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 받은 상처, 네가 치유해줬어" 우리가 푸바오를 사랑한 이유
사람에게 받은 상처, 푸바오·사육사로 치유
아이돌 덕질 못지않은 팬들의 사랑
- 윤슬빈 여행전문기자
(서울=뉴스1) 윤슬빈 여행전문기자 = "당근 못 먹던 이모들도 푸바오 보면서 당근 먹어요"
푸바오 팬들의 푸바오 사랑은 아이돌 '덕질'(어떤 분야를 열성적으로 좋아하여 그와 관련된 것들을 모으거나 파고드는 것) 못지않다. 마치 해외 방탄소년단(BTS) 팬들이 BTS를 따라 한국에만 있는 문화인 쇠젓가락으로 음식 먹고 멤버들 고향을 찾는 것처럼 푸바오의 일거수일투족을 알고 함께 하고 싶어한다.
기어코 그날이 다가왔다. '행복을 주는 보물'이라는 이름의 뜻처럼 많은 이들에게 '행복'을 주었던 푸바오가 이날 중국으로 떠난다. 이별은 처음부터 전제였다. 성 성숙기에 도래한 4살 푸바오는 중국과의 계약 기간에 따라 반환된다.
깊어지는 아쉬움 속 그동안 푸바오에 대한 국내 팬들의 사랑이 얼마나 대단했는 지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우행시)을 되돌아 봤다.
◇ 사람에게 받은 상처, 푸바오로 치유푸바오에 열광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푸바오는 2020년 7월20일 '국내 최초'로 자연 번식으로 태어났다. 2014년 시진핑 주석 방한 이후 에버랜드로 들여온 러바오(아빠), 아이바오(엄마)의 첫 