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외앱 살인' 정유정, 책임 전가에 '환생' 궤변…무늬뿐인 반성

반성문만 13차례 제출…불리한 건 "기억 잘 안 난다"
전문가 "범행 축소하거나 의도적인 심신미약 어필"

온라인 과외 앱을 통해 처음 만난 또래 여성을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유기한 혐의로 구속된 정유정(23)이 2일 오전 부산 동래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정유정은 지난달 26일 부산 금정구 소재 피해자의 집을 찾아가 중고로 산 교복을 입고 피해자에게 자신이 중학생이라고 거짓말하고 잠시 대화를 나누다 흉기로 살해했다. 2023.6.2/뉴스1 ⓒ News1 윤일지 기자

(부산=뉴스1) 노경민 기자 = 과외앱을 통해 20대 여성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한 뒤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유기한 정유정의 재판이 막바지를 향해 가면서 정유정이 범행을 축소하거나 정당화하려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감형을 위한 전략에 힘을 쏟고 있는 것으로 풀이되지만 피해자에 대한 진정성 있는 사죄는 찾아볼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유정은 16일 부산지법 354호 법정에서 열린 2차 공판 피고인신문에서 '반성하는지 의문이 든다'는 검찰 측의 질문에 "꾸준히 반성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현재까지 정유정이 재판에서 취하는 태도를 보면 겉으로는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되 형식적인 반성으로 보이는 대목이 여러 개 있다.

정유정은 현재까지 반성문만 13차례나 제출했지만 반성문에 진정성 있는 반성이 담겨 있는지에 대해선 의문이 제기된다.

이 사건 재판장도 최근 다른 재판 피고인에게 "좋은 재판 결과를 받으려고 '반성합니다' 식으로 작성하면 재판부도 다 안다"며 "정유정도 계속해서 (반성문을) 써내고 있지만 그게 반성인지 아닌지 헷갈릴 정도"라고 말하기도 했다.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발언도 서슴지 않는다.

검찰은 피해자의 손에 정유정의 DNA가 검출되지 않은 만큼 살해 과정에서 피해자가 저항하지 못할 정도로 정유정이 무차별적으로 흉기를 휘두른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정유정은 "피해자분이 제 목을 졸랐다. 얼굴도 뜯겼는데 안경이 날아가 눈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흉기를 휘두르게 됐다"고 주장했다. 검찰이 흉기를 휘두른 횟수에 대해 지적하자 "(그 정도로) 찌른 줄은 전혀 몰랐다. 기억이 잘 안 난다"고 둘러대기도 했다.

앞서 검찰 조사 과정에서 정유정은 '피해자가 욕을 하거나 자신을 무시해서 우발적으로 살해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피고인이 피해자에 대해 미안한 감정을 보인 적이 한 번도 없다"고 지적했다.

이날 재판에선 일반인이 듣기에 황당한 주장도 적지 않았다.

재판부는 이날 정유정 친할아버지의 진술 등을 토대로 어릴 적 성장 환경 등에 특별한 사정이 있었던 점은 있어 보이나 무관한 피해자를 살해한 것에 대해선 지적을 이어갔다.

이에 정유정은 "(피해자와) 같이 죽으면 환생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며 "같이 죽어서 (제대로 된) 엄마, 아빠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답했다. 내재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피해자를 살해한 뒤 극단적 선택을 하려 했다는 주장이다.

검찰은 이에 범행 이전 시신을 옮길 캐리어까지 미리 준비한 정황 등을 고려하면 극단적 선택을 하려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고 추궁했다. 극단적 선택을 하려 했다면 굳이 무거운 시신을 옮길 필요도 없었다고 정유정을 향해 쏘아붙였다.

그러나 정유정은 "(피해자) 방에서 가족사진을 보고 실종으로 꾸며야겠다고 생각했다"며 "유족들도 알게 되면 못 살 것 같았다. 그래도 실종으로 꾸미면 어딘가에서는 (피해자가) 살아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라고 말했다.

아울러 '일부러 죽은 피해자를 다시 찌른 적이 없다', '(사체 훼손에 대해) 계획한 것은 맞지만 어떻게 처리할지 구체적으로 계획하지는 않았다' 등 형량이 가중될 만한 언급은 지양하는 모습도 드러냈다.

이외에도 범행 당시 캔맥주와 병맥주를 마셔서 술에 취해 뚜렷한 기억이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정황들을 토대로 정유정이 의도적으로 재판부에 심신미약 가능성을 내비치거나 죄책감을 줄이기 위해 피해를 축소하는 의도를 드러낼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정유정에게 2가지 정도의 가설이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며 "하나는 범죄물에 익숙한 정유정이 사물 변별 능력이 없는 듯 일부러 속이고 있거나 다른 하나는 자신의 범행에 대한 책임을 축소하고 정당화하려는 목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맥주 때문에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과 송치될 때 기자들 앞에서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다'는 발언은 의도적으로 심신미약을 어필하려는 목적일 수 있다"며 "살해 당시 자신도 극단적 선택을 계획했다는 주장은 사태의 심각성을 축소해 본인의 죄책감을 줄이려는 모습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다음달 6일 검찰 구형과 피고인 최후진술 등 선고 전 공판을 마칠 예정이다.

blackstamp@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