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 다음날 한강 노벨상"…한국어 독학 英 번역가도 주목
영국인 데버라 스미스 번역가, 혁혁한 공로
높아진 한글·한국어 위상도 한몫…전세계 한국어 배우기 '열풍'
- 김일창 기자
(서울=뉴스1) 김일창 기자 = 한강 작가(54)가 한국인 최초이자 아시아 여성 작가 중 처음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배경에는 번역을 빼놓을 수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주목할 점은 번역가가 한국인이 아니라 영국인이라는 사실과 이 번역가가 '독학'으로 한국어를 배웠다는 것이다. 한글날 직후에 나온 한국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전세계 한글·한국어 배우기 열풍과도 맞닿아 있다는 분석이다.
11일 문학계에 따르면 한 작가의 작품을 번역하는 사람은 영국인 번역가 데버라 스미스(37)로, 그는 한 작가의 '채식주의자'와 '소년이 온다' 등 주요 작품을 번역했다.
지난 2017년 '채식주의자'로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영국의 맨부커 인터내셔널 상을 받을 때 공동수상자가 바로 스미스 번역가이다.
당시 한국문학번역원장이었던 김성곤 서울대 명예교수는 "스미스가 아닌 다른 사람이 번역했다면 상을 받지 못했을 수도 있다"고 말할 정도로, 스미스 번역가의 역할이 상당했다는 데 문학계의 이견은 없다.
당초 '채식주의자'는 한국문학번역원에서 해외에 소개될 작품으로 선정해 번역이 시작됐지만, 에이전트인 바바라 지트워가 번역가를 스미스로 선정해 번역자가 바뀌었다. 스미스로 바뀌지 않았다면 지금의 '노벨문학상'도 불가능했을 것이란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이다.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스미스는 20대 초반까지는 한국어를 알지 못했다. 하지만 번역자가 되기로 결심했고, 영국에 한국어 전문 번역가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는 한국어를 선택했다. 그리고 한국어를 배운 지 3년 만에 '채식주의자'를 번역했고, 6년 만에 맨부커상을 공동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맨부커상 선정위원회는 최종후보를 발표하면서 스미스가 한글을 배운 지 6년밖에 안 됐다는 사실을 따로 언급하면서 번역의 우수함을 칭찬할 정도였다.
언어를 배우면서 한국에 대한 사랑이 커져 한국을 방문하기도 한 그는 런던대에서 한국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 작가의 전체적인 수상 배경에는 한글·한국어의 높아진 위상도 빼놓을 수 없다. 공교롭게도 이번 수상은 한글날 다음날 발표됐다.
2010년 독학으로 한글을 습득하기 시작해 한국인보다 더 한국말을 잘하는 스미스 씨처럼 전세계 곳곳에서는 한국어를 유창하게 하는 '대한외국인'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올여름 열렸던 '2024 파리올림픽'에서는 현지 인기 유튜버인 루이즈 오베리가 성화 봉송 주자로 나선 방탄소년단(BTS) 진과 한국어로 인터뷰하면서 '밸런스 게임'을 했고, 각국 한국문화원에 개설된 한국어 강좌에는 '대기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한글 및 한국어 전진기지인 세종학당의 발전은 눈부시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2007년 3개국 13개소에서 수강생 740명으로 출발한 세종학당은 올해 88개국 256개소 수강생 21만 명으로 수강생 기준으로 약 300배 증가했다. 상시 수강 대기자 수만 지난 2월 기준 1만 5698명에 달한다.
한글 및 한국어 배우기 열풍에 가까운 이런 현상을 수렴하기 위해 정부는 오는 2027년까지 세종학당 혁신에 발 벗고 나선다.
먼저 세종학당 수를 2027년까지 300개소로 확대한다. 인공지능(AI) 시대에 맞춰 기존 한국어 자가 학습 애플리케이션을 생성형 AI로 고도화하고, 오프라인 수업에 참여하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원격 세종학당'을 구축한다.
유인촌 문체부 장관은 "한국어를 배운다는 것은 언어만 배우는 것이 아닌 한국어를 통해 다양한 한국문화를 접하고 한국이라는 나라를 더 깊이 알아갈 수 있는 방법"이라며 "정부는 세종학당과 관련한 정책을 더 체계적으로 개편·정비해 우리 말과 글을 전 세계에 널리 확산, 보급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말했다.
icki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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