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신 출판평론가 "10년 내 韓 출판산업 최소 10배 이상 급성장할 것" [책과 사람]

"출판의 '본질'은 불변이며, 개념 확장으로 판을 키워야"
"새로운 '출판 생태계' 구성 필요"

편집자주 ...다채널의 뉴미디어 시대라지만, 책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 즐거움과 감동을 주는 존재입니다. 책은 전문 작가의 풍부한 상상력부터 각 분야 유명인사와 스타들 및 이웃들의 흥미로운 경험들을 기반으로 탄생합니다. [책과 사람]을 통해 각양각색의 도서들을 만들어 낸 여러 저자들 및 관계자들을 직접 만나, 책은 물론 그들의 삶도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김성신 출판평론가 / 뉴스1 김정한 기자 ⓒ 뉴스1

"출판산업이 사라진다고? 천만의 말씀이다. 오히려 지금보다 10배 이상 성장할 것이다. 따라서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출판에 대한 개념, 기획, 혁신이 필요하다."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출판 위기론이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이때 정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있다. 바로 한양대 에리카(ERICA) 창의융합교육원 겸임교수이자 출판도시문화재단 이사인 김성신 출판평론가다.

미디어 매체의 눈부신 진화 속에서 독서 인구는 점점 줄고 영상물이 종이책을 압도해 책은 결국 사라질 운명이라는 비관론이 대세다. 그런데 무슨 근거로 이런 정반대의 비전을 제시하는 것일까.

그 이유가 궁금해 파주출판도시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에서 그를 만나 최근 출판의 위기의 실체를 진단하고, 그가 제시하는 새로운 비전을 들어봤다.

-다들 출판업계가 어렵다고 말하는데, 출판은 위기인가, 기회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엄청난 위기와 엄청난 기회, 둘이 상존해 있다. 흔히 말하듯 위기는 기회를 동반하는데, 출판 분야도 마찬가지다. 매체의 진화 속에서 지식이 전달 형태가 바뀌어 현재와 같이 주로 종이책을 생산하는 제조업 개념의 출판사는 언젠가는 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곧 '출판' 자체의 종말은 아니라는 의미다.

-출판사가 모두 사라질 수 있는데, 그것이 어떻게 '출판'의 기회가 될 수 있는가.

▶그것은 '출판'과 '출판산업'을 분리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오해라고 본다. 현재 위기를 겪고 있는 것은 종이책 제조업으로서의 '출판산업'이지 '출판' 그 자체는 아니라는 말이다. 인류가 생산한 지적 가치가 문자로 변환되고, 거래되고, 저장되어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것이 책의 오래된 역할이었다. 이런 역할을 산업으로써 떠받치며 지속가능성을 부여한 것이 바로 '출판'이다. 출판을 '생태계'라고 표현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는 문학적이거나 상징적인 레토릭이 아니다. 문명사회의 내부에서 지식이 지속적으로 생산되고, 지식의 소비가 끊임없이 일어나도록 만드는 것, 무엇보다 지식의 소비가 다시 지식의 생산으로 순환하게 만드는 것, 바로 이런 역할이 출판의 본질적 요소이기 때문이다. 이 본질은 인류의 문명이 사라지지 않는 한 계속된다. 생각해 보라. 지적 가치를 생산하지도 못하고, 축적하지도 못하는 상태를 과연 문명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출판에 대한 개념을 종이 출판으로 한정하면 안 된다는 의미인가.

▶그렇다. 그렇다고 종이책이 필요 없다거나 종이책 출판산업을 없애야 한다는 주장은 절대로 아니다. 출판의 개념을 종이책 출판이라는 개념으로 협소하게 규정하지 말고 개념 자체를 크게 확장하자는 의미다. 나는 우리의 시대가 이러한 문명사적인 도약을 출판산업에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고 본다. 요지는 출판을 기반으로 생산된 모든 부가가치에 출판산업이 개입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혁신하고, 이러한 방향으로 산업 자체를 진화시켜 가자는 것이다. 현재의 출판산업이 주도해서 말이다.

-출판을 기반으로 생산된, 모든 부가가치에 개입할 수 있는 출판 시스템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책을 기반으로 저자의 사회적 위상이 달라지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저술을 통해 사회적 위상이 크게 향상된 저자에겐 다양한 사회적 기회들이 제공되곤 한다. 그리고 이는 다양한 비즈니스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가령 완성도 높은 저술을 통해 대중들의 신뢰를 받은 전문가는 언론과 미디어에 의해 이미지가 크게 증폭되면서 연예인 못지않은 대중적 인지도를 얻기도 한다. 출판기업이 이러한 메커니즘을 적극 활용하여 저술가에게 다양한 기회를 제공하고, 이로써 발생하는 이익을 출판기업과 저술지식인이 함께 추구하는 방식이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다.

