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쩡한 눈 실명 이르게하는 녹내장…조기 발견이 최상의 예방[헬스노트]

안압 높아져 시력 잃어…손상된 시신경 되살릴 방법 아직 없어
조기 진단과 치료로 진행 늦춰야…금주가 실명 위험 37% 낮춰

ⓒ News1 김지영 디자이너

(서울=뉴스1) 천선휴 기자 = '아, 요즘 시야도 좁아지고 안개 낀 것 같고…뭔가 이상하네.' A씨(54)는 처음엔 과로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안경도 한 번 껴본 적이 없을 정도로 눈 건강 하나는 자부해왔던 A씨다.

하지만 주말 내내 푹 쉬어봐도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다. 사물이 명료하게 보이지 않았고, 일상생활에도 불편함을 느꼈다. 나이가 들어 돋보기를 껴야 할 때가 왔겠거니 생각했지만 증상은 날이 갈수록 더 심해졌다. 병원을 찾은 A씨는 의사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녹내장입니다. 병원에 좀 빨리 오지 그러셨어요."

의사는 치료를 진행해보고 안 될 경우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시력을 잃을 수도 있다는 공포스러운 말도 했다. 손상된 시신경을 살릴 방법은 아직 없다는 암담한 말도 전했다.

녹내장은 당뇨망막병증, 황반변성과 함께 '3대 실명질환' 중 하나다. 평소 눈 건강이 좋던 사람도 실명에 이를 수 있는 공포의 질환이다.

30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21년 우리나라 녹내장 환자는 107만3423명이다. 또 2010~2011년 녹내장 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를 추적해본 결과 10년 뒤인 2021년 저시력이나 실명에 이른 환자는 6.6%에 달했다.

40세 미만의 젊은 환자도 늘고 있다. 2012년 11만4000명이었던 젊은 녹내장 환자는 2021년 13만7000명으로 늘었다.

박찬기 서울성모병원 안과 교수는 "녹내장은 압력에 의해 시신경이 서서히 손상되는 질환으로, 시신경이 손상되면 결국 실명에 이르게 된다"며 "완전히 실명할 경우 시력 저하를 넘어 불빛마저 인지하지 못하게 된다"고 말했다.

박 교수에 따르면 녹내장은 크게 원발과 속발로 나뉜다. 원발 녹내장은 유전적 요인 등 특별한 이유 없이 발생하는 것을 말한다. 반대로 속발 녹내장은 외상이나 염증, 당뇨 합병증 등으로 발생한다.

원발 녹내장은 안압이 높아져 발생하는 녹내장과 정상 안압에서 발생하는 녹내장으로 나눌 수 있다.

많이 알려져 있는 원발 개방각 녹내장과 원발 폐쇄각 녹내장은 물리적인 문제로 방수(각막 뒤와 홍채 사이의 공간이나 홍채 뒤와 수정체 사이에 들어 있는 액체)가 빠져나가는 길에 문제가 생기고 안압이 높아지면서 발생한다.

반면 방수가 빠져나가는 길에도 이상이 없고, 안압도 정상이지만 녹내장이 발생하는 경우를 정산 안압 녹내장이라고 말한다.

박 교수는 "녹내장은 가족력도 중요한데 부모 중 한 명이 녹내장이 있으면 약 2배, 형제·자매 중에 녹내장 환자가 있으면 4배 정도 발생률이 높아진다"며 "나이가 많을수록 발병 위험도 높아지고 최근엔 근시 또한 새로운 위험요인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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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내장을 진단받은 환자는 자살 위험도도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최근 서울대병원 안과 김영국 교수팀이 국민건강보험공단과 통계청 데이터를 활용해 2010년부터 2020년 사이에 3대 실명질환을 진단받은 환자의 자살 위험도를 분석한 결과, 녹내장을 앓던 환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비율은 무려 48%에 달했다.

김영국 교수는 "3대 실명질환을 진단받은 환자는 비진단군에 비해 자살 위험도가 높았고, 나이가 들고 시력이 저하될수록 그 위험도가 높아졌다"며 "실명 질환은 환자에게 상당한 심리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사회구성원들의 적극적인 관심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녹내장 진단에 좌절할 필요는 없다. 적극적인 치료와 스스로의 노력으로 실명을 늦추거나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김영국 교수와 하아늘 제주대병원 안과 교수 공동연구팀은 녹내장 환자가 술을 끊으면 실명 위험을 최대 37% 낮출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연구팀에 따르면 건보공단 데이터를 활용해 2010~2011년 녹내장을 처음 진단받은 음주자 1만3643명의 음주습관 변화에 따른 실명 위험도를 10년간 추적한 결과, 진단 후 술을 끊은 녹내장 환자 2866명은 음주를 계속한 환자들에 비해 실명 발생 위험도가 약 37%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술을 끊은 환자와 비교했을 때 과량음주(일주일에 소주 10잔 이상)를 한 환자는 실명 위험이 약 1.78배나 높았다.

또 일주일에 4일 이상 술을 마신 고빈도 음주자는 금주자에 비해 실명 발생 위험이 무려 약 2.5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김 교수는 "녹내장 환자는 술을 줄이거나 끊는 생활습관 개선이 중요하다"며 "녹내장 환자에게 금주를 권고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연구"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녹내장은 시신경이 손상되는 질환이기 때문에 한 번 시력이 나빠지면 치료해도 회복하기 힘들다. 시신경을 되살릴 치료법은 아직 세상에 없기 때문이다.

다만 당뇨나 고혈압처럼 꾸준히 관리해 시력이 더 이상 나빠지지 않도록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전문가들도 조기에 진단하고 적극적으로 치료하면 시력 예후 개선에 도움이 된다고 입을 모은다.

박찬기 교수는 "녹내장 진단을 받았다는 것은 시신경 손상이 확인됐다는 것으로, 증상이 진행되는 것을 영구적으로 멈출 순 없지만 안압을 떨어뜨리면서 시신경이 손상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며 "진행 속도를 늦추고 실명을 막는 것이 중요한데 너무 늦게 발견하면 이 시기를 놓칠 수 있어 조기에 발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시형 순천향대부천병원 안과 교수는 "녹내장 진단을 받거나 위험 요인이 있다면 안과를 정기적으로 방문해 검사해보는 것이 좋다"며 "금연과 절주를 하고 유산소 운동이 안압을 떨어트리기 때문에 꾸준히 운동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무거운 것을 드는 근력운동을 하거나 거꾸로 매달리는 건 안압을 높일 수 있어 피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sssunhu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