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유엔참전국⑭] 의료지원으로 6.25전쟁에 참전한 독일
입원환자 2만2561명, 외래환자 28만2468명, 수술 1만6335건 성과
- 송보현 기자
(부산=뉴스1) 송보현 기자 = 독일은 1950년 전후 국제사회에 책임 있는 국가로의 재탄생을 목표로 외교활동을 추진했고 6·25 전쟁에서 의료지원국으로 한국을 돕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에 따라 독일 정부는 6·25 전쟁 의료단 편성 계획을 세우고 독일 적십자사를 통해 스위스 국제적십자연맹에 야전병원 정보를 요청했다. 이는 노르웨이와 이탈리아의 파견 규모를 참고해 의료단을 편성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과정 끝에 독일 정부는 1953년 4월 야전병원 파견을 미국과 유엔에 제의했다. 이듬해인 1954년 4월 24일 부산 서대신동의 부산여고를 인수해 병원을 설립하고 개보수를 진행했다. 이후 20여일이 지난 5월 17일 환자를 받고 진료를 시작했다.
한국에서 처음 의료지원을 시작한 독일 의료단은 의사 12명(외과 5명, 내과3명, 치과 1명, 방사선과 1명, 산부인과 2명)과 간호사 25명을 비롯해 약 80여명으로 구성됐다.
병원장 후베르는 산부인과 전문가로 중국에서도 진료한 경험이 있었다. 그밖에도 외과과장 및 의사들은 독일에서도 대학교수에 버금가는 실력자였다. 의료장비는 전신마취 및 기관 삽관 등으로 폐 개흉과 흉부 수술이 가능했다.
이처럼 독일의료단은 종합병원 수준 시설로 한국에서 250개 병상을 유지하며 1954년 4월부터 1959년 3월까지 운영됐다. 수많은 생명을 구하고 치료하는데 열과 성을 다했다. 아울러 전쟁에 상처받은 환자뿐 아니라 가난한 부산시민과 피란민도 무료 진료했다.
1959년 병원문을 닫을 때까지 입원환자 2만2516명, 외래환자 28만2468명, 수술 1만6335건의 성과를 거뒀다.
개원 후 이듬해인 1955년 6월 말부터 약 2개월 과정으로 한국 의사의 재훈련을 위한 실습도 진행했다. 한국의사 21명에게 진료, 진단, 수술 등의 임상훈련을 교육했다. 교육을 받은 의사들은 당시 최신 기술을 익힌 경험을 바탕으로 독일 의사를 대처할 수 있을 정도의 성과를 보였다.
또 3년 과정의 간호학교를 병설해 무료로 운영해 이곳에서 60여명의 간호사를 배출했다. 후베르 원장을 비롯한 독일병원 의사들과 간호달의 강의를 맡았다. 김근호 의사는 해부학 강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들을 지켜본 루이제 폰 외르첸 수녀원장은 “어린 간호사 후보생들이 업무를 시작할 때는 아무것도 몰랐지만 기술을 빨리 터득해 곧 숙련되기 시작했다”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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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6·25전쟁 당시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유엔 22개국에서 195만7733명이 참전했다. 참전용사들의 용기와 활약 덕분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을 수 있었다. 은 유엔평화기념관과 함께 올해 정전협정 70주년을 기념해 한달에 한번 총 21회에 걸친 ‘이달의 유엔참전국’ 연재를 통해 유엔참전국과 참전용사의 활약상을 조명하고 기억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