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호제의 먹거리 이야기] '망고의 신맛'
(서울=뉴스1) 전호제 셰프 = 나는 아직 망고나무가 자라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망고가 불러오는 기억은 마트선반에 놓인 것을 본 것이 전부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망고나무를 보면서 열매가 익어가는 모습을 지켜봤거나, 시장에 계절마다 상인이 망고를 파는 모습을 봐온 사람은 망고나무를 보면 다양한 기억이 떠오를 것이다. 망고의 종류나 맛에서도 우리가 모르는 작은 지혜도 배울 수 있다.
'망고 한 조각'이라는 책을 보면 저자가 아프리카 시에라리온 반군에게 두 팔이 잘린 채 배고픔에 먹어야 했던 과일이 망고다. 두 손이 잘린 고통 속에서 망고를 들고 먹을 수조차 없었던 저자의 생존스토리를 읽으니 틀에 박힌 망고의 이미지가 뇌리에서 사라졌다. 사람마다 망고 한 조각이 주는 의미는 이처럼 서로 다르다. 우리가 즐기던 망고의 맛도 나라마다 사뭇 차이가 난다. 이제 조금은 낯선 망고의 신맛을 소개하려 한다.
식당 점심 서비스를 준비하기 전에 베트남 친구들이 나에게 과일 간식을 나누어주곤 한다. 미소를 머금고 손을 뒤로 와서 맛을 보라고 한다. 연노랑 속살의 그린망고가 잘려져 있고 그릇 한편에 빨간색 양념도 놓여 있다. 맛은 아삭하면서도 풋풋한 망고향에 부드러운 신맛과 단맛이 섞여 있었다. 양념 소금에 찍어 먹어보니 짠맛과 감칠맛이 더해졌다. 더위에 지치지 않기 위해, 짠맛을 더해 과일을 먹는 방식이라고 했다.
그린망고는 국내에서 재배되는 빨간 껍질색으로 애플망고와 달리 익기 전에 먹는 망고이다. 애플망고는 우리나라에서는 2001년부터 재배돼 어느덧 20여년을 넘겼다. 망고의 당도도 12브릭스 이상으로 상당히 높고 촉촉한 속살이 특징이다. 달콤한 애플망고 빙수는 여름이면 특급호텔의 럭셔리 상품으로 불티나게 팔린다. 반면 그린망고는 덜 익었을 때가 오히려 구입하기 좋은 시기이고 새콤한 맛과 아삭한 식감을 즐기는 망고이다. 가격도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맛을 보고 나서 가족을 위해 3㎏ 한 박스를 구매했다. 그린망고는 작은 박스에 개별포장이 돼 집에 도착했다. 푸른껍질의 망고는 은은한 향이 있었다. 때마침 집에 찾아온 친척분들에게도 그린망고를 깎아드렸더니 모두 새로운 맛에 놀라워했다. 그 후 며칠 뒤, 남겨놓은 망고는 말랑해지고 처음의 신맛이 줄고 단맛이 강해졌다. 점점 우리가 익숙한 말랑한 망고와 유사해졌다.
보통 우리는 망고의 단맛에 이끌린다. 달달한 망고음료는 요즘 같은 폭염에 피로를 씻어준다. 농업인들도 망고의 단맛을 최대한 높이기 위한 연구를 해왔다. 우리나라는 2008년부터 제주도의 온난화대응농업연구소에서 아열대 기후에 맞는 과실과 작물에 대한 연구를 해왔다. 우리 땅과 기후에 맞는 달콤한 망고를 키우는 연구개발에 힘입어 국내 망고재배 면적은 2017년 42.3헥타르에서 2020년 67.6헥타르로 재배 면적이 62% 증가했다. 망고 생산량도 전체 아열대작물 중 제일 많다고 한다.
그러나 망고의 단맛은 망고가 가진 매력의 일부이다. 일찍부터 재배하고 음식에 활용해 온 나라들은 망고가 익기 전의 새콤한 맛을 즐겨왔다. 대표적인 나라가 인도이다. 망고는 인도 북동부, 방글라데시, 미안마 북서 지역 근처에서 유래되었다. 현재에도 전세계 망고 생산량의 45%를 인도가 차지한다.
인도에서는 덜 익은 망고의 신맛을 이용하는 조미료가 있다. 2000년대 초반 국내 인도식당에서 일했을 때 신망고맛을 어떻게 이용하는지 경험해 보았다. 그 식당에서는 인도북부 탄두리치킨이 대표메뉴로 매주 탄두리소스를 직접 만들었다. 나는 옆에서 순서대로 넣는 재료를 지켜보면서 틈틈이 질문을 던지곤 했다. 중간에 처음 보는 가루를 넣을 때 무엇인지 물어보니 망고가루라고 했다. "이건 암추르라고 해". 탄두리치킨을 만드는데 덜 익은 망고를 말린 가루로 넣는다. 물기를 뺀 요거트에 색소, 향신료, 암염 그리고 망고가루를 넣어 탄두리 양념을 만든다. 암추르는 탄두리소스의 새콤한 맛뿐만 아니라 다양한 신맛을 내는 가루 조미료로 사용된다고 한다.
남인도에서는 망고를 향신료와 소금에 절여 반찬으로 먹기도 한다. 이 음식은 인도 남부케랄라주를 여행하던 중 머물렀던 어느 민박집에서 맛본 적이 있었다. 민박집에서는 중간에 간단한 식사를 제공했다. 작은 밥과 플라스틱병에 담긴 양념이 있었다. 밥만 먹기 심심해서 통에 담긴 것도 먹어도 되냐고 물어보니 약간 난처한 미소를 지었다. 입맛에 맞을지 몰라 걱정하는 듯 보였다. 인도의 찰기가 없는 밥에 덜어 먹어보니 짠맛, 신맛이 농축된 향신료가 함께 느껴졌다. 이 음식이 샤만티라고 했다. 새콤한 이 망고 반찬은 우리의 오이짠지 혹은 갓김치처럼 밥맛을 불러일으켰다. 그린망고, 샐롯, 고춧가루, 코코넛으로 만든다.
그린망고로 우리나라 음식에 도전하는 분들도 있다. 태국이나 베트남에 교민들은 깍두기를 그린망고로 담아 먹는다고 한다. 더운 지방에서 재배되는 무보다 흔하고 가격도 저렴하다. 우리나라에 수입된 그린망고는 조금은 비싼 김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망고의 떫은맛이 덜한 것으로 골라야 우리김치와 비슷한 맛을 낸다고 한다.
베트남 이주여성이 만드는 한식에도 그린망고가 사용되곤 한다. 나의 친구 미선은 가끔 음식을 만들어 온다. 어느 날 돼지곱창볶음을 해왔다. 곱창볶음 가운데 노란 야채가 있어 무엇인지 물어보니 그린망고였다. 여기에 그린망고는 약간 후숙이 진행된 것으로 망고의 식감과 은은한 단맛이 매운 곱창과 잘 어울렸다.
망고의 신맛은 우리 식생활을 더 풍요롭게 해줄 수 있다. 요즘 같은 폭염에 시원하고 달콤한 음료도 좋지만, 새콤한 망고를 이용한 요리와 음식으로도 건강한 여름나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망고를 통해 새로운 맛을 알아 가 듯, 우리가 만나는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을 통해 작은 삶의 지혜 역시 얻었으면 좋겠다.
shef73@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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