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오피스텔 주차타워 불, 드라이비트 외벽 '불쏘시개' 됐나?(종합3보)

불 확산 속도 높여 화재 취약…7명 연기흡입 등으로 병원 이송
최초 발화점 타워 저층부 추정…내일 소방·국과수 합동감식

9일 오전 부산 부산진구 서면 오피스텔에 불이 난 모습.(부산소방재난본부 제공)

(부산=뉴스1) 노경민 강승우 기자 = "아침부터 '펑'하는 폭발음에 식겁했습니다. 건물 방에 중요한 서류가 있는데 어떡하죠."

9일 오전 불이 난 부산 부산진구 서면의 23층짜리 오피스텔 입주민 A씨는 화재 당시를 떠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급하게 대피하느라 서류를 챙기지 못한 A씨는 소방대원에게 "오늘 중으로 서류를 다시 들고 올 수 있느냐"며 애타게 물었지만, 아직 건물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A씨는 "건물에 사는 외국인 친구가 폭발 소리를 듣고 난 후 누군가 문을 세게 두드렸다고 하더라"며 "폭발음에 다른 주민들도 소리를 지르며 밖으로 대피했다"고 다급했던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부산소방재난본부는 이날 낮 12시30분 화재 현장 앞에서 최해철 부산진소방서 현장대응단장 주재로 2차 브리핑을 열었다. 브리핑에 따르면 불은 이날 오전 6시32분께 오피스텔의 주차타워에서 시작됐으며 약 50분만에 초진을 완료했다.

화재로 주차타워의 오른쪽 외벽이 검게 탔고, 불씨가 옆 2층짜리 상가에 옮겨붙어 오전 8시6분쯤 대응 2단계를 발령해 상가에서 화재 진압을 벌였다. 소방은 인력 286명, 장비 99대를 동원해 오전 11시46분쯤 상가 내 큰불을 잡고 대응 1단계로 하향된 후 낮 12시51분쯤 초진을 마치고 대응 1단계를 해제했다.

경찰은 주변 주택가에서 순찰차를 통해 주민들을 대피시켰다. 오피스텔 20층 주민 3가구가 구조 요청을 해 구조 완료했다.

대피 인원 73명 중 35명이 단순 연기흡입 피해를 입은 가운데 모두 무사히 대피한 것으로 파악됐다. 다만 또다른 7명이 연기 흡입으로 병원으로 이송됐다. 옆 상가에서 인명 피해는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소방은 주차타워 외벽 소재가 가연성 물질인 '드라이 비트'(dryVit,스티로폼에 시멘트를 덧바른 마감재)라고 추정했다. 화재에 취약한 만큼 불이 급속히 확산돼 옆 상가까지 순식간에 번진 것으로 보인다.

드라이비트 화재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앞서 2015년 1월 의정부 아파트 화재(사상자 130여명)와 2017년 12월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29명 사망)의 원인도 드라이비트로 지목됐다.

이 사고로 2015년 이후부턴 6층 이상 건물은 드라이비트 사용이 금지됐다. 해당 오피스텔의 준공일자는 2004년이다.

다행히 주차타워에서 시작된 불이 오피스텔로 번지지 않아 대형 참사는 면했다.

9일 오전 10시20분께 부산 부산진구 서면에 위치한 23층짜리 오피스텔에서 발생한 화재가 옆 상가에 옮겨 붙어 연기를 뿜어내는 가운데 소방대원들이 화재 진압 작전을 펼치고 있다. 2023.1.9/뉴스1 ⓒ News1 강승우 기자

소방 조사 결과 주차타워 내부에 스프링클러가 설치돼 있었지만, 정상 작동했는지 여부는 아직 파악되지 않았다. 주차타워 내 차량에 큰 피해는 없는 것으로 추정한다고 소방은 전했다.

아직 최초 발화점은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불이 주차타워 아래쪽에서 위로 번진 것으로 추정돼 소방은 저층부에서 불이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최 단장은 "드라이피트 외벽은 불이 잘 붙는 소재로, 불 확산 속도가 빠르다"며 "오피스텔까지 불이 번지지 않았고 모든 방을 수색해 모두 안전히 대피시켰다. 주차타워 내부 진입이 어려워 아직 정확한 최초 발화점은 파악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밖에서 육안으로 확인한 결과, 주차장 내 차량 피해는 크게 없는 것으로 예상된다"며 "불이 붙은 외벽이 상가 쪽으로 떨어져 확산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임옥근 동아대 경찰소방학과 교수는 "드라이비트와 같은 가연성 소재로 외벽을 만들면 화재가 벽을 타고 빠르게 확산할 위험이 크다"며 "불연성 소재를 사용하거나 건물 외벽에도 물을 적셔주는 '드렌처 설비'도 화재 위험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날 오전까지 오피스텔 일대는 짙은 연기에 매캐한 냄새로 가득했다. 오피스텔 뒤편에는 유리 파편이 쏟아져 있었고, 상가 앞 도로와 주차된 차량에는 철제 파편이 무더기로 흩어져 있었다.

현장에서 만난 숙박시설 업주 B씨는 "아침부터 연기가 호텔까지 들어와 숨을 못 쉬겠더라"며 "경찰이 숙박 손님들 모두 대피시켰다. 지금 조금 나아진 정도이지만, 아침부터 정신이 없다"고 말했다.

화재가 일어난 한 가게 업주 C씨는 "상가 안에 부탄가스가 많아 불이 나기 전 소방에 알렸지만 별다른 조치가 없었다"며 "소방이 제때 대응했다면 상가에 이렇게 많은 피해가 일어나진 않았을 것"이라고 불만을 쏟아내기도 했다.

소방은 10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합동감식을 실시해 정확한 화재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9일 오전 9시49분께 부산 부산진구 서면의 23층짜리 오피스텔 뒤편 도로에 화재로 인해 깨진 유리 파편이 흩날리고 있다. 2023.1.9/뉴스1 ⓒ News1 강승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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