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포럼] 잦아든 진자운동 끝에 정의는 찾아온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경기 과천 법무부에서 '고위험 성범죄자 거주지 제한법(한국형 제시카법) 등 입법 예고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스1 DB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경기 과천 법무부에서 '고위험 성범죄자 거주지 제한법(한국형 제시카법) 등 입법 예고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스1 DB

(부산ㆍ경남=뉴스1) 정성헌 경남대 법학과 교수 = 명백한 증거 없이는 누구에게도 형벌을 부과할 수 없다는 게 근대법의 가장 중요한 원칙 중 하나다. 최근 그 엄격성에 대해 여러 가지 반론이 제기되고 있지만, 국가 형벌권의 오·남용에 대한 역사를 되짚어본다면 대다수의 '선량한' 국민의 법 감정과 다소 동 떨어져 보이는 그 미련할 만큼의 고집도 어느 정도는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성범죄에 있어서만큼은 그렇지가 않다. '피해자의 일관된 진술'로도 형벌을 부과할 수 있다는 것이 새롭게 정립된 현재 대법원의 입장이고, 이러한 대법원의 태도는 '당연하게도' 하급심 판결에도 영향을 주어 성범죄에서의 유죄판결의 빈도를 올리고 있다.

물론 이러한 대법원 판결과 반대되는 하급심 판결이 없는 것은 아니다. 대법원 판결을 반드시 따라야 하지는 않기에, '무죄추정의 원칙'이라던가 '의심스러우면 피고인의 이익을 위하여' 혹은 형사처벌을 위해서는 '합리적 의심을 넘는 증명을 요한다'는 전통적인 명제를 역설하는 것이다.

물론 사건이 대법원까지 가게 되면 그러한 노력은 무위로 돌아갈 확률이 높기는 하지만. 대법원이 입장을 바꿀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당장 어제와는 다른 판결을 쉽게 하는 것도 그다지 좋은 것만은 아닐 것이므로.

왜 유독 성범죄에 있어서만 이럴까를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증거가 남지 않은 성범죄의 특성상 그렇지 않고서는 피해자를 충분히 보호하지 못하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그럼에도 이러한 예외 인정이 탐탁치 않은 것은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

지금의 모습이 옳은지에 대해서는 좀 더 지켜보아야 할 문제겠지만, 피해자 구제라는 이상 만을 좇아 지나치게 한쪽으로만 쏠려있다고도 볼 수 있다. 특히 대법원이 이러한 입장을 정립하기 전의 모습과 비교하면 더더욱 그렇다.

그런데 이러한 모습은 어쩌면 그 동안 성범죄 피해자가 충분히 보호받지 못한 현실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잘못된 방향을 바르게 하려고 다른 방향으로 틀 때 바로 제 방향을 찾아가면 좋으련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샤워기에서 물 온도 조절할 때만 해도 쉽게 경험할 수 있다.

시간을 들여 천천히 정확하게가 어찌 쉽겠는가. 그래서인지 다소 편향된 것으로 보이는 이와 같은 모습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느 쪽으로든 편향은 그 자체로서도 옳은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다음번엔 조금은 덜, 그렇게 반복하다 보면 양 쪽을 모두 고려한 중간의 어느 선에 맞춰질 것이다.

마치 잦아든 진자운동 끝에 하나의 선이 만들어지듯이. 사회 속에서 이러한 선이 찾아진다면, 그것은 이 사회의 올바른 기준, 즉 정의라고 불릴 수 있는 것일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어느 한 경우에서만 발견되는 것이 아니다. 현재의 사회는 무엇이 옳은지를 알 수 없는 혼란으로 가득하다. 남녀 성평등에서도 그런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앞서 소개한 성범죄에 대한 사법의 태도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를 둘러싸고 다소 지나친 주장이나 움직임이 많이 발견되고 이로 인해 대립은 심화되고 있는 모양새지만, 이 또한 사회가 제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이해할 수 있는 부분도, 더 원만하게 해결할 수 있는 부분도 많아지지 않을까 한다.

결국 그렇게 또 하나의 적절한 기준선이 만들어 지기를, 그래서 이 사회가 보다 정의로운 모습으로 존속될 수 있기를 기대하고 또 바라본다.

정성헌 경남대 법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