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正'을 200번 새길 때까지…굴리고, 내리치고, 흔들고, 채우는 '수양'
'단색조 미니멀리즘' 최상철, 백아트서 개인전 '귀환'…3월30일까지
결말을 알 수 없는 자연스러움은 거침없는 생명력으로 충만하고
- 김일창 기자
(서울=뉴스1) 김일창 기자 = 그럴듯하게 그려내려는 욕심은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다. 무심한 상태 속에서 이뤄지는 이 작가의 드로잉 작업은 어떤 의미나 가치 부여로부터 완전히 자유롭다.
둥그런 돌, 빳빳하고 굵은 철사, 수백 개의 연필심 등 일반적인 드로잉 도구가 아닌 자신이 직접 고안하고 만든 다양한 도구는 캔버스 위를 자유롭게 유영한다. 만물이 생성되기 이전, 무차별적으로 모든 잠재력이 뒤엉켜 있는 혼돈 속에서 어느 순간 모습을 드러내는 질서, 그래서 결말을 알 수 없는 그 자연스러움은 거침없는 생명력으로 충만하다.
작가는 말한다. "누구나, 어린아이도 그릴 수 있는 그림"이라고. 허나 우리는 안다. 그처럼 그릴 수 있다고 쳐도, 그의 정신은 모방할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마치 누가 노래해도 전인권, 최백호의 '바이브'를 절대 따라 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는 '그림'과 '자연' 그 자체다.
지난해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개막한(5월19일까지) '한국의 기하학적 추상미술'전(展)을 계기로 과거 주목받지 못했던 기하학적 추상미술이 부상하고 있다. 여러 아티스트가 있지만 오는 3월30일까지 서울 종로구 화동 백아트에서 개인전을 여는 최상철 작가(78) 만큼 관심을 끄는 이가 있을까.
1970년대 초 기하학적 추상작품으로 미술계에 알려지기 시작한 최상철은 그 시대 이강소, 권순철 등과 함께 '신체제' 그룹전에 참여하고, 1981년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참가하는 등 일관되게 단색조 미니멀리즘을 추구한 작가다.
그는 1970년대 후반부터 우리 삶의 겉모습이 아니라 내면을 이루는 근원적인 곳으로 향했다. 수평과 수직을 만들어내는 직선, 그런 인위적인 선이나 장식적인 색을 버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한 잠재력의 세계, 자연으로 향한 것이다. 그렇게 생명력으로 충만하며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선과 색으로, 가장 자연스럽고 평온한 세계로 전회(轉回)한 그다.
최상철 작가는 오늘도 '바를 정'(正)을 하나씩 써 내려간다. '정' 자 하나가 200번이 될 때까지, 그는 캔버스를 흔들고, 철사를 내리치고, 작은 사각 틀 안을 여러 색으로 채운다.
그에게 그림은 '그리지 않으므로 완성하는 것'이다. 자신이 정한 규칙에 따라 묵묵히 일련의 행위를 반복할 뿐이다. 반복된 행위가 만들어낸 흔적들, 그 궤적들이 작품 그 자체인 셈이다.
이번 전시 '귀환: DAWN OF TIME'은 최상철 작가의 1980년대부터 2022년도 사이에 제작된 작품들 가운데 주요 전환의 지점들을 담고 있는 50여점을 한자리에 모았다. 1980년대부터 시도한 8개의 도구 시리즈 작품들과 함께 16점의 다채로운 드로잉 작품들도 감상할 수 있다.
그에게 '귀환'은 회화 이전에 존재하는 최초의 회화를 경험하는 것, 글도 그림도 모르는 어린아이가 집어 든 막대기를 땅에 끌며 걸어가면서 그려내는 '무엇'이다. 지금 그는 '귀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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