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들이 앞장서자"…'신중모드' 대전협에 실망한 인턴이 움직인다

가톨릭중앙의료원 인턴 사직의견 수렴
개별 사직 시작…3월 재계약 포기도 이어질 듯

13일 서울의 한 대형 종합병원에서 의료진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2024.2.13/뉴스1 ⓒ News1 유승관 기자

(서울=뉴스1) 천선휴 기자 =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이 정부의 의대증원과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에 반발하면서도 단체행동을 일단 유보하기로 한 가운데, 이들의 결정만을 기다리던 인턴들이 "병원 막내들이 나서야 한다"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전공의는 인턴과 레지던트로 나뉘는데 대학 졸업과 의사 면허 취득 후 병원에 인턴으로 입사해 1년, 레지던트로 3~4년 과정을 거쳐야 한다. 즉 인턴은 병원에서 의사가 되는 과정을 밟는 전공의 중에서도 가장 막내인 셈이다.

14일 의료계에 따르면 가톨릭중앙의료원(CMC) 인턴들은 이날부터 사직에 대한 의견 수렴에 나섰다. 가톨릭중앙의료원은 전공의를 일괄적으로 뽑은 뒤 서울성모병원, 은평성모병원, 대전성모병원 등에 배분한다. 현재 가톨릭중앙의료원에 소속된 인턴은 225명이다.

정부의 의대 증원 발표 이튿날인 지난 7일 가톨릭중앙의료원 인턴 대표자로 선출된 류옥하다 인턴 대표는 동료 인턴들에게 "정부가 의사 수 부족을 이유로 2000명 의대 증원 발표했다. 그 전에 발표한 '필수 의료정책 패키지'에는 인턴 2년제, 개원 면허 도입, 비급여 혼합진료 금지, 비전문가 미용시술 확대와 같은 개악이 포함됐다"며 "병원의 막내인 인턴들이 이 의료 개악을 막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류 대표는 가톨릭중앙의료원 인턴 전원 의견 수렴을 제안하고 나섰다. 류 대표는 △즉각 개별 사직 △2월 말 사직서 제출 후 3월 말 개별 사직하는 대전협 기조에 따름 △사직의 뜻이 없으므로 나눠 인턴들의 의견을 듣고 있다.

그는 "단체 행동을 교사하는 것이 아니다. 거창한 조직이 있거나 대전협, 의사협회의 입장을 대변하지도 않는다. 그저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는 한 20대 청년일 뿐"이라며 "단지 동료 인턴 선생님들의 의견을 묻고, 나누고 싶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면허를 날릴 각오가 돼 있고 감옥을 갈 각오도 돼 있다고 의지를 드러내며 "생즉사 사즉생의 각오로 임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강경파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각자의 사정이 있고 모두에게 이 결의를 강요하고 싶지는 않지만 다만 앞선 이들에게 힘을 한 번만 실어달라"고 덧붙였다.

대전협의 단체행동 결정만 기다리던 병원 막내들이 갑자기 독자적으로 의견 수렴에 나선 것은 지난 12일 대전협 임시대의원총회가 단체행동에 대한 뚜렷한 결론을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에 류 대표는 "대전협 임시총회에서 안전한 투쟁으로 방향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며 행동을 시작했다.

13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 의대 증원을 반대하는 손팻말이 놓여 있다.2024.2.13/뉴스1 ⓒ News1 박지혜 기자

정부 의료정책에 실망감을 표출하며 개별적으로 의사직을 내려놓겠다는 인턴도 나오고 있다.

자신을 대전성모병원 인턴이자 서울성모병원 정형외과 전공의가 될 예정이라고 소개한 홍재우 인턴은 자신의 유튜브에 영상을 올려 "개인적인 사유로 사직하고 쉬기로 했다"고 밝혔다.

홍 인턴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의사에 대한 시각이 적개심과 분노로 가득한 현 상황에서 더 이상 의학을 이어가기 힘들다고 판단했고 잠시 내려놓으려고 한다"며 "혹시나 이 영상을 보고, 제가 집단행동을 선도하신다고 생각한다면 제 면허를 가져가도 좋다"며 면허번호를 공개하기도 했다.

문제는 이같은 사직 움직임이 개별적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란 점이다. 대전협 임시총회에서도 개별 사직서 제출로 다수의 의견이 모아진 상태다. 다만 정부가 전공의들이 소속된 수련병원에 사직서 수리 금지 명령을 내렸기 때문에 사직서 제출 한 달 뒤에 나갈 수 있을 거라는 판단으로 '2월 말 사직서 제출, 3월 말 병원을 나간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3월에 있을 인턴·레지던트 재계약을 포기하는 방법도 검토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인턴에서 레지던트 넘어갈 때 계약 갱신을 해야 하는데 그 계약 시점이 보통 3월"이라며 "계약을 안 하는 부분도 투쟁의 일환으로 고려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도 이 같은 움직임을 파악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렇다 할 뾰족한 해법을 찾지 못하는 모양새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은 13일 중앙사고수습본부 브리핑에서 "레지던트로 넘어가는 과정에 레지던트를 아예 지원을 안 하는 부분은 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최대한 서로 설득하고 대화하고 함께 해 나갈 수 있도록 대화 노력을 통해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해나가겠다"고 말했다.

대전협은 오는 18일 다시 모여 논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앞서 열린 임시총회에서 회장을 제외한 집행부 전원이 사퇴하고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기로 했다. 이에 따라 당분간은 비대위를 구성하면서 재정비하는 시간을 가질 것으로 보인다.

sssunhu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