-개념 확장을 통해 판이 더 커진 다른 산업 분야의 선례가 있는가.

▶음반산업을 보면 알 수 있다. 과거 레코드판이나 테이프, CD 등을 만들어 판매하던 음반사도 역시 업태가 제조업이었다. 그런데 20여년 전 MP3가 갑자기 등장하며 공룡과도 같던 음반사들은 대멸종에 가까운 재앙을 겪어야 했다. 하지만 연예기획사 혹은 매니지먼트사가 그 역할을 대신하면서 대중음악은 크게 도약했다. 비유하자면 빙하기 이후의 포유류 같다고 할까. 이후 저작권 산업으로 진화한 한국의 대중음악은 범세계적인 영향력을 만들어냈다. 말하자면 '양질전화'(양적 누적의 과정을 반복하면 어느 순간에 질적인 도약이 일어난다는 철학 개념)가 일어난 것이라고 본다. .

-오늘날 출판산업이 과거 음반 산업과 비슷한 기로에 선 것인가.

▶그렇다고 본다. 그래서 과거 음반산업과 같은 운명을 피하려면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의 전환, 개념의 확장이 중요하다. 이제 출판은 '책'이라는 유형의 상품 제작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책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 즉 무형의 '지적 가치들'을 훨씬 더 다양한 형태로 상품화하고 원활하게 유통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도 다양한 방법론을 모색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출판은 '저술가 매니지먼트'라는 방향으로 진화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결국 출판산업이 제조업이 아닌 서비스 산업이 돼야 한다는 말인가.

▶물론이다. 작가 에이전트, 저술가 매니지먼트, 작가 브랜딩, 저작권 기획과 관리 등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출판 시스템 등을 수용할 경우 출판에서 시작되는 엄청난 규모의 2차 저작권 시장이 생성된다. 이러한 혁신을 통해 출판산업의 규모는 지금과는 비교조차 힘들 정도로 거대해질 수 있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의 출판 생태계를 유지하고 있는 출판사들을 배제하면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이다.

-출판 생태계란 무엇이고, 왜 현재의 출판사들을 배제하면 안 된다는 것인가.

▶아마존이 지구의 허파라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은 그곳이 원시림이기 때문이다. 만약 저술가 매니지먼트로서의 진화 과정에서 기존의 출판사들을 배제한다면 그것은 아마존 밀림을 싹 밀어버리고 그곳에 단일품목의 작물을 생산하는 기업형 농장을 만드는 것과 같다고 비유할 수 있다. 출판을 '생태계'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종의 다양성이 반드시 지속가능성을 가지고 유지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생각해보자. 대한민국에서 연간 출간되는 책의 종수가 지금 종합 베스트셀러 최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달랑 20권뿐이라면 어떻겠는가. 극단적인 예이긴 하지만, 이런 정도로 지식의 다양성이 조성되지 못하는 사회라면, 과연 그곳을 문명사회라고 부를 수 있을까. 출판 생태계는 지식사회를 지탱하는 거의 모든 인적 구성원들이 유기적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현재 그러한 출판 생태계가 형성되는 변화의 조짐이 보이는가.

▶출판산업계 내부에서도 연예계의 매니지먼트사나 기획사처럼 콘텐츠와 콘텐츠 생산자에 집중하며, 책 그 자체보다는 작가 브랜딩 등의 방식으로 '저술가 자체를 총체적으로 기획하고 관리하는 내용'으로 업무를 혁신하고자 하는 출판기업들이 이제 점차 생겨나고 있다. 출판사 편집자가 소셜 커뮤니티 상의 셀럽으로 등장하고 있는 현상도 이러한 출판산업의 구조적 혁신과 변화의 중요한 징조라고 본다.

-앞으로 변화된 출판업계에 진출하려는 인재는 어떤 역량을 갖춰야 하나.

▶출판산업은 제조업을 벗어나 '저술가 기획' 혹은 '저술가 매니지먼트'라는 차원이 다른 산업 형태로 도약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앞으로 출판편집인들에게는 책이 보유하고 있는 지식, 정보, 서사를 바탕으로 고부가가치를 구현할 수 있도록 다양한 콘텐츠로 유연하게 전환할 수 있는 능력이 필수적이다.

acenes@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