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수탈의 심장부를 공격하고 싸우다 순국하다 [역사&오늘]

12월 28일, 나석주, 동양척식주식회사에 폭탄 투척

나석주 의사. (출처: Unknown author, 사진(1938),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926년 12월 28일, 나석주가 일제의 식민지 경제 착취의 상징이었던 동양척식회사에 폭탄을 던졌다. 일제 강점기 조선인들의 숭고한 항일 정신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 중 하나다.

나석주는 1892년 황해도 재령군 북률면 남지리에서 농가의 아들로 태어나 자랐다. 어린 시절부터 총명하고 건강했던 그는 진초리의 보명학교를 다니며 학문을 익혔다. 하지만 1910년 경술국치로 조국이 일본에 강제로 합병된 후 그의 집안은 125년간 일궈왔던 땅을 동양척식회사에 빼앗겼다.

소작농으로 전락한 후 가세가 기울어 궁핍해진 생활에 격분한 나석주가 재령군사무소를 찾아가 항의했지만, 일제는 그를 비웃고 오히려 빼앗은 땅을 일본인에게 양도했다. 이 사건으로 그는 동양척식주식회사에 강한 적개심을 품게 됐다.

나석주는 조국의 독립에 헌신하기로 결심하고 23세에 만주로 건너가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나자 그는 50명의 동지들과 항일 비밀결사를 조직해 국내 부호들의 집을 습격하고 군자금을 모집해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보냈다.

그는 또한 평산의 경찰 주재소를 습격해 경찰관과 면장을 살해하고 안악군의 친일파 부호를 사살한 후 중국으로 피신했다. 이후 그는 임시정부의 의열단 소속으로 활동하던 중 김구와 김창숙으로부터 동양척식주식회사 폭파 지령을 받았다. 그는 중국인으로 위장해 국내에 들어온 후 건물에 잠입해 일본인 직원들을 사살했고, 이어 폭탄을 투척했지만 불발됐다. 이후 출동한 일본 경찰과 총격전을 벌여 7명을 사살했다.

나석주는 경찰과의 총격전 끝에 가슴에 총상을 입고 체포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치료를 거부하고 순국했다. 그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위대한 독립운동가였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됐고, 명동의 동양척식주식회사 자리에는 그의 동상이 건립됐다.

acenes@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