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자리 말다툼 참극…112 통화 끊긴 후 지옥이 된 다가구주택

[사건의 재구성] 친구 살해 후 정당방위 주장 50대 "불도 지른 적 없다"
1심·항소심 징역 35년…"무고한 주민 죽고 다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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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뉴스1) 조아서 기자 = "친구와 싸워서 서로 피를 흘렸거든요. 뭐 들고 나옵니다. 지금. 뚜뚜뚜"

2021년 4월 20일 밤. 112신고 전화가 끊기고 20분 뒤 부산 부산진구 한 다가구주택에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이 났다.

순식간에 화마에 휩싸인 빌라 1층에서는 50대 남성이 숨진 채 발견됐으며, 3층에 살던 60대 남성은 연기를 피해 창문에서 뛰어내리다 바닥에 머리를 부딪혀 사망했다.

또 2층과 4층 거주민 3명도 연기를 흡입해 기도에 화상을 입거나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장기간 의식을 잃어 병원 치료를 받아야 했다.

15분 만에 총 5명의 사상자를 발생시킨 이 비극은 단순한 술자리 말다툼에서 비롯됐다.

화재 발생 수십분 전 이 빌라 1층에 사는 50대 A씨와 친구 B씨(50대)는 여느 때와 같이 함께 술을 마셨다. 그러던 중 불시에 말다툼이 시작됐고, 둘은 이웃집 주민들까지 들을 정도로 고성을 주고받았다.

격해진 감정에 말다툼은 곧 몸싸움으로 번졌다. A씨는 B씨가 거실에 있던 무게 2kg 상당의 조각상으로 머리를 때리자 격분해 흉기를 꺼내들었다. 위협을 느낀 B씨가 112에 신고 전화를 걸어 "둘이 피를 흘리고 있다. 나가는 문을 못 찾고 있다"며 구조를 요청했다.

하지만 B씨는 이내 달려든 A씨로 인해 말을 채 끝맺지도 못했고, 연락은 두절됐다.

화재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과 경찰은 빌라 1층에서 숨진 B씨를 발견했다. B씨의 몸에선 수십차례 흉기에 찔린 상처와 인화성 물질이 확인됐다.

방화 직후 라이터 등을 가방에 챙겨 나온 A씨는 주변 건물에 범행도구를 은닉하고 숨어있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현주건조물방화치사, 살인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씨는 징역 35년을 선고받았다.

1심 재판부는 범행 당시 CCTV 등을 근거로 자신이 방화를 저지르지 않았다는 A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피해자의 시신은 천장을 바라보며 누워있는 상태로 불에 탄 채로 발견됐다"며 "B씨의 기도 내 그을음이 발견되지 않았고, 바닥에 닿아 있는 부위에는 불에 탄 흔적이 발견되지 않아 피해자가 사망한 후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판시했다.

항소심에 들어서도 반성은커녕 정당방위였다고 주장한 A씨에게 재판부는 1심과 동일한 35년을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112신고 전화 당시 공격을 멈춘 B씨에게 흉기를 휘두른 A씨의 행동은 방어가 아닌 공격"이라며 "건물 1층에서 불을 지르면 위층에 있는 주민들이 다칠 것을 판단했을텐데도 범행을 저질렀고, 자신의 범행을 어떻게든 정당화하려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어 중형의 선고가 불가피하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A씨는 상고했지만 대법원에서 이를 기각해 2022년 5월 원심 형이 확정됐다.

aseo@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