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만에 재발굴' 김해 구산동 고분군서 온전한 석실묘 구조 확인

일제강점기 일본이 조사했지만 내용 전해지지 않아
대성동고분박물관, 7세기 무렵 가야 최고 귀족층 묘 추정

김해대성동고분박물관이 구산동 고분군에서 진행 중인 발굴 조사 모습.(김해시 제공)

(김해=뉴스1) 박민석 기자 = 100여년 만에 이뤄진 김해 구산동고분군의 발굴 조사에서 가야 귀족층의 온전한 상태로 보존된 석실 묘 구조가 확인됐다.

경남 김해대성동고분박물관은 오는 10일 오전 김해 구산동고분군에서 학술발굴조사 학술자문회의를 열고 발굴 성과를 공유하기 위한 현장설명회를 연다고 9일 밝혔다.

박물관에 따르면 구산동고분군은 김해 중심부에 있는 대형 봉토분으로 가야 멸망기 지배층의 무덤 구조를 보여주는 자료다.

일제강점기 일본에 의해 1호분이 조사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자세한 내용은 전해지지 않았다.

박물관은 지난 5월부터 구산동 고분군의 구종와 성격을 파악해 보존 정비 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일제강점기 이후 100여년만에 발굴 조사를 실시했다.

이번 발굴 조사를 통해 고분군에서 온전한 상태로 보존된 석실 구조가 확인됐다.

봉분의 규모는 직경 14m로 봉분 외연에는 봉분을 보호하기 위해 대형의 석재를 이용해 호석을 1m 가량 쌓아 올렸다.

무덤의 구조는 묘도와 연도를 갖춘 횡혈식 석실묘로 내부는 천장석까지 완전이 보존된 형태다.

벽석은 상부로 갈수록 좁아져 상부에 2매의 판석을 덮은 형태다. 석실 내부는 길이 280㎝, 너비 240㎝로 방형에 가깝고 석실 전면에 두껍게 회가 발려져 있다.

발굴을 진행한 박물관 측은 석실 내부는 도굴돼 유물이 출토되지 않았지만 봉분 규모와 축조 방법, 석실 규모와 구조 등을 비추어 볼 때 당대 최고 귀족층에 해당하는 인물의 묘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구산동 고분군 발굴 조사에서 출토된 토기.(김해시 제공)

석실에 딸린 배장묘에는 인화문 토기가 출토돼 7세기 전반에 고분이 조성된 것으로 파악했다. 삼국시대의 분묘 외에도 청동기시대 분묘로 추정되는 시설도 확인됐다.

박물관은 이번 조사를 통해 사적으로 지정된 구산동 1·2호분 사이에 봉분이 추가로 확인될 가능성이 제기 됨에 따라 구산동 고분군에 대한 전반적인 사적 지정 범위 확대 재조명이 필요할 것으로 내다봤다.

홍태용 김해시장은 "구산동고분군은 금관가야 멸망 이후 지배층 무덤의 이동양상과 구조를 잘 보여주는 유적으로 앞으로 대성동고분군과 함께 김해를 대표하는 유산으로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며 “조사 완료 후 원상복구하고 발굴 성과를 토대로 향후 구산동고분군의 정비보존 계획을 수립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pms7100@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