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소령을 가로질러…‘낙오자의 길’ 하동 의신~함양 음정마을 걷다
(서울=뉴스1) 서영도 기자(편집 에디터) = 지리산을 종주하는 사람들에게 의신마을이나 음정마을은 다소 생소한 지명이다. 천왕봉을 향해 바삐 걷느라 왼쪽에 있는 음정, 오른쪽에 있는 의신을 찾을 이유가 별로 없다. 그러나 무턱대고 나선 종주 길이 벅차거나 부상으로 포기해야 할 경우엔 하산 길이 마땅찮다. 되돌아가려면 삼도봉(1501m) 토끼봉(1534m) 명선봉(1586m) 등을 거꾸로 넘어가야 하는데 생각만 해도 숨이 막힌다.
다행히 연하천에선 함양(음정)으로, 벽소령에선 함양과 하동(의신)으로 내려갈 수 있다. 종주 포기자에겐 반가운 길이다. 그 길을 따라 걷는다.
◇전란의 현장 의신, 동학을 넘고 한국전쟁을 건너다
근현대사에서 의신(義信)마을은 동학혁명과 항일 의병 투쟁, 6.25의 전투를 겪은 곳이다. 벽소령을 통해 하동과 함양, 남원 등으로 이어지는 고개 길목에 위치해 전란을 피할 수 없었다.
1908년 지리산 일대에서 활약하던 항일 의병 100여 명은 의신마을에 내려갔다가 일본군의 기습 공격을 받아 대부분 전사하고, 일부만 벽소령을 넘어 산청으로 대피했다. 마을 주민들은 그때 숨진 항일 투사의 시신을 수습하여 ‘무명 항일 투사 묘지’를 만들었다.
의신마을은 6·25 전쟁의 상흔도 비껴갈 수 없었다. 지리산에 은거하던 빨치산과 토벌대가 격렬하게 교전한 가슴 아픈 현장이다. 1948년 겨울 지리산 화개로 패퇴하여 들어온 여수·순천 사건의 병력이 의신마을에서 국군과 전투를 벌였고, 그 과정에서 반란군 중대장이 사살됐다. 인근의 대성골은 1950년대 빨치산 수백 명이 몰살한 계곡이다. 마을 중간쯤에 2002년에 개관한 지리산 역사관에서는 지리산에서 삶터를 일구어 온 민중들의 생활상과 빨치산 관련 자료 등을 상세히 볼 수 있다.
◇바위 위 소나무 세 그루, 명상에 잠긴 서산대사
벽소령을 향해 왼쪽에 의신계곡을 두고 시멘트 길을 700m쯤 걸으면 바위 위에 자라는 소나무 세 그루가 눈길을 끈다. 어떻게 저 바위 위에 생명을 유지하며 버티고 있을까. 서산대사가 명상하면서 도를 깨우쳤다는 명상바위다.
서산대사(1520~1604)는 16세 때 의신마을과 가까운 원통암에서 출가했는데 이 명상바위 위에서 <화개동 입산시>를 짓고 읊으며 출가를 결심했다고 전해진다.
안내 표지판에 적혀 있는 <화개동 입산시>가 인상적이다.
花開洞裏花猶落 (화개동리화유락)
꽃피는 화개동엔 오히려 꽃이 지고
靑鶴巢邊鶴不還 (청학소변학불환)
청학의 둥우리에는 아직 학은 아니 돌아오네
珍重紅流橋下水 (진중홍류교하수)
잘 있거라 홍류교 아래 흐르는 물아
汝歸滄海我歸山 (여귀창해아귀산)
너는 바다로 돌아가고 나는 산으로 돌아가련다.
83세대가 살고 있는 의신마을에서 2.7㎞ 올라가면 비탈에 걸린 듯이 아담한 삼정마을이 반긴다. 화개면에서도 정확한 세대수를 알지 못하는데 대략 5~6가구가 눈에 들어온다.
삼정은 삼각등, 말안장터 등 ‘세 곳의 길지가 있어 이곳에 묘를 쓰면 세 사람의 정승이 나올 것’이라 하여 삼정(三政)이 되었다 한다. 삼정에는 벽소령 등산로 말고도 빗점골, 왼골, 사태골, 절골 등의 샛길이 주능선까지 이어진다. 그중 빗점골은 빨치산 남부군 총사령관 이현상(1905~1953)이 최후를 맞이한 곳이다.
삼정마을에서 오른편으로 900m를 가면 해발 750m 부근에 위치한 설산습지가 있다. 부처님이 고행했다는 히말라야 설산에서 이름을 따와 마을 이름이 된 곳으로, 30년 전 전답으로 쓰였지만 사람이 떠나면서 휴경상태가 돼 지금은 동·식물의 안식처다.
