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들은 여전히, 아직도, 중대재해처벌법을 모른다[기자의눈]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하루 앞둔 26일 오후 서울 시내의 공사 현장에서 근로자가 일을 하고 있다. 2024.1.26/뉴스1 ⓒ News1 김민지 기자

(서울=뉴스1) 이정후 기자 = "중대재해처벌법이요? 들어는 봤는데 자세한 내용은 모르죠."

"모르겠는데... 뉴스에서 얼핏 본 거 같은데, 우리 회사가 거기 (법 적용 대상에) 해당되나요?"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중처법) 이슈를 한 달 넘게 취재하면서 가장 난감했던 순간이다. <뉴스1>이 취재를 위해 접촉한 영세 기업인들 대다수는 아예 중처법 자체를 모르고 있었다.

중소기업을 대표하는 협·단체는 중처법에 대한 우려를 쏟아냈지만 정작 생업으로 바쁜 영세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은 법안의 상세 내용을 인지하지 못한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중처법을 처음 듣는다'는 답변도 많았다. 그럴 때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예비 범법자로 전락한다'는 중소기업계의 주장이 머릿속에서 겹쳐 떠올랐다.

현장의 혼란에도 중처법 유예안은 불발됐고 법은 현재 5~49인 사업장에 적용 중이다. <뉴스1>은 시행 10일째를 맞았던 지난 5일, 중처법을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기획기사를 준비하면서 다시금 다수의 중소기업에 연락했다.

그간 정부의 적극적인 안내가 있었고 국회 법률 유예안 통과가 큰 이슈가 됐었기에 종전보다는 구체적인 취재가 이뤄질 것이란 기대도 내심 있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돌아오는 대답은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중처법에 대한 인식은 늘어났을지라도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알고 있는 중소기업은 여전히 많지 않았다.

7명을 고용하고 있는 제조기업의 한 대표는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내용을 살펴보지 않았다"고 했다. 11명을 고용 중인 또 다른 대표는 "중대재해처벌법 자체를 처음 듣는다"고 했다.

현장의 애로사항을 듣고자 했으나 내용조차 알지 못하니 더 이상 붙잡고 이야기를 이어나갈 수 없었다. 정부가 만든 중처법 안내서들도 생업 일선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기사를 쓰기 위해 접촉하는 기업인 숫자가 늘어날수록, 중처법 자체를 아예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기업인들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사실 자체가 오히려 더 큰 문제로 다가왔다.

법은 이미 시행됐다. 영세 기업인들이 최소한 중처법이 어떤 내용인지 알고 대비할 수 있도록 더욱 많은 홍보가 필요하다.

고용노동부가 '중대재해처벌법 바로알기' 사이트를 별도로 운영하는 등 노력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닿지 않는 곳이 많다.

이 법은 이름에 '처벌'이 들어가는 법이다. 국민을 처벌하겠다는 엄중한 법을 만들었다면, 어떤 사안으로 처벌을 받게 되는지, 어떤 행위를 하지 말아야 하는지 적극적으로 알려야 할 책임이 있다.

중소기업인들의 인식 개선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중처법이 본격적으로 시행된 이상 법을 피할 방법은 없다. 안전한 사업장을 만들기 위한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고용노동부는 4월 말까지 50인 미만 건설·제조·물류업 사업장이 스스로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을 진단하는 '산업안전 대진단'을 실시한다.

이번 대진단이 미처 중처법을 준비하지 못한 영세 사업장에 유의미한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leejh@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