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를 문 질문들, 결국 '사랑'…한강 "앞으로 더 나아갈 것"(종합)
[노벨상 현장] 한, 노벨문학상 수상자 강연 참석…작품 세계 압축해 소개
8살 때 썼던 시 속 '사랑'에 관한 질문들, 돌고 돌아 '사랑'으로 '작품'으로
- 김일창 기자
(스톡홀름=뉴스1) 김일창 기자 = 이제는 대문호가 된 작가 한강(54)은 늘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1979년 여덟 살의 나이에 쓴 시에서 '사랑이란 어디 있을까, 사랑이란 무얼까' 묻기 시작한 그는 몇 년 전까지 '세계는 왜 이토록 폭력적인가, 동시에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가'로 나아갔다.
약 46년이라는 시차를 둔 이 '질문들'은 그러나 다른 듯 같았다. 한 작가는 천착해 다다른 곳에서 발견한 것은 '사랑'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는 "지금까지 쓴 책을 뒤로하고 앞으로 더 나아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한 작가는 7일 오후 5시(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 스웨덴 한림원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자 강연(2024 Nobel Prize lecture in literature)에 나섰다.
연설은 여덟 살 때의 시집을 우연히 발견한 일화에서 시작했다. 한 작가는 "지난해 1월, 이사를 위해 창고를 정리하다 낡은 구두 상자 하나가 나왔다. 열어보니 유년 시절에 쓴 일기장 여남은 권이 담겨 있었다"며 "표지에 '시집'이라는 단어가 연필로 적힌 얇은 중철 제본을 발견한 것은 그 포개어진 일기장들 사이에서였다"고 입을 뗐다.
'1979년 4월 어느날'에 쓴 시 한 편은 이렇다. '사랑이란 어디 있을까?/ 팔딱팔딱 뛰는 나의 가슴 속에 있지/ 사랑이란 무얼까?/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 주는 금실이지'
한 작가는 이 시를 휴대전화 사진첩에 담았다. 현재의 '나'와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면서. 14년이 흘러 22살이 되던 해 그는 시와 단편소설을 잇따라 발표하며 '쓰는 사람'이 됐다. 그리고 5년이 더 흐른 뒤에 첫 장편소설을 발표했다.
한 작가는 "장편소설을 쓰는 일에는 특별한 매혹이 있었다"며 "하나의 장편소설을 쓸 때마다 나는 질문들을 견디며 그 안에 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 질문들의 끝에 다다를 때 그 소설을 완성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채식주의자'를 쓸 때는 몇 개의 고통스러운 질문들 안에서 머물렀다고 한다. 완전한 결백한 존재의 가능성, 얼마나 깊게 폭력을 거부할 수 있는가, 이를 위해 더이상 인간이라는 종에 속하기를 거부하는 이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등이었다. 한 작가는 "이 소설 전체가 그렇게 질문의 상태에 놓여있다"며 "응시하고 저항하며, 대답을 기다리며"라고 설명했다.
다음 소설 '바람이 분다, 가라'는 이 질문들에서 더 나아간 작품이다. 그는 "이 소설 마지막 장면에서 죽음과 폭력으로부터 온힘을 다해 배로 기어 나오는 그녀의 모습을 쓰며 나는 질문하고 있었다"며, 그 질문은 '마침내 우리는 살아남아야 하지 않는가, 생명으로 진실을 증거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했다.
'희랍어 시간'에서 질문의 겹은 또다시 쌓인다. 한 작가는 "이 소설을 쓰며 '인간의 가장 연한 부분을 들여다보는 것, 그것으로 우리는 마침내 살아갈 수 있는 것 아닐까, 이 덧없고 폭력적인 세계 가운데에서?'라고 묻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 질문의 끝에서 다음 소설을 상상했지만 실패했다고 고백했다. 소설을 쓸 수 없는 '무언가'가 내면에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서다.
그것은 '광주'였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이 있고 3년 후인 그의 나이 열두살 때 서가에서 우연히 본 '광주 사진첩'은 그의 머릿속에 또렷이 남아 있었다. '훼손된 얼굴'과 '총상자들에게 피를 나눠주기 위해 대학병원 앞에 끝없이 줄서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한 작가는 공통으로 '인간이 인간에게 이런 행동을 하는가'란 질문에 마주한다.
그는 "2012년 봄, '삶을 껴안는 눈부시게 밝은 소설'을 쓰려고 애쓰던 어느 날, 한번도 풀린 적 없는 그 의문들을 내 안에서 다시 만나게 됐다"며 "그 불가능한 수수께끼를 대면하지 않으면 앞으로 갈 수 없다는 것을, 오직 글쓰기로만 그 의문들을 꿰뚫고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자료를 찾고 공부하던 시기 그를 둘러싼 질문은 두 가지였다. '현재가 과거를 도울 수 있는가', '산 자가 죽은 자를 구할 수 있는가'. 한 작가는 "자료를 읽을수록 이 질문들은 불가능한 것으로 판명되는 듯했다"며 "인간성의 가장 어두운 부분들을 지속적으로 접하며, 오래전에 금이 갔다고 생각했던 인간성에 대한 믿음이 마저 깨어지고 부서지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집필 과정은 더뎠고 거의 체념에 다다랐을 때 그의 앞에 나타난 건 1980년 5월 한 야학교사의 일기였다.
'하느님, 왜 저에게는 양심이 있어 이렇게 저를 찌르고 아프게 하는 것입니까? 저는 살고 싶습니다'
한 작가는 "이 문장을 읽은 순간 이 소설이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는지 벼락처럼 알게 됐다"며 "두 개의 질문을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로 뒤집어야 한다는 것도 깨닫게 됐다"고 회상했다.
7년여에 걸쳐 완성한 '작별하지 않는다'에 관해서는 "진짜 주인공은 인선의 어머니인 정심"이라고 말했다.
한 작가는 "학살에서 살아남은 뒤, 사랑하는 사람의 뼈 한 조각이라도 찾아내 장례를 치르고자 싸워온 사람. 애도를 종결하지 않는 사람. 고통을 품고 망각에 맞서는 사람. 작별하지 않는 사람. 평생에 걸쳐 고통과 사랑이 같은 밀도와 온도로 끓고 있던 그녀의 삶을 들여다보며 나는 묻고 있었던 것 같다"며 "우리는 얼마나 사랑할 수 있는가? 어디까지가 우리의 한계인가? 얼마나 사랑해야 우리는 끝내 인간으로 남는 것인가?"라고 말했다.
한 작가는 "인간의 폭력성과 따뜻한 인간성, 두 양면성에 관한 질문은 일관됐었지만 이삼 년 전부터 이 생각을 의심하게 됐다"며 "어쩌면 내 모든 질문의 가장 깊은 겹은 언제나 사랑을 향하고 있었던 것 아닐까"라고 자문했다.
한 작가는 "아직 다음 소설을 완성하지 못하고 있다"며 "그러나 어쨌든 나는 느린 속도로나마 계속 쓸 것이다. 지금까지 쓴 책들을 뒤로하고 앞으로 더 나아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icki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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