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혜경의 <동심초>, 영화 <동심초> 주제가로 유명해져
<동심초>는 권혜경의 대표곡은 아니지만 그녀의 주요 히트곡 중 하나이다.
권혜경은 1956년 KBS에 전속가수 3기로 들어가 가수 생활을 시작했다.
‘오 대니보이’를 열창해 뽑혔다고 한다. ‘사랑이 메아리 칠 때’ 등 히트곡을 낸 안다성이 동기생이었다.
전속가수가 된 이듬해인 1957년 그녀가 부른 <산장의 여인>이 공전의 히트를 함으로써 권혜경은 일약 유명 가수가 됐다.
그 뒤 1959년에 신상옥 감독이 만든 영화 <동심초>의 주제가를 불렀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김성태 작곡의 가곡 <동심초>와 가사와 곡이 같은 것이다.
창법만 다를 뿐이다.
대중가요풍으로 부르긴 했지만, 이 노래의 클래식한 분위기에 권혜경씨의 목소리가 어울렸기 때문에 이 곡을 부르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권씨는 서울 음대 성악과를 중퇴하고 은행원으로 일하다 가수로 데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심초>는 해방 직후인 1946년 작곡가 김성태 선생이 김억 시인이 번역한 중국 당나라 때 여류시인 설도(薛濤)의 작품에 멜로디를 붙인 가곡이다.
그러나 일반에 널리 알려진 것은 권혜경이 라디오 드라마와 영화 주제가로 이 노래를 부르면서부터다.
1963년 8월 31일자 경향신문 기사는 권혜경 이전에도 동심초가 불려져 왔음을 짐작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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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음대 학장 시절의 작곡가 김성태. © News1
</figure>이 신문기사는 ‘세미 클래식한 창법이 클로즈 업’이란 제목으로 한창 인기를 누리고 있던 가수 권혜경을 다뤘는데 이런 내용이다.
“‘유성(流星)이 흘러간 곳(조남사의 동명 연속 방송극 주제가로 박춘석 작곡)’이란 노래가 연 3주째 히트하고 있다.
이 노래를 권혜경이 불렀다.
8년전 일본색조의 저속한 노래가 범람하던 가요계에 청아하고 고운 목소리와 세미 클래식한 창법으로 클로즈 업 된 것이 권혜경이다.
권양은 이관옥씨에게서 정식으로 성악공부를 했다.
아무리 유행가수라도 발성을 연구해야 한다는 것이 오늘의 요구이고 보면 권양은 남보다 먼저 가수로서의 정 코스를 밟아 온 셈이다.
<동심초>란 노래가 더욱 대중에게 침투된 것도 권양이 노래하면서부터였고, 오아시스 레코드사의 전속으로 있으면서 히트한 ‘산장의 여인’이나 ‘첫 사랑의 화원’ 그리고 ‘호반의 벤치’ 등 모두 학생이나 지식인 사이에 더 유행되었다.
그동안 레코드에 취입한 곡만도 70여곡. 현재는 ‘오아시스’의 전속가수.
유현목 감독영화 ‘푸른 꿈은 빛나리’의 주제가를 금호동과 듀엣으로 부르게 되어 요즘 그 연습에 열중 - 두 사람 다 화제의 인기가수라서 더욱 기대된다.
28세로 미혼인 권 양은 깔끔한 몸가짐으로 유명한데 앞으로 열렬한 연애를 한번만 해 보고 싶은게 꿈.”
여기서 나오는 이관옥씨는 당시 서울음대 성악과 교수로서 우리나라 제 1세대 소프라노로 꼽히는 분이다.
또 ‘동심초가 더욱 대중에게 침투된 것은 권양이 노래하면서부터였다’는 이야기는 ‘노래는 그 전에도 있었으나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다’는 의미로 보인다.
<동심초>라는 제목으로 극작가 조남사씨가 라디오 드라마를 써서 인기를 얻게 되자 신상옥 감독이 당시 최고의 배우들인 김진규, 최은희, 엄앵란, 김석훈 씨를 캐스팅해 영화로 만들었다.
전쟁미망인(최은희)과 약혼녀가 있는 출판사 전무(김진규)의 이룰 수 없는 사랑을 그린 영화다.
“무어라 맘과 맘은 맺지 못하고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하는 노래 가사처럼 ‘주인공 두 사람은 사랑하면서도 맺어지지 못하고 결국 헤어진다’는게 영화의 스토리다.
1967년에는 출연배우가 신성일, 김지미, 남정임으로 바뀐 두 번째 <동심초>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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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사천성 망강루공원 안 '설도기념관'에 있는 그림 속의 설도. © News1
</figure>권혜경씨가 영화주제가로 부른 <동심초>는 당초 김성태 선생이 가곡으로 만든 것을 가요풍으로 부른 것이다.
1950년대 그 당시엔 가곡 작곡으로 유명한 김성태 선생이나 김동진 선생이 영화 음악, 영화 주제가를 많이 만들던 시기였다.
그래서 일부에선 순수 음악에서 벗어났다는 비판도 있었다.
그렇게 대중가요로 불리던 <동심초>가 어떻게 다시 가곡으로 굳건히 자리잡게 되었는지 잘은 모르지만, 이 노래가 대중가요적인 요소가 있음에도 원래 작곡된 대로 가곡으로 더 어울렸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권혜경씨 같은 목소리의 가수가 세미 클래식한 창법으로 부르지 않았더라면 이 노래가 가요로 히트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동심초> 같이 가곡에서 대중가요로 히트했다가 다시 가곡으로 정착한 유사 케이스로 <보리밭>을 들 수 있다.
<보리밭>은 6.25전쟁 중인 1951년 시인 박화목이 가사를 만들고 윤용하가 작곡한 가곡이지만, 1970년대에 가수 문정선이 고고 스타일로 부른 후 더욱 유명해졌다.
그후 <보리밭>은 언제나 인기가곡의 반열에 있다. 김소월 시로 된 가곡 중 가장 꾸준히 불리는 김동진 곡 <진달래꽃>은 1962년 소월의 생애를 다룬 영화 <불러도 대답없는 이름이여>의 삽입곡이기도 했다.
노래가 히트한 후 같은 제목으로 영화까지 만들어진 케이스도 있다.
1968년에 가곡으로 나와 유명해진 <비목>인데 1979년 이 제목으로 영화가 만들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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