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실 CCTV' 25일부터 시행…환자들한테도 환영받지 못했다

환자단체 "실효성 의문"…의사단체 "필수의료 붕괴 가속화"

경기도의 한 병원 관제실에서 관계자들이 수술실 CCTV를 점검하고 있는 모습. /뉴스1 ⓒ News1

(서울=뉴스1) 천선휴 기자 = 전신마취 등으로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수술을 진행하는 의료기관의 수술실에 폐쇄회로 텔레비전(CCTV)을 의무적으로 설치하는 의료법 개정안 시행이 사흘 앞으로 다가왔다.

지금까지 세계 어느 국가도 관련 법을 시행하고 있지 않아 이로써 우리나라가 전 세계 최초로 수술실에 CCTV를 다는 국가가 됐다.

세계 최초의 법이다 보니 시행이 코앞으로 다가왔음에도 운영방안을 만든 보건복지부도, 당장 수술실에 CCTV를 달아야 하는 의사들도, 수술을 받는 환자들도 혼란에 빠져 있는 모양새다.

2016년 성형수술 중 사망한 권대희씨 사건을 계기로 만들어져 이른바 '권대희법'이라고도 불린 수술실 CCTV 의무화 개정안은 2021년 9월 공포됐다.

시행까지 2년간 유예기간을 거치는 동안 복지부는 연구용역과 환자단체, 의료계, 법조계 등 협의체 논의를 거쳐 세부적인 운영방안을 마련해왔다.

우선 이 개정안의 골자는 전신마취나 의식하진전(수면마취) 등으로 환자가 상황을 인지·기억하지 못하거나 의사를 표현할 수 없는 상태에서 시행하는 수술을 하는 의료기관의 경우 수술실에 CCTV를 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환자 또는 보호자가 별도로 의료기관장에게 촬영 요청서를 제출하면 의료기관은 법에서 정한 거부 사유에 해당하지 않으면 의료진은 수술하는 과정을 CCTV로 촬영해야 한다.

이렇게 촬영한 영상은 30일 이상 보관해야 한다. 다만 보관 연장 요청을 할 수 있는데, 그 기간은 30일 이내이어야 하고 추가로 연장하려면 다시 요청서를 제출해야 한다.

영상을 열림 또는 제공받으려면 영상정보 열람·제공 요청서를 의료기관장에게 제출해야 한다.

경기도의 한 병원 수술실에서 관계자들이 CCTV를 점검하고 있다. /뉴스1 ⓒ News1 김영운 기자

복지부가 처음으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지침을 공개한 건 이 법이 시행되기 한 달 전인 지난달이다. 여기에 추가로 22일, 지난달 지침과 크게 다르지 않은 최종안을 내놨다.

문제는 복지부가 법 시행을 코앞에 두고 지침을 부랴부랴 내놓는 바람에 아직도 현장 상황이 전혀 파악되지 않고 있다는 데 있다. 수면마취 등을 행하는 수술실에 CCTV를 달아야 하고, 어길 시 법적 처벌을 가할 것이라고 하면서 정작 설치를 해야 하는 수술실은 몇 곳인지, 그 중 몇 곳이 설치를 해놓았는지 등은 모른다는 것이다.

박미라 복지부 의료기관정책과장은 "환자의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수술하는 의료기관의 수술실 내에 CCTV를 설치하도록 의무화하다 보니 건강보험법상 수술실로 신고된 모든 곳이 설치대상이 아니어서 현장에서 의료기관 개설자가 설치 여부를 판단해 결정해야 한다"면서 "법 시행일 이전에 설치를 한다는 의료기관들도 있어 정확한 건 법 시행 이후 현장 확인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의료사고로 사망한 고(故) 권대희 씨의 어머니 이나금 의료정의실천연대 대표가 지난 1월 대법원에서 판결을 듣고 나서며 눈물을 흘리고 있는 모습. 뉴스1 ⓒ News1 김민지 기자

이 법안이 통과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환자 단체도 막상 복지부의 최종 지침을 확인하곤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고 권대희씨의 어머니 이나금 의료정의실천연대 대표는 △CCTV 영상 보존기간이 최소 30일이라는 점 △환자와 수술에 들어간 모든 의료인의 동의가 있어야만 CCTV 영상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 △의료진의 촬영 거부 사유가 너무 주관적이고 광범위하다는 점 등을 꼬집으며 법안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 대표는 "대부분 수술 후 문제가 바로 드러나지도 않지만 바로 드러났다 할지라도 문제를 인식하고 요청까지 이어지는 데는 시간이 걸리는데, 주말을 제외하면 약 20일 안에 수술에 참여한 모든 의료인에게 동의를 받는 일은 쉽지 않다"며 "모든 의료인의 동의를 받는 부분도, 대학병원 같은 경우 수련의부터 간호사들까지 많은 사람이 수술에 참여하는데 동의를 다 받는 게 쉽게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또 "정당한 이유가 있으면 의료진이 CCTV 촬영을 거부할 수 있는데, 이 사유가 너무나 주관적이고 광범위하다"면서 "생업을 전폐하고 죽은 내 아이의 명예를 훼손해가면서 CCTV를 공개해 이 법안 통과에 매달려 왔는데 실효성 있게 운영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윤동섭 대한병원협회장이 지난 5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 개정 의료법에 대한 효력정지가처분신청서 및 헌법소원심판청구서 제출에 앞서 발언하고 있다. 2023.9.5/뉴스1 ⓒ News1 유승관 기자

환자단체는 그래도 힘들게 통과된 법안이니 앞으로 개정을 거듭해서라도 실효성 있는 법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지만, 의사단체의 입장은 확고하다.

대한의사협회와 대한병원협회는 지난 5일 수술실 CCTV 의무화 조항이 직업수행의 자유, 인격권 등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하며 끝까지 이 법안을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수술실 CCTV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방어적·소극적 의료 행위를 유발하고 의료인과 환자 간 신뢰 상실을 부를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 이로 인해 외과, 흉부외과, 산부인과 등 필수의료 붕괴가 가속화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윤동섭 대한병원협회장은 "현재도 외과, 흉부외과, 산부인과 등은 전공의 지원자가 부족해 필수의료 붕괴가 우려되는 상황인데, 수술실 CCTV 의무 설치로 필수의료 붕괴가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필수 의사협회장은 "CCTV 촬영은 수술을 시행하는 의사가 가지고 있는 술기나 노하우를 노출시키고, 환자의 상태대로 치료를 해도 오히려 의료과실로 잘못 비칠 우려가 크다"며 "이 법안이 시행되면 의료인은 적극적인 치료를 기피하게 될 것이고, 이는 결국 우리 국민이 건강을 회복하거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복지부는 25일 법 시행과 동시에 설치 현황을 모니터링하면서 의사들의 민원도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건의사항 접수 창구를 마련한다는 입장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시행 규칙안 마련 과정에 참여했던 관계단체들의 협의체도 재개해 앞으로 보완해야 할 사항들에 대해 폭넓게 의견 수렴을 해나가겠다"고 밝혔다.

sssunhu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