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 왕미마을 고분서 '가야 고분 최초' 청동숟가락 발굴
비화가야 최고 지배층 무덤 추정…내달 2일 발굴조사 현장공개회
- 한송학 기자
(창녕=뉴스1) 한송학 기자 = 경남 '창녕 왕산리 왕미마을 고분'에서 가야 고분군 중 최초로 청동숟가락이 나와 비화가야 최고 지배층의 무덤으로 추정된다고 28일 창년군이 밝혔다.
군에 따르면 왕미마을 고분은 야산에 단독으로 축조된 대형 고분으로서 비화가야 멸망기(6세기 중엽)에 축조된 횡혈식석실(굴식돌방무덤)로 확인됐다.
석실 규모는 길이 570㎝, 너비 230㎝, 높이 210㎝로 평면 형태 장방형의 모양을 하고 있다. 석실 입구로 향하는 연도 및 묘도 길이는 560㎝로 봉분 외곽 쪽으로 갈수록 벌어지는 나팔 모양이다.
석실 입구부는 돌로 막아 폐쇄했으며, 입구부 폐쇄 양상 및 토층으로 봤을 때 추가매장은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석실 상부엔 6매의 대형 돌 뚜껑을 덮었고, 돌 뚜껑 위를 점질토와 할석으로 밀봉했다. 석실을 덮고 있는 봉분 규모는 직경 17m, 높이 4.3m로 가야고분군 중에서도 대형에 속한다.
출토 유물로는 토기류(굽이 달린 항아리·굽다리접시·뚜껑)와 철기류(작은 칼·도끼) 마구류(말띠꾸미개), 조개 장식, 청동숟가락이 확인됐다.
이 중 청동숟가락은 가야고분에선 최초로 확인된 것이다. 삼국시대 고분에서 확인된 사례로는 백제 무령왕릉과 신라 금관총, 청주 신봉동 고분군, 논산 표정리 고분군 정도로 출토 사례가 적다.
그간 청동숟가락이 확인된 고분은 삼국시대 대표적인 왕들의 고분이어서 왕미마을 고분도 비화가야 최고 지배층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비화가야는 하주가 설치된 555년쯤 신라에 흡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 왕미마을 고분은 비화가야 멸망기 창녕의 중심 고분군,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에서 벗어나 단독으로 축조된 고분으로서 신라가 가야를 병합해 가는 과정에 대해 중요한 자료를 제공할 것으로 판단된다.
군은 내달 2일 왕미마을 고분 발굴 조사 전문가 자문회의 및 현장공개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ha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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