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기념사업? 제 책 읽는 것이 가장 본질적인 기념" [노벨상 현장]

한국기자들과 스톡홀름 현지 간담회…"복잡한 인간 삶 그대로 쓰고자 할 것"
"말하고 글 쓰고 듣는 것, 우리 희망의 증거"…'유니바켄' 평생 무료이용권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이 11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 스웨덴어판 출판사 ‘나투르 오크 쿨투르’에서 열린 한국 기자단과의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4.12.12/뉴스1 ⓒ News1 박지혜 기자

"제 책을 읽으시는 게 가장 본질적인 일 아닐까요? 그 외 바라는 것은 전혀 없어요."

(스톡홀름=뉴스1) 김일창 기자 =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54)는 11일(현지시간) 한국에서 기념사업 등을 추진하는 움직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한 작가는 이날 오후 현지출판사인 '나투르 & 쿨투르'(Natur & Kultur)에서 열린 한국기자 간담회에서 "저는 책 속에 모든 게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서 만약에 기념사업을 하고 싶으시다면 책 속에서 뭔가를 찾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떤 의미를 어떤 공간에 만듦으로써 사람들에게 닿는 것은 굉장히 가시적인 방법"이라며 "중요한 건 제가 책 속에 다 써놨다"고 강조했다.

'어두운 역사와 폭력이 반복되는 것을 보며 느끼는 무력감은 어떻게 극복하는가'란 질문에는 "글을 쓰려면 최소한의 믿음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어 "이 언어가 연결될 것이란 믿음이 없다면 한 줄도 쓰지 못할 것 같다"며 "글을 쓰기 시작한다는 거 자체가 아주 미약한 믿음이라도 믿음을 근거로 한다"고 했다.

한 작가는 "결국은 우리가 이렇게 말을 건네고, 글을 쓰고, 우리가 읽고 귀 기울여서 듣고 이런 과정 자체가 결국은 우리가 가진 희망을 증거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이 11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 스웨덴어판 출판사 ‘나투르 오크 쿨투르’에서 열린 한국 기자단과의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4.12.12/뉴스1 ⓒ News1 박지혜 기자

스톡홀름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정으로는 스웨덴의 국민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아파트를 방문한 일을 꼽았다. 린드그렌은 '말괄량이 삐삐', '사자왕 형제의 모험' 등을 쓴 작가이다.

한 작가는 "증손자가 개인사를 담아서 직접 설명해 줬다"며 "집 안의 모든 것들이 소박해서 이분이 '아주 단순하고 소박한 삶을 살았구나' 그런 모습을 느끼면서 감동받았다"고 말했다.

한 작가는 바쁜 일정 중 생긴 자유시간에 린드그렌 등의 작품으로 구성된 테마파크인 '유니바켄'(Junibacken)을 방문했다고 밝혔다. 뒤늦게 유니바켄 측에서 이 사실을 알고는 한 작가에게 평생 무료이용권을 선물했다고 한다.

한 작가는 '이번 노벨상이 앞으로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하는가'란 질문에 "강연문을 쓰면서 내가 '어디서 출발해서 지금 어디 있고 그래서 여기까지 왔구나' 하는 내 좌표를 알게 됐다"며 "제가 어디까지 왔는지 알았으니까 앞으로의 방향도 더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태까지 글을 썼기 때문에 앞으로 글을 쓰는 게 어려워질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며 "인간의 삶은 복잡하기에 복잡한 것을 복잡한 대로 쓰고자 할 것"이라고 했다.

자신의 작품을 번역한 번역가들에게 감사의 인사도 잊지 않았다.

한 작가는 "연회에서 수상 소감을 밝힐 때 당초 원고에는 번역가에 대한 감사의 뜻을 넣었는데 분량을 대폭 줄이면서 빼게 됐다"며 "제가 알기로 28~29개의 언어로 제 작품이 번역됐고, 번역가만 50명 정도 계신 것으로 알고 있다. 제가 그분들을 다 알지는 못하지만 우리는 모든 문장 속에서 모든 세부에서 함께 있는 것이다. 감사하다"고 말했다.

11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에 위치한 한강 작가의 스웨덴어판 출판사인 ‘나투르 오크 쿨투르’ 건물에 2024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 2024.12.11/뉴스1 ⓒ News1 박지혜 기자

icki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