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인공, 세포와 우주…카펫에 인화한 사진, 그 '황홀경'

혁신적인 사진가 토마스 루프, 20년 만에 한국서 개인전
신작 'd.o.pe.' 아시아 최초 공개…PKM서 4월 13일까지

Thomas Ruff, d.o.pe.10, 2022. PKM갤러리 제공
토마스 루프 개인전 모습. Installation view of Thomas Ruff-d.o.pe. at PKM.

(서울=뉴스1) 김일창 기자 = 동시대 사진예술의 거장 토마스 루프가 20년 만에 한국을 찾았다.

PKM갤러리는 오는 4월 13일까지 토마스 루프의 개인전 'd.o.pe.'를 연다. 이번 개인전에서는 전시명과 동일한 최신 사진 시리즈 'd.o.pe.'가 아시아 최초로 공개된다.

'd.o.pe.'라는 제목은 영국 작가 올더스 헉슬리의 '지각의 문'에서 따왔다. 책은 인간이 화학적인 촉매제를 통해 의식의 지평을 넓히고 자기 자신을 초월할 수 있다고 본 헉슬리의 자전 에세이로, 루프는 'd.o.pe.'에서 컴퓨테이션(computation)으로 산출한 이미지를 통해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확장함으로써 이에 화답한다.

그의 화면은 잎사귀, 깃털, 조개껍질 등 주변의 익숙한 자연 형상으로 읽히는 동시에 사이키델릭한 가상 공간으로 관람자를 빠져들게 하고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미세한 세포를, 광활한 우주의 예측 불가능한 현상을 연상하게 한다.

신작 'd.o.pe.'는 그가 카펫을 사진의 지지체로 처음 사용한 작업으로, 다채로운 프랙털 패턴이 최장 290cm의 거대한 융단 위에 황홀경처럼 펼쳐진다.

수학자 브누아 망델브로가 1975년에 제시한 용어인 '프랙털'은 기본적인 형태 요소가 커지거나 줄어들면서 반복적으로 증식되는 구조를 뜻하는 것으로 자연 및 인공의 세계 모두에서 발견된다.

루프는 2000년대 초반 프랙털 구조의 다차원적인 아름다움을 작업에 반영하고자 했으나 당시의 기술력으로는 불가능했고, 20년이 지난 시점인 2022년 소프트웨어의 발전과 더불어 비로소 실현할 수 있었다.

사진예술이 테크놀로지와 불가분리한 관계임을 인정하는 그는 'd.o.pe.'에서 신기술에 말 그대로 '뛰어들어'(dive into) 환상적인 이미지를 추출하고 이를 부드러운 직물 위에 깊이 있게 투사해 냈다.

루프는 이렇듯 사진의 기술과 개념을 끊임없이 탐구하고 이에 도전하며, 국제 무대에서 독보적인 시각언어를 구축했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기술이 이행하고, 사진이 현실을 포착할 뿐 아니라 비가시적인 세계를 보이게 하는 매체로 전환되는 시대를 가로지르면서,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잠재력과 한계를 가진 채 어떻게 우리의 시각을 변화시키는지 탐색한 것이다.

루프는 독일 쿤스트아카데미 뒤셀도르프에서 베른트 베허(Bernd Becher, 1931-2007)에게 사진을 사사 후, 1980년대부터 안드레아스 거스키(Andreas Gursky, 1955-), 칸디다 회퍼(Candida Höfer, 1944-) 등과 함께 뒤셀도르프 사진학파의 주요 멤버로 세계 사진계에서 활약하고 있다.

icki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