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가다간 중국산만 남죠"…직구 대책에 제조업 사장님들 '분통'

오락가락 직구 KC 인증 규제…국내 중소 제조업계 "역차별"
높은 인증 비용에 경쟁력 잃어…"공정하게 경쟁하고 싶다"

ⓒ News1 윤주희 디자이너,김지영 디자이너

(서울=뉴스1) 김형준 기자 = "이렇게 가다간 생산기지인 중소 제조업이 무너져 우리나라에서 쓰는 제품은 모두 중국산이 될 겁니다."

신발, 의류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박동희 소공인협회장은 최근 정부의 해외 직구 관련 대책에 분통을 터뜨렸다. 비용을 지불하며 국가인증통합마크(KC 인증)를 받아 제품을 브랜드에 납품하고 있지만 인증 없이 절반도 안 되는 값에 들어오는 중국산 제품을 보면 답답할 따름이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중소 제조업체들은 알리, 테무, 쉬인을 비롯한 해외 직구 제품 유입이 가속하면서 영업상의 어려움을 표하고 있다. 특히 직구 제품은 국내 업체들과 달리 인증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한국에 들어올 수 있어 '역차별'에 대한 애로가 극에 달한 상황이다.

인증을 받지 않으면 소비자들이 검증되지 않은 제품을 이용하며 안전상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인증 비용이 들지 않아 가격 측면에서 같은 제품을 생산하는 국내 업체들이 경쟁 자체를 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정원 국무조정실 국무2차장(오른쪽 두번째)이 서울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해외직구 대책 관련 추가 브리핑을 하고 있다. 정부는 최근 불거진 해외직구 규제 논란과 관련해 위해성이 확인된 제품만 반입 차단하겠다고 밝혔다./뉴스1 ⓒ News1 장수영 기자

이에 정부는 지난 16일 KC 인증을 받지 않은 80개 품목에 대해 해외 직구를 금지하겠다는 조치를 발표하고 6월부터 이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80개 품목에는 어린이 제품, 전기·생활용품, 생활화학제품 등이 포함됐다.

하지만 규제 발표 사흘 만에 소비자 선택권을 제한하는 조치라는 반발에 부딪혀 조치를 철회했다. 국무조정실은 "안전성 조사 결과에서 위해성이 확인된 제품만 반입을 제한할 계획"이라며 "80개 품목에 대해 사전적으로 해외 직구를 차단·금지하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국내 중소 제조업체들은 이러한 조치가 '역차별'에 해당한다며 답답함을 표하고 있다. 어린이용품을 생산하는 완구·학용품 업계가 대표적이다. 어린이제품 제조업자나 수입업자는 '어린이제품 안전 특별법' 제17조에 따라 반드시 KC 인증을 받아야 한다.

지난 2022년 중소기업중앙회가 완구·학용품 업체 205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완구 및 학용품 KC 인증제도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업체들은 KC 인증을 취득하는 데 연간 1546만 원을 지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증에 소요되는 시간이 과도하게 길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같은 조사 결과에 따르면 완구·학용품 업체들이 KC 인증을 취득하는 데 걸리는 기간은 2.7개월이었다. 게다가 유효기간도 5년으로 짧고 동일 모델이라 하더라도 종류·재질별로 인증을 받아야 한다.

서울 종로구 창신동 문구·완구시장의 한 완구매장에서 시민들이 자녀에게 선물할 장난감을 들고 계산대 앞에 줄을 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뉴스1 ⓒ News1 민경석 기자

완구업체를 운영하는 소재규 한국완구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은 "제조 품목이 많다 보니 1년에 1500만 원가량의 인증 비용을 내고 있다"며 "반면 해외 직구 제품은 이 비용을 내지 않아 3분의 1 가격에 판매하고 있다"고 상황을 전했다.

소 이사장은 "정부가 안전성 조사를 하겠다지만 그 많은 제품을 어떻게 검사하겠느냐"며 "해외 직구 제품의 KC 인증 조치를 철회한 것은 (그들과 경쟁하는) 국내 업체들의 손발을 묶어놓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타 업종도 상황은 유사하다. 앞서 언급한 박 회장은 "의류도 아동용은 인증을 받아야 한다. 국내 제품은 KC 인증을 받으라며 엄격하게 관리하면서 중국에서 직구로 들어오는 것을 통제하지 않겠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며 "국내 산업의 기반이 되는 소공인을 살리려면 정부가 조치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단가 몇백 원도 신중하게 따지는 와중에 인증 비용까지 내야 하는 소공인들은 중국산 제품과 경쟁조차 어렵다"고 전했다.

업계의 요구는 직구 제품과 같은 조건하에 가격, 품질 측면에서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 달라는 것이다.

KC 인증이 필수적인 문구 업계의 한 관계자는 "상표가 중요하지 않은 파일, 집게 등 일부 품목은 벌써 직격탄을 맞고 있다"며 "최소한의 안전장치인 KC 인증을 받지 않고 제품이 들어오면 결국 소비자에게도 (피해가) 전가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경쟁하지 말자는 얘기가 아니다. 기술력 있는 우리 기업들은 오히려 경쟁을 하고 싶다"며 "다만 (역차별로) 기울어진 운동장 때문에 시장의 선택을 못 받는다고 하면 억울한 상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ju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