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군인 예우 국가의무" '서울의 봄 오진호' 김오랑 중령 44주기 추모

12·12 군사반란 당시 전두환 보안사령관 측 신군부에 맞서 상관을 지키다 숨진 김오랑 중령의 추모식이 12일 오전 경남 김해시 삼정동 삼성초등학교 옆 흉상 앞에서 열리고 있다. 2023.12.12/뉴스1 ⓒ News1 윤일지 기자

(김해=뉴스1) 송보현 기자 = “1979년 12월12일 저녁 남편이 ‘오늘 저녁도 못 들어갈 것 같아. 미안해’ 하며 급히 전화를 끊었다. 마지막으로 한 ‘미안해’라는 말이 계속 귓전에서 맴돌았다.”(고인의 부인 백영옥씨의 시 중에서 )

1979년 12·12 쿠데타를 일으킨 신군부에 저항하다 흉탄에 맞아 숨진 고 김오랑(당시 소령·34세) 중령의 44주기 추모행사가 12일 오전 김해 삼정동 삼성초등학교와 삼정중학교 사이의 산책로 옆 잔디밭에 세워진 고인의 흉상 앞에서 열렸다.

이번 행사는 김해인물연구회 주관으로 12·12 군사반란을 기억하고,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바친 김 중령을 추모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어 김 중령 약력 소개와 헌시 낭독, 추도사로 진행됐다.

이 자리에는 고인의 유족과 김해농고 동기를 비롯해 유승민 국민의힘 전 의원, 민홍철·김정호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김정권 전 의원, 전·현직 시의원, 김지관 김해인물연구회장, 활천동 주민들이 참석했다.

민 의원은 추도사에서 “김 중령이 무공훈장을 받았지만 국가 예산으로 추모비를 건립하는 일은 성사시키지 못했다”며 “앞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겠다. 추모사업에 더 많은 관심을 부탁한다”고 말했다.

유 전 의원은 “(고 김오랑 중령은) 사령관을 보호하기 위해 권총 한 자루 들고 M16으로 무장한 쿠데타군에 맞서다 6발의 총상을 입고 전사하셨다”며 “진보와 보수를 떠나 모두가 한 마음으로 김 중령과 같은 참군인을 예우하는 게 국가가 진짜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특전사나 육군사관학교에 김 중령의 흉상을 세우는 일에도 거듭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해마다 삼촌의 기일을 지켜온 조카 김영진씨(67)는 “영화 ‘서울의 봄’이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이런 관심을 받을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며 “전국에서 많은 분들이 삼촌을 기억해주시고 계시는데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12일 오전 경남 김해시 삼정동 삼성초등학교 옆 김오랑 중령 흉상 앞에서 열린 김 중령의 추모식에서 조카 김영진씨가 참석자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있다.. 2023.12.12/뉴스1 ⓒ News1 윤일지 기자

김 중령은 1945년 경남 김해에서 태어나 삼성초, 김해중, 김해농업고와 육사를 졸업하고 1970년 맹호부대 소속으로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김 중령은 ‘12·12 군사 반란’ 당시 정병주 특전사령관을 불법체포하기 위해 사령부에 들어온 신군부 측 군인들에 홀로 맞서 교전하다 자정을 넘긴 13일 오전 0시 20분께 M16소총 6발을 맞고 숨졌다.

사망 당시 34세, 계급은 소령이었다. 사후 10여년이 넘도록 추서되지 못하다 1990년에 이르러 중령으로, 2014년 4월 1일 특전사령부 연병장에서 보국훈장 삼일장이 추서됐다.

같은 해 6월 6일에는 당시 김맹곤 전 김해시장, 김오랑중령추모사업추진위원회와 활천동주민자치위원회가 뜻을 모아 김해 삼정동 삼성초등학교와 삼정중학교 사이의 산책로 옆 잔디밭에 김 중령 흉상을 세웠다.

최근 12·12 군사 반란 당시 9시간을 그린 영화 ‘서울의 봄’이 흥행을 이어가면서 배우 정해인이 열연한 오진호 소령의 실제 인물인 김 중령이 재조명되고 있다.

김 소령의 부인 백영옥씨는 남편의 죽음 뒤 충격으로 시신경이 마비돼 실명했다. 당시 노태우 대통령을 비롯해 전두환, 최세창, 박종규 등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진행하던 백 여사는 1991년 6월 28일 부산 영도의 자택 3층 건물에서 실족사했다. 두 사람 사이에 자녀는 없었다.

12일 추도식에서 김미정 시인이 김 중령의 부인 백영옥씨가 쓴 헌시 ‘그래도 봄은 오는데’ 를 낭독하고 있다. “1979년 12월12일 저녁 남편이 ‘오늘 저녁도 못 들어갈 것 같아. 미안해’ 하며 급히 전화를 끊었다. 마지막으로 한 ‘미안해’라는 말이 계속 귓전에서 맴돌았다. 어디선가 총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가 그이의 가슴에 탄환이 박히는 소리였다는 것을 알았을 때 가슴이 터지는 통증이 왔다. 남편은 어마어마한 운명을 맞이하고 있었는데, 내가 한없이 저주스러웠다.”. 2023.12.12/뉴스1 ⓒ News1 윤일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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