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극복 원동력 된 '웅치 전적지' 국가 사적으로 지정

"민관 합동으로 왜군 전략 무력화…국난 극복의 전적지"

웅치전투 전적지인 전북 진안군 부귀면 일원. (문화재청 제공)

(서울=뉴스1) 조재현 기자 = "전주 전 만호 황박이 모집한 군사 200명을 모아 웅현에 복병했는데 웅현은 바로 전주와 진안의 경계였다. 이때에 이광이 나주 판관 이복남, 김제 군수 정담 등으로 복병장을 삼아 웅현을 파수케 하였는데 황박이 가서 조력한 것이다." (조경남의 '난중잡록' 中)

임진왜란 초기 전라도 방어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웅치 전투'가 벌어진 지역이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으로 지정됐다. 이 전투 이후 조선군은 전쟁에 필요한 물자를 호남 지역으로부터 조달하며 왜란 극복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다.

문화재청은 웅치 전투가 벌어진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신촌리 산51 일원과 진안군 부귀면 세동리 산289 일원을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으로 지정했다고 30일 밝혔다. 지정 명칭은 '임진왜란 웅치 전적'이다.

웅치는 완주군과 진안군 사이 고갯길의 지명으로 웅치 일대의 옛길은 전주와 전라도 동부지방인 진안 등을 연결하는 중요한 교통로였다. '선조실록' 등 여러 문헌에는 '웅현', '웅령'으로도 기록돼 있다. 현재는 '곰티' 또는 '곰치'로 불리기도 한다.

지난 7월 개봉한 영화 '한산:용의 출현'을 통해 재조명된 웅치 전투는 1592년 7월 우리 관군과 의병이 진안을 거쳐 전주를 공격해오던 왜군을 막아서며 전개됐다. 왜군은 결국 웅치를 넘어 전주 부근까지 진출했으나 전투 과정에서 많은 전력을 상실, 전면적인 공격을 진행할 수 없었다.

이후 우리 관군과 의병은 경기도와 경상도로 진출해 왜군과의 전투에서 중추적 역할을 수행했고, 필요한 물자도 원활하게 조달하며 왜란 극복의 계기를 마련했다.

문화재청은 "전주를 공격해 전라도 일대를 장악하고자 했던 왜군의 전략을 무력화시켰다는 점에서 승패를 떠나 국난 극복의 전적지로서 의미를 가진다"고 설명했다.

cho84@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