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하얘지니 괜찮다고?…술 먹고 얼굴 빨개진다면 특별히 조심하세요

'알코올성 안면홍조' 男, 지방간에 심혈관질환 위험도 높아
담배까지 피우면 위험도 두 배로…"반드시 금연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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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천선휴 기자 = "괜찮아. 다시 하얘져."

30대 직장인 A씨는 다가오는 연말이 두렵다. 가뜩이나 술도 못 마시는 데다 한 잔만 마셔도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르는 탓에 평소엔 술을 거절하지만 송년회 자리에선 그마저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함께 자리하는 사람들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A씨가 술을 사양해도 "여기서 더 마시면 얼굴이 다시 하얘질 것"이라며 더 권하곤 한다. 하지만 A씨는 그럴 때마다 간에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닌지, 이렇게 정말 더 먹어도 건강에 문제가 없는지 걱정될 따름이다.

2023년이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다. 연말이 되면 각종 송년회들이 물밀듯 잡히곤 한다. 특히 음주에 관대한 한국은 연말이 되면 술에 취해 비틀대는 사람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술집들에선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로 술잔을 기울이는 사람도 태반이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국민건강지식센터에 따르면 평소 술을 즐겨 먹지 않아도 연말연시 모임 등 1년에 일시적으로 몇 번씩 하는 폭음도 건강엔 치명적이다. 일시적으로 많은 양의 술을 마시면 급성 알코올 중독증에 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는 발열·구역·구토, 황달이 심해지는 증상 등이 나타나게 되고 심한 경우 의식이 흐려져 응급실을 방문해 중환자실에서 집중치료를 받지만 사망률이 높은 편이다.

이처럼 폭음을 하는 것도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지만 의사들은 술 한두 잔에 얼굴이 빨개지는 사람이라면 간 건강은 물론 평소 다른 질환 발병도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에 따르면 가정의학과 오시내 교수 연구팀이 2019~2021년 질병관리청에서 진행한 국민건강영양조사에 참여한 성인남성 5134명을 분석한 결과, 술을 마시고 얼굴이 붉어지는 '알코올성 안면홍조' 증상이 있으면 대사이상 관련 지방간 질환(MASLD) 위험이 높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연구 결과를 살펴보면 알코올성 안면홍조가 있는 사람이 술을 마실 경우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보다 MASLD 위험이 2.35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알코올성 안면홍조가 없는 음주자는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보다 MASLD 위험이 1.9배 높았다.

알코올성 안면홍조가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술을 먹는 행위 자체로 간 건강이 악화할 가능성이 더 크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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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뿐만이 아니다. 음주 후 얼굴이 붉어지는 사람은 심혈관질환도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강보승 한양대학교 구리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국내는 연구가 상대적으로 적고 덜 알려져 있을 뿐, 음주 후 얼굴이 붉어지는 사람은 음주 여부와 상관없이 협심증, 심근경색 등 심혈관질환 발생 위험이 높다"고 말했다.

강 교수에 따르면 술을 마시고 얼굴이 붉어지는 이유는 알코올 대사 두 번째 효소인 알데히드분해효소(ALDH2) 때문이다.

알코올이 우리 몸에 들어오면 첫 번째 작용하는 효소가 알코올 분해 효소다. 그러면 알코올은 아세트알데히드로 바뀐다. 이 바뀐 아세트알데히드는 알데히드분해효소가 분해하는데 유전적으로 이 기능이 떨어지면 아세트알데히드 농도가 치솟으면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는 것이다.

문제는 이 알데히드분해효소는 알코올에 의해 생기는 것만 분해하는 게 아니다.

강 교수는 "쉽게 표현하면 활성산소가 혈관을 공격하는데 이때도 알데히드가 나와 분해효소가 이를 분해해야 한다"며 "이 때문에 술을 먹고 얼굴이 빨개지는 사람은 심혈관질환 위험도 높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특히 한국, 중국, 일본은 이 분해 기능이 약한데 중국 남부와 일본은 유전적으로 이 기능이 약한 사람이 전체인구의 40%를 넘고 한국은 30%로 보고 있다"며 "전체 인구로 따져봤을 때 이는 굉장히 많은 수치"라고 설명했다.

반면 북미와 유럽은 유전적으로 이 기능이 약한 사람은 거의 0%에 가깝다. 이 때문에 관련 연구도 활발히 진행되지 않고 있고, 우리나라는 북미와 유럽의 치료와 연구 트렌드를 따라가기 때문에 강조가 덜 돼왔다는 설명이다.

강 교수는 "2019∼2021년 전국 19세 이상 성인 2만25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국민건강영양조사 데이터에서 35세 이상 남성의 표본을 분석한 결과, 술 한두 잔에 얼굴이 붉어지는 체질을 가진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협심증이나 심근경색이 발생할 위험이 1.34배 높았다"면서 "여성의 경우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이 심장을 보호하는 효과가 있어 유의미한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알코올성 안면홍조가 있는 사람은 담배를 피우는 것도 위험하다.

강 교수는 "음주로 얼굴이 빨개지는 사람이 담배까지 피우면 심혈관질환이 발생할 위험이 2.6배 더 높아진다"며 "특히 일본 연구를 보면 혈관 안쪽이 좁아지는 게 아니라 바깥에서 꽉 조이는 관상동맥경련협심증 위험성도 크게 높아진다는 결과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회진을 돌 때 늘 하는 얘기가 있는데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며 "소량의 술로 얼굴이 금방 붉어지는 체질을 가진 남자라면 반드시 목숨을 걸고 담배를 끊어라"라고 강조했다.

sssunhu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