야 나이 많은 노인이 대부분인데, 해를 거듭할수록 영양시장을 찾는 사람이 눈에 띄게 적다"며 "단골 노인이 안보이면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고 했다.
오후 2시, 손님의 발길이 뚝 끊긴 시장 어물전 앞에 꾸덕하게 말라가는 생선만 덩그러니 매달려 있다.
영양군 군민 수는 1만6000명 선이 무너져 올해 1월 기준 주민등록 인구는 1만5988명에 불과하다.
섬 지역인 울릉군이 8967명으로 전국 243개 지자체 가운데 인구가 가장 적고, 영양군이 두번째다.
1973년 7만791명을 정점으로 인구가 차츰 감소한 영양군은 70~80년대 산업화를 겪으며 젊은층이 급격히 빠져나가 2002년 인구 2만명 선이 무너졌다.
경북 동북부 태백산맥의 내륙에 위치한 영양군은 동쪽으로 울진군과 영덕군, 서쪽으로 안동시, 남쪽으로 청송군, 북쪽으로 봉화군 등 5개 시·군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경북에서 '오지'로 꼽히는 BYC(봉화·영양·청송) 중에서 인구가 가장 적고, 4차선 도로가 없는 영양군은 '오지 중의 오지', '내륙의 섬'으로 불린다.
오도창 영양군수는 올해 1월 열린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새해 교통 3무(無)에서 3유(有)로 바꾸기 위해 행정력을 집중하겠다. 올해 4차선 도로 건설의 첫 삽을 뜬다"고 밝혔다.
영양군은 고속도로, 철로, 4차로가 없는 '교통 3무(無)' 지역이다.
영양군 청기면 주민 이모씨(67)는 "'4차선 도로가 없다'고 하면 서울이나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언뜻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인구가 적어 왕복 2차로에 차가 막히는 일이 없다"고 했다.
이씨는 "400~500m 길이의 4차로를 건설하는 것은 그저 상징적인 일"이라고 덧붙였다.
영양군은 국가 철도망 계획상에 포함돼 있지도 않다.
그래서 영양군은 장기적으로 군민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철도 건설 계획이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또 고속도로도 정부의 남북 6축 고속도로 사업에 영양이 포함되도록 해 '교통 3무'에서 탈출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고추가 전국적으로 유명한 영양군에서 고추농사로 연간 1억원 넘은 소득을 올려 유명해진 청기면을 찾았다.
산비탈이 끝도 없이 굽이굽이 이어진 마을 진입로는 5년 전 쯤 터널이 뚫려 다니기 수월해졌지만, 인구가 줄어든 마을로 들어서자 새소리 밖에 들리지 않았다.
이씨는 "'억대부농'도 다 옛말이다. 사람이 없으니 고추농사도 한계를 보이고 있다"며 "산비탈이나 험한 땅에는 투자를 그만하고, 농사가 잘되는 쪽으로 바꾸려 한다"고 말했다.
이어 "고추농사는 세척, 건조 등을 제외한 기계화(자동화)에 한계가 있어 수작업이 대부분인데, 노인 가운데 한쪽이 돌아가시면 농사를 그만두는 곳이 많다"고 했다.
"고추 한근 말리고 빻아도 1만원을 못받는데, 일손 귀한 시골에서 하루 인건비 13만원 넘는 돈을 들여 사람을 쓰니 남는 것이 없다"며 "정부에서도 해결 못하는 인구감소 문제에 마을 주민들이 대책이나 해결 방법이 있을리 만무하다"고 푸념했다.
이 마을에는 빈 농가도 쉽게 눈에 띄었다. 한 주민은 “이곳에 살던 노인이 세상을 떠나자 집이 비었고 얼마 전 외지 사람에게 집이 팔렸다는데 계속 비어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입암면 배추밭에는 지난해 겨울 김장철을 앞두고 심은 배추가 그대로 썩어 말라가고 있었다.
인근 주민은 "배춧값이 폭락해 비싼 인건비를 들여 수확할 수 없으니 수확을 포기했는데 필요한 사람은 누구든 가져가라고 해도 가져갈 사람이 없다"고 했다.
영양군은 올해부터 50세 이상 군민에게 건강검진비를 지원한다. 전체 인구 중 1만1000여명이 50세 이상이다. 질병을 조기에 찾아내 의료비용을 낮추고 수명을 늘려서라도 인구를 지키려고 추진하는 사업이다.
또 군 전입 6개월이 지난 사람에게는 전입축하금을 지급하고, 청년전입자에게 주택임차료 지원, 주소 이전 유공기관과 기업에 장려금 지원, 청년 부부만들기, 결혼비용 지원 등 인구 늘리기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영양군 수비면에서 나고 자랐다는 한 주민은 "자식 둘을 키우면서 중·고교 이후 모두 도시로 보낼 수 밖에 없다. 가까운 산부인과나 병원이 1시간 걸리는 안동에 있고, 도시에서 20~30분 걸리는 대형마트는 1시간20분 차를 타고 가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는 여기(영양)서 나고 자랐으니 농사짓고 고향 지키며 살지만 애들한테는 돌아오라고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jsgong@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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