◇대성골의 아름다운 추억, 그러나 아련하고 시린 세월
산행길에선 벗어났지만 대성골을 지나칠 순 없다. 의신마을 입구에서 오른쪽 세석대피소 방향, 벽소령 방향과 반대쪽으로 2.5㎞ 남짓을 가면 ‘사라져 가는’ 대성마을이 있다. 주민들은 대성골에 띄엄띄엄 집을 짓고 살았지만, 2023년 봄 산불로 대부분의 집들이 불에 타 버렸다. 기자가 갔을 땐 어르신 한 분이 제초기로 밭에 잡초를 제거하고 있었다. 보상금이 한 푼도 없었다니 마을을 떠나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등반객들한테 ‘대성골 그집’으로 유명한 김남성(50)-김선미 씨(46) 부부도 하루아침에 터전을 잃고 의신마을로 옮겨왔다. 대성골에서 나고 자란 남성 씨는 산을 좋아했던 의정부 처녀 선미 씨에게 천왕봉(1915m)에서 청혼해 대성골에서 신혼을 시작했다고 한다. 등반객이 잠시 쉬어 가는 ‘주막집’을 운영하며 아들 둘을 키워냈다. 아들 둘은 중학교까지 그 산길을 따라 통학했다. 오르막 내리막을 반복하는 그들의 통학길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그려진다.
김 씨 부부도 산불로 집을 잃고 지금은 의신마을로 이주해 민박집을 운영하고 있다.
◇ “나도 코재다” 삼정마을을 굽어보며 묵묵히
삼정마을에서 벽소령 쪽으로 1㎞ 구간은 지리산답게 경사가 급하다. 숨을 헐떡이며 코재 위에 서니 매미 소리만 맹렬하다. 보통 코재는 코가 닿을 듯한 가파른 경사에 이름을 붙이는데 악명 높은 화엄사~노고단 사이의 코재엔 못 미치지만 이곳도 이름값은 하고 있다. 이제 벽소령까지 3.1㎞. 고도가 높아지면 길이 가팔라져야 하는데 평평한 자갈길의 연속이다. 마음의 여유가 생겨 계곡에 발을 담그고 늦여름의 여유를 만끽한다. 발이 시려 오래 머물지 못하고 마지막 등정을 준비한다. 막 돌계단을 오르는데 등반객이 내려온다. 단체 종주에 나섰는데 다리를 다쳐 의신으로 하산한단다. 이 길이 없었으면 어쩔 뻔했는가.
하늘이 보여서 벽소령인가 했더니 다시 고개다. 산에서 정상은 코앞에 있어도 주로 숨어있다. 조금 더 오르다 모퉁이를 돌았더니 시원한 바람이 스친다. 고개를 돌려보니 사람들이 모여 있다. 벽소령 대피소(1321m)다. 점심시간이 조금 지났지만 ‘대성골 그집’에서 해준 주먹밥으로 배를 채우고 남은 주먹밥은 등산객에게 나눠줬다. 산을 타는 사람들은 음식을 서로 주고받는데 지리산은 특히 자연스러운 거 같다.
◇ 300m 내려가자마자 임도…지루한 산길 반가운 음정
벽소령에서 300m 돌계단 길을 내려가자 임도가 나온다. 1967년 여름 서해안을 통해 들어온 간첩들이 지리산 토끼봉과 칠불사 일대에 입산했는데 그 사건을 계기로 군사작전 도로를 1972년에 완공했다. 1980년대 관광도로로 만들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주민 반발로 무산돼 아직 자갈길을 유지하고 있다.
걷기는 편하지만 지루하다. 다행히 길 중앙에 차바퀴에 깔리지 않고 살아남은 질경이가 푸른 생명력을 뽐낸다. 벽소령대피소에서 2.6㎞ 지점에 연하천 갈림길이 있다. 연하천대피소에서 종주를 포기하고 3.2㎞ 내려오면 이곳 임도를 만나는 것이다. 여기서 음정까지는 4.1㎞. 오른쪽을 따라 내려오는 계곡은 광대골의 지류답게 물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넓고 깊다. 울창한 나무에 가려 아래는 보이지도 않는다.
낙오자들을 위한 배려일까? 탐방로를 나오자 택시 콜 번호가 적혀있다.
여기서 음정까지는 10여 분 더 걸어야 한다. 길 양쪽에 감나무가 무성하다. 단감이 아닌 고종시다. 마을이 가까워지자 고사리밭이 펼쳐진다. 고사리는 고소득 작물이라 많은 주민이 경작에 뛰어들었다. 꺾지 못해 남겨진 고사리는 뜨거운 태양 아래 고개를 들지 못한다. 전원주택인 듯한 웅장한 집은 외지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곳에 있지만 ‘고사리 팝니다’란 푯말을 세운 집은 소박하고 단정하다.
73가구로 이뤄진 해발 500m 이상 고지에 있는 음정(陰丁)마을은 북쪽으로는 삼정산, 남쪽으로는 지리산 자연휴양림에 접해 있어 찾는 사람이 적지 않다. 조선시대에 장(시장)이 선 까닭으로 정쟁(丁場) 이라고 불려서 정(丁)이 들어갔고 음지에 위치해 음(陰)을 붙였다. 양정(陽丁, 46가구), 하정마을(下丁, 31가구)과 함께 마천면 삼정리를 이룬다.
버스를 오래 기다려야 해서 택시를 탔더니 기사님이 “음정에선 엄청 부자가 나왔어요. 서울에서 주택사업을 해 수천억을 번 사람도 있고…” 묻지도 않았는데 알려준다.
이 마을에서 내려오는 전설이 ‘나무꾼과 선녀’와 관련된 부자바위다. 부~자(富者)아닌 부자(父子)바위가 정확한 이름인데 자꾸 부르면 이름대로 된다고 그 父子가 富者를 낳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료 참조=디지털하동문화대전, 디지털함양문화대전, 지리산 마을 발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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