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물단지된 전기차'…항구 근처 뺑뺑이 돌고 배 선적 퇴짜당해(종합)

해수부, 선적 기준 충전량 50% 미만으로 제한
선사측 "불이 나면 진화 어렵고, 진화 장비도 없어"

12일 오후 제주항에서 출항하는 2만톤급 카페리 여객선에서 한국해양교통안전공단 관계자가 전기차 충돌 흔적 등을 확인하고 있다. 2024.8.12/뉴스1 ⓒ News1 오현지 기자

(전국=뉴스1) 장광일 오현지 기자 = 잇따르는 전기차 화재 사고에 해양수산부가 관련 대책을 발표한 가운데 전기차를 배에 싣기 위해 배터리 충전량을 떨어뜨리거나, 아예 선사 측에서 전기차 선적을 거절하고 있다.

해수부는 지난 8일 전기차 배터리 해상운송 안전대책을 발표하고 전기차를 배에 실을 시 배터리 충전 상태를 50% 미만으로 제한했다.

또 여객선 운항 중에는 전기차 배터리 충전을 금지하고 충돌 흔적이 있거나 사고 이력이 확인된 전기차는 실을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실제 연구 결과 전기차 충전율이 100%일 경우 열폭주 전이 시간은 7분 50초, 50%일 경우 32분으로 충전율이 낮을수록 초기 대응 시간을 4배 이상 벌 수 있다.

이에 제주에서는 안전대책에 따라 전기차의 배터리를 낮추고 배에 실고 있다.

12일 카페리 여객선의 선적 작업이 한창인 제주시 건입동 제주항에서 선사 관계자들은 전기차에 일일이 탑승해 배터리 충전상태를 확인했다.

현장에서는 배에 타기 위해 항구 근처를 뺑뺑 도는 운전자나 에어컨을 풀가동해 배터리를 떨어뜨리는 광경도 볼 수 있었다.

반면 부산의 일부 여객 선사는 아예 전기차 선적을 거절하고 있다.

부산-일본 여객선을 운영하는 A 업체는 지난해 12월부터 일부 여객선에서 전기차 선적을 제한하다가 최근 모든 선적을 거절하고 있다. B 업체는 지난해 상반기부터 모든 전기차의 선적을 받지 않고 있다.

C 업체의 경우 올해 상반기부터 여객선에 전기차 선적을 받지 않지만 화물선은 해수부의 대책에 따라 전기차를 운송하고 있다.

부산 동구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에 일본행 여객선이 정박돼 있다. 2022.10.28/뉴스1 ⓒ News1 김영훈 기자

여객선 화물칸은 떠다니는 지하 주차장과 다름없다. 차들이 밀집해 화염 전파가 쉽고 스프링클러·소방호스 외 전기차에 특화된 소화 장비도 없다. 해상에는 소방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점을 따져보면 육지보다 상황은 더 심각한 셈이다.

전용 장비 마련이 의무사항이 아닌 데다 특수장비를 사들이는 비용만 5000만 원에 달해 이를 자력으로 비치하려는 선사는 거의 없다.

해수부는 올해 하반기부터 연안여객선 10척에 전기차 화재 진압 전용 장비를 우선 보급한다는 방침이지만 아직 정확한 보급 대상 선정과 예산 편성은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제주 한 선박업계 관계자는 "바다 위에서 불이 났을 경우 책임소재를 가르는 문제가 육지 사고와 다를 것이고 보험사 측에서는 논의된 적도 없을 것"이라며 "책임소재에 따라 선사 문을 닫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긴장감이 어느 때보다 높다"고 말했다.

부산 선사 관계자는 "리튬 이온 전지에서 불이 나면 진화가 어렵고 재발화 위험도 지적된다"며 "해수부의 대책이 있어도 안전기준이 명확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이전부터 외국 선박에서 전기차 배터리 관련 화재 사고가 여러 번 있었기에 지난해부터 선적을 거절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독일 보험사 알리안츠의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그란데 코스타 다보리오호, 프리맨틀 하이웨이호 등 여러 차량 운반 선박에서 항해 중 불이 났다.

이들 선박의 불을 끄기 위해 특수 장비가 동원됐고 3일 이상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정확한 화재의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선적돼 있던 전기차 배터리에 불이 붙어 폭발이 일어나 더 큰 사고로 번지기도 했다.

ilryo1@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