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여행은 힐링입니다…370여 도시 다녔는데 1200곳 채워야죠" [책과 사람]

'도시의 맛' 펴낸 도시여행 큐레이터 정희섭 작가

편집자주 ...다채널의 뉴미디어 시대라지만, 책은 여전히 많은 사람에 즐거움과 감동을 주는 존재입니다. 책은 전문 작가의 풍부한 상상력부터 각 분야 유명인사와 스타들 및 이웃들의 흥미로운 경험들을 기반으로 탄생합니다. [책과 사람]을 통해 각양각색의 도서들을 만들어 낸 여러 저자들 및 관계자들을 직접 만나, 책은 물론 그들의 삶도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도시여행 큐레이터 정희섭 작가(에이엠스토리 제공)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세계의 도시들을 찾아다니며 도시의 연원과 역사, 시민들의 삶의 모습, 문화적 특징 등을 독특한 시각으로 전하는 여행가가 있다. 문화 칼럼니스트, 도시여행 큐레이터, 도시 인문학자 등 다방면으로 활동 중인 정희섭(브라이언 정) 작가다.

정 작가는 많은 이들이 진정한 도시의 미학을 느낄 수 있도록 인문학이 살아 있는 도시여행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배낭을 들고 현장으로 향한다. 또한, 다니면서 보고 듣고 느낀 것들로 콘텐츠를 제작해 팟캐스트 '브라이언 정의 세계도시여행 이도저도'를 통해 소통한다.

그는 국가가 아닌 도시가 문화의 다양성을 설명할 수 있는 단위라고 말하며, 문화적 다양성 속에 녹아든 삶의 모습을 이야기한다. 정 작가는 세계 도시 기행을 인문학적으로 풀어낸 책 '도시의 맛'을 출간했다. 그가 본 세계 이곳저곳 도시인들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또한 여행은 그에게 어떤 의미인가? 그를 직접 만나 얘기를 들어봤다.

-이 책은 어떻게 출간했나.

▶오래전부터 여러 매체에 글을 써 왔지만 2012년부터 본격적으로 도시 안에 내재한 인물과 작품에 집중했다. 그렇게 모인 글이 약 160편 정도 된다. 원래 5년 전 이 글들을 책으로 구성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곧 들이닥친 코로나19로 인해 지연되다가, 작년 여름부터 자료 업데이트와 수정을 거쳐 완성했다. 160개 도시 중 추려낸 것이 40개 국가의 69개 도시다.

-69개 도시는 무엇을 기준으로 선정했는가.

▶스토리텔링이 많은 도시다. 얘기해 줄 게 많은 도시, 다시 가보고 싶은 도시, 예를 들면 바르셀로나 같은 도시다. 이 도시엔 '사그라다 파밀리아'라는 성당이 있는데,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의 유고작이다. 지금도 계속 건축 중으로, 90년대 중반 처음 봤을 때와 현재의 변화된 모습을 비교하는 묘미가 있다. 그러니까 갈 때마다 지금은 어떻게 또 변해 있을까 궁금해지는 도시들이 꽤 있다.

-가장 애착이 가거나, 인상적인 도시는 어디인가.

▶예루살렘이다. 예루살렘은 유학할 때 강한 임팩트를 받았던 도시다. 온갖 종교의 성지가 다 있는 것도 이채로웠다. 그래서 예루살렘을 이 책의 첫 번째 도시로 선정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맨 마지막 도시는 베들레헴이 됐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이렇게 된 구성이 맥락 있어 보이고 좋았다.

'도시의 맛'(에이엠스토리 제공)

-도시는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인가.

▶인류는 국가를 강조한다. 하지만 국가 위주로 생각하면 너무 획일화되고 다양성이 안 보인다. 그래서 문화를 설명하는 단위는 국가가 아니라 도시여야 한다. 예컨대 같은 스페인이지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는 문화가 완전히 다르다. 세비아와 마드리드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태국 같은 경우도 치앙마이와 방콕은 정서도, 분위기도 판이하다. 그러니까 문화를 읽는 단위는 국가가 아니라 도시여야 한다.

-인문학적 측면에서 한국의 도시는 어떤가.

▶서울은 세계적이고, 상징적이며, 거대한 도시다. 다만, '멋'과 '맛'은 좀 부족하다. 효율성 면에 보면 편리함은 세계 최고다. 하지만 여유가 없다. 가령, 식당에 들어가면 '벨'로 웨이터를 부르고, 음식도 쏜살같이 나오고, 뭔가 요리를 기다리며 설레는 마음을 즐길 호사를 누리기가 어렵다. 그런데 지방 도시들은 또 다르다. 색다른 매력이 있다. 과거의 흔적을 간직한 동네, 유적, 유서 깊은 가게, 숨은 맛집 등등 콘텐츠가 풍부하다. 그래서 우리나라 도시들을 다룬 책도 써보려고 생각 중이다.

-책에 '도시여행 큐레이션'이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큐레이터의 역할은 무언가를 권하는 것이다. 실제로 이 책에서는 여러 도시를 사람들에게 권하고 있다. 예컨대, 가우디의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보고 미완성의 미학을 발견했고, 화가 뭉크라는 사람의 인생을 보고 나는 불행하지 않다는 위안을 받았고, 시드니를 보고 창의력이 솟구쳤다. 이러한 생각이 들게끔 사람들에게 도시여행이라는 테마를 통해 일종의 큐레이션 힌트를 제공한다는 의미다.

-이 책을 통해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가.

▶여행에서 힐링의 의미를 발견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힐링이란 사람을 통해서 올 수도 있고 작품을 통해서 올 수도 있다.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에게 인문학적 지식을 조금이라도 주었으면 좋겠다. 영국 시인 새뮤얼 존슨은 "여행을 통해 지식을 얻으려는 사람은 여행할 때 지식을 가지고 다녀야 한다"고 말했다. 이 책 '도시의 맛'이 여행을 처음 시작하려는 사람들에게 작은 지식이라도 전달했으면 한다.

-여행서 만난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다면.

▶1997년에 독일 하노버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의 가전 박람회를 방문하러 기차를 탔을 때 한 노신사를 만났다. 알고 보니 그는 독일의 유명 문구회사의 최고경영자(CEO)였다. 하인츠 브루너라는 분으로 이 책에도 나온다. 이분 덕분에 나중에 그가 거주하는 유럽식 저택에 초대받았다. 현재 이 저택에는 내가 선물한 '가화만사성' 족자가 걸려 있다. 여행이란 이런 우연이 인연으로 만들어지는 공간이다.

-앞으로의 여행 계획은.

▶지금까지 59개국 370여 개 도시를 다녔다. 목표는 120개국 1200개 도시를 채우는 것이다. 계속해서 여행하고 도시의 모습을 기록할 것이다. 그리고 또 책을 쓸 것이다.

acenes@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