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수저 공돌이'는 韓경제 초석 세운 사람들에 대한 헌사" [책과 사람]

자서전 ''흙수저 공돌이'의 참 아름다운 성공' 낸 허남선 ㈜우성플라테크 명예회장

편집자주 ...다채널의 뉴미디어 시대라지만, 책은 여전히 많은 사람에 즐거움과 감동을 주는 존재입니다. 책은 전문 작가의 풍부한 상상력부터 각 분야 유명인사와 스타들 및 이웃들의 흥미로운 경험들을 기반으로 탄생합니다. [책과 사람]을 통해 각양각색의 도서들을 만들어 낸 여러 저자들 및 관계자들을 직접 만나, 책은 물론 그들의 삶도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허남선 ㈜우성플라테크 명예회장 ⓒ 뉴스1 김정한 기자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허남선(63) 명예회장은 ㈜우성플라테크를 창업해 국내 1위, 아시아 1위, 전 세계 3위의 화장품 용기 생산 기업으로 키운 여러모로 성공한 인물이다.

또한 '3:3:3:1' 경영원칙을 통해 기업 활동으로 얻은 이익의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고 자신의 모교에 10억원의 장학금을 쾌척하는 등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기업인이다.

그런 그가 자서전 '흙수저 공돌이의 참 아름다운 성공'이라는 제목의 자서전을 냈다. 그는 왜 수많은 수식어를 놔두고 자신을 '흙수저 공돌이'를 자처했을까? 그를 직접 만나 그 내막을 살펴봤다.

-이 책을 집필하게 된 특별한 목적이나 계기가 있었는지.

▶퇴임을 9개월쯤 앞둔 작년 3월에 20년 지기인 KBS 신창석 감독이 함께 식사를 하다가 "은퇴하는 마당에 지난 세월을 정리하는 자서전을 내 보면 어떻겠나"고 말했다. 그래서 덕담으로 생각하고 의례적으로 "그래야지"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신 감독이 그 자리에서 바로 전화로 출판사 관계자를 소개했고, 6월에는 정말로 책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 3월 책이 출간됐다. 막상 나오고 보니 뿌듯하면서도 한편으론 참 쑥스럽다.

-책 제목에서 굳이 '흙수저 공돌이'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공업고등학교는 우리나라 경제 성장의 역사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특히 내가 5기로 졸업한 금오공고는 1973년 박정희 대통령이 한일국교정상화를 통해 일본에서 받은 자금의 일부를 사용해 개교한 학교다. 당시 정부가 공업입국의 기치를 걸고 국고에서 피 같은 자금을 지원해준 산업화의 전초기지였다. 그러한 역사성과 상징성을 '흙수저 공돌이'라는 어찌 보면 원색적이지만 가장 이해하기 쉬운 표현으로 알리고 싶었다.

-국립학교였기 때문에 입학이 쉽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그렇다. 당시 금오공고에는 가난 탓에 인문계 고등학교 진학이 어려웠던 우수한 학생들이 전국 각지에서 몰려들었다. 내 경우는 중학교 3학년 때 성적은 전교 5등 안에 들 정도로 좋았지만, 진학을 포기하고 돈을 벌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때 담임 선생님과 교장 선생님께서 금오공고 진학을 강력히 추천해 주셨다. 내 인생의 혼란기에서 큰 등불이 돼 주셨던 분들이다.

-고등학교 진학 포기를 생각할 정도로 생활이 어려웠나.

▶나는 어릴 적 기억이 거의 없다. 아니, 힘든 시절을 생각하기조차 싫었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기억을 지운 것 같다. 어머니가 홀로 나를 포함해 5남매를 키우셨다. 하루하루 끼니를 때우기도 힘든 처지에 장래 희망이란 것은 아예 없었다. 다만 원래는 공부에 취미가 없었지만 고생하시는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학교 공부를 열심히 했다.

-책을 보니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

▶어려운 형편에도 엇나가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어머니 덕분이다. 금오공고 진학도 어머니의 간곡한 설득이 있었기 때문이다. 금오공고 합격자 발표가 난 신문을 들고 감격에 겨워 우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나중에 내가 성공했을 때는 여유롭게 인생을 좀 즐기실 수도 있건만 일절 사치나 낭비가 없으셨다.

-어머니와의 일화 중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직전에 나에게 "너는 내 아들이자, 남편 대신이자, 좋은 친구였다. 너무 힘들게 살게 해서 미안하다. 다시 태어나면 나 말고 부잣집에서 태어나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지금 이 정도까지 살아온 건 다 어머니 덕분이며, 다시 태어나도 어머니의 아들로 태어날 것"이라고 말씀드렸다. 어머니는 생전 유언에 따라 화장을 해드려서 빈손으로 가셨다.

-성공한 기업가로서는 어떤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가.

▶지금 우리나라가 이만큼 먹고사는 것은 각자 어려운 환경 속에서 묵묵히 자기 길을 개척해온 우리 흙수저 출신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분들이 우리나라에 아무것도 없던 70년대 시절, 구로공단, 울산공단, 창원공단, 인천공단 등에서 손에 기름을 묻혀 가며 열심히 일한 덕분이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들을 배출한 곳이 바로 정부에서 육성한 기계공고였다. 나는 내가 그러한 산업역군의 일원이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기업인으로 한국 경제에 기여한 점도 크다고 생각되는데.

▶우리 회사가 개발한 '헤비 블로우' 성형 기술은 화장품 유리 용기를 플라스틱 용기로 대체한 것이다. 화장품 용기 생산 능력은 국내 1위, 아시아 1위, 전 세계 3위이고, 2020년에는 연 매출 500억원, 영업 이익 100억원을 달성했다. 또한 '3:3:3:1' 경영원칙을 사규로 정해 이익의 30%는 사원 복리 후생, 30%는 기술 개발, 30%는 미래를 위한 투자, 나머지 10%는 사회에 환원해 온 것은 나의 가장 큰 자부심이다. 또한 모교인 금오공고에는 장학기금 10억원을 기탁해 후배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는 점도 큰 보람으로 느낀다.

-자서전 출간으로 좋았던 점은 무엇이고, 바람이 있다면.

▶지인들이 이 책을 읽고 좋아해 주시니까 우선 그것이 좋다. 게다가 지인들의 소개로 내 책을 읽은 모르는 분들이 많은 응원과 격려를 보내 주시니 그것도 너무 좋다. 이 책을 통해 새롭고 긍정적인 자극을 받고 감동을 느꼈다는 감사의 말을 가장 많이 들었다. 내 인생 스토리가 '선한 영향력'으로 작용해 그렇게 많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점이 신기하기도 하고, 또 감사하기도 하다. 더 나아가 독자들이 이 책을 내 개인의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 나와 같이 어려운 시절을 온몸으로 겪어낸 사람들, 즉 '흙수저'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은 것이라고 받아주시면 좋겠다.

acenes@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