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줄' 마른 벤처에 연 4000억 상생협력기금 '단비' 내린다

중기부, 상생협력기금 사용 용도에 '벤처펀드 출자' 추가
벤처투자 업계 "LP 늘어나 환영…기금 활용 물꼬 텄다"

대·중소기업농어업협력재단 로고(대·중소기업농어업협력재단 제공)

(서울=뉴스1) 이정후 기자 = 2021년부터 매년 4000억 원 규모로 조성되고 있는 대·중소기업상생협력기금을 벤처투자 시장으로 유치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벤처투자 활성화를 위해 민간자금을 모험자본 시장으로 유입시키려 했던 벤처투자 업계는 이를 반기는 분위기다.

18일 중소벤처기업부는 대·중소기업상생협력기금의 벤처펀드 출자 허용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안을 국무회의에서 의결했다고 밝혔다.

대·중소기업상생협력기금은 대기업 등 내국 법인이 중소기업과의 상생협력 촉진을 위해 대·중소기업·농어업협력재단에 출연하는 민간기금이다. 상생협력기금을 출연한 기업은 법령에서 정한 범위 내에서 기금의 용도를 정할 수 있다.

그동안 출연기업은 △기술협력 촉진 △임금 격차 완화 △생산성 향상 등 12개 사항 내에서 기금의 용도를 정할 수 있었으나 이번 시행령 개정에 따라 '벤처펀드 출자'도 기금 용도에 추가됐다. 해당 시행령 개정안은 이달 25일부터 공포·시행된다.

벤처캐피탈 업계는 중기부의 이와 같은 시행령 개정을 반기는 분위기다. 그동안 한국벤처캐피탈협회는 민간자금의 벤처투자 시장 유입을 촉진할 수 있는 방안 중 하나로 상생협력기금의 활용을 주장해 왔다.

올해 5월 기준 대·중소기업상생협력기금 연도별 누적 출연 및 지원 현황(대·중소기업·농어업협력재단 홈페이지 갈무리)

2011년부터 조성된 대·중소기업상생협력기금의 규모는 올해 5월 기준 누적 2조 7000억 원이다. 해당 기금은 약 420개 기업이 출연해 조성됐다. 그중 2조 4000억 원이 58만여 개의 중소기업에 지원 자금으로 쓰인 상태다. 현재 남은 상생협력기금은 약 3000억 원이다.

현재 남아 있는 3000억 원의 상생협력기금은 사업 용도가 이미 정해져 있다. 하지만 협력재단에 따르면 미집행 기금은 사업 용도를 변경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신설된 벤처펀드 출자로 사용 용도를 변경한 민간 자금이 시장에 유입될 가능성도 있다.

협력재단 관계자는 "개정된 시행령에 따라 상생협력기금을 어떤 벤처펀드에 투자할지 중기부와 논의하는 과정"이라며 "구체적인 내용이 확정된 이후에는 출연 기업에 안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벤처펀드에서 발생하는 초과 수익은 상생협력기금의 재원으로 추가돼 중소기업 지원에 쓰일 전망이다.

벤처캐피탈 업계에서는 벤처·스타트업 육성에 뜻이 있는 기업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바라는 모습이다. 상생협력기금이 벤처투자 시장에 흐를 경우 출연기업의 협력사나 관련 산업 생태계를 육성하는 밑거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 입장에서도 상생협력기금에 출연할 경우 혜택이 많다. 구체적으로 △지정기부금 손금 인정 △출연금액의 10% 법인세 공제 △투자·상생협력 촉진 세제 공제 △동반성장지수 실적 반영 등의 혜택이 있다. 이 때문에 2020년 이전 연평균 2000억 원 수준이었던 출연금은 2021년부터 매년 4000억 원 규모로 늘어난 상태다.

벤처캐피탈 업계 관계자는 "상생협력기금의 벤처펀드 출자 허용은 창업 생태계를 키운다는 측면에서 대기업의 오픈이노베이션과 비슷하다"며 "기금 출연의 목표가 이익이 아닌 상생에 있다는 점에서 (이번 개정안이) 거시적인 창업 생태계를 조성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윤건수 한국벤처캐피탈협회장 /뉴스1 ⓒ News1 박정호 기자

무엇보다 벤처캐피탈 업계에서는 이번 상생협력기금이 계기가 돼 다른 민간 자금의 벤처펀드 참여도 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나온다.

윤건수 벤처캐피탈협회 회장은 취임 이후 상생협력기금을 비롯해 330조 원 규모의 퇴직연금 등 다양한 민간 자금의 벤처펀드 출자 허용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벤처캐피탈 업계 관계자는 "VC 입장에서는 LP(민간·기관 투자자) 풀을 늘리는 게 중요한 이슈였는데 상생협력기금이 물꼬를 텄다"며 "이번 개정안을 시작으로 다른 기금들의 벤처펀드 출자 허용도 기대해 볼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편 상생협력기금을 통해 조성될 벤처펀드 재원을 대형 VC의 펀드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초기 투자, 중소형 VC 펀드 등에 골고루 분배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벤처캐피탈 업계의 LP 모집이 어렵다 보니 투자 자금 순환을 위해 대형 VC 펀드에 집중될 수 있다"며 "LP 풀이 많아지는 것은 좋지만 지역 펀드, 초기 펀드 등에 골고루 배분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leejh@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