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마약범 배달기사 막는 법 나왔지만…"사각지대 불안해"
17일부터 성범죄, 마약사범 등 배달 라이더 취업 불가
신규 취업자에만 적용…소비자 "사각지대 우려"
- 이민주 기자
(서울=뉴스1) 이민주 기자 = 강력 범죄자가 소비자를 직접 만나는 배달 라이더로 일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정부의 조치가 마무리됐다. 오는 17일부터는 성범죄나 마약범죄 등 전력이 있는 자들은 경중에 따라 2년부터 길게는 20년 동안 배달 기사로 취업할 수 없다.
그러나 이번 조치가 신규 및 예비 취업자에 국한되면서 범죄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일부 소비자들은 이미 배달 라이더로 근무하고 있는 강력 범죄자들도 일을 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른 쪽에서는 법을 소급 적용할 경우 라이더 부족 등 물류 차질을 빚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최근 국무회의에서 강력범죄 전과가 있는 사람은 범죄의 경중에 따라 최소 2년부터 최대 20년간 소화물배송대행서비스사업에 종사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의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 시행령 개정안을 의결했다.
개정안은 지난 2024년 1월 16일 공포된 '생활물류서비스법'의 시행(1월 17일)을 앞두고 위임된 사항을 정하고자 마련됐다.
법에서는 성범죄 및 강력범죄 등의 전력이 있는 사람은 범죄별 경중에 따라 2~20년간 소화물배송대행서비스사업에 종사할 수 없도록 규정한다.
이에 따라 소화물배송대행서비스 인증사업자는 종사자가 되려는 자의 범죄경력을 확인하고 제한 사유에 해당하는 경우 위탁(근로) 계약을 체결하지 않아야 한다. 인증사업자는 배달의민족 물류서비스를 담당하는 우아한청년들, 플라이앤컴퍼니(요기요), 쿠팡이츠서비스, 배달 대행사 바로고, 부릉 등이다.
구체적으로는 △특정강력범죄처벌특례법상 살인, 강간, 강도, 조직폭력 등 강력범죄자△특정범죄가중처벌법 상 미성년자 살인, 폭행, 유괴 등의 범죄자 △마약류관리법에 따른 마약사범 △성폭력범죄처벌법에 따른 성범죄자 △아동청소년보호법에 따른 아동성범죄자 등이 배달 취업 제한 대상자다.
징역형뿐만 아니라 각 죄목별로 금고 이상의 형에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유예기간 중에 있는 사람도 배달 라이더 취업이 제한된다.
배달 사업자는 라이더를 채용할 때 범죄경력을 확인해야 하는 의무가 생겼다. 범죄사실 등이 확인되면 설령 계약을 했다 하더라도 1개월 이내에 계약을 해지해야 한다.
만약 라이더 고용시 범죄경력을 확인하지 않거나 1개월 내 계약을 미해지한 경우엔 위반기간에 따라 최대 50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시행을 앞두고 인증사업자들도 막바지 채비에 나섰다. 법 시행 전부터 약관을 만들어 선제 대응에 나선 곳이 있는가 하면 대응 방안을 고민 중인 곳들도 있다.
배달의민족 물류서비스를 전담하는 우아한청년들은 관련법이 공포된 직후인 2023년 2월 배민커넥스 약관을 개정해 라이더로 고용되기 위해선 범죄 이력이 없어야 한다는 내용을 추가했다. 배민커넥트는 오토바이와 자동차, 도보, 자전거 등을 이용해 배달업무를 수행하는 라이더 서비스를 말한다.
요기요 물류서비스 담당 플라이앤컴퍼니 역시 이전부터 약관에 관련 내용을 포함해 시행해 왔으며 17일 법 시행 이후에도 현재와 마찬가지로 진행하겠다는 입장이다.
쿠팡이츠도 위탁계약을 맺은 배달 대행사의 채용 과정에서 범죄경력 조회 여부를 확인할 계획이다. 바로고 역시 법 시행 전부터 라이더의 범죄 경력을 확인해 왔다고 했다.
우아한청년들 관계자는 "약관을 통해 강력 범죄 이력이 있는 라이더의 운행을 막아왔지만 법적 근거가 없었는데 이제는 (조회 등에서) 강제성이 생기게 됐다"라며 "배민 커넥트 앱을 통해 라이더에 법 내용 등을 안내하고 있다"라고 했다.
소비자들은 안전한 배달환경 조성을 기대하며 법 시행을 환영하면서도 법적 사각지대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하는 분위기다.
이번 법 시행이 일단은 '신규 채용'에 국한되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개정법에 따라 배달라이더 취업이 제한되는 범죄사실이 있어도 이미 계약이 돼 있다면 계속해서 근로가 가능하다.
한 배달앱 이용자는 "이미 배달판에 들어올 범죄자들은 싹 다 들어온 상태인데 신규 범죄자들만 못 들어오게 한다는 건 실효성이 없는 것 같다"며 "배달기사들은 생업이라는 이유로 학교, 어린이 시설 등에도 출입할 수 있다. 범죄가 발생하지 않도록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냈다.
또 라이더가 유상운송보험 등에 대한 가입 의무가 없는 만큼 강력 범죄자가 타인 명의로 취업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지난해 기준 이륜차 유상운송보험 가입 대수는 9만 8000대로 전업 배달종사자 수와 비교하면 가입률은 40% 수준이다.
여기에 현재로는 인증사업자가 직접 취업자의 범죄 이력을 조회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다는 점도 허점으로 꼽힌다. 예비 취업자가 취업 서류와 함께 직접 인증사업자 측에 범죄조회경력서 등을 제출하는 형태로 범죄 사실을 확인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부정 취업 가능성도 발생한다는 의미다.
업계 관계자는 "23년 기준으로 라이더가 전국에 22만 명 정도인데 이들 전체 배달 종사자에게 (법을) 소급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며 "다만 라이더의 경우 6개월~1년 주기로 계약 갱신을 하게 되기 때문에 이때 강력범죄가 있는 이들은 재계약이 불가능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minju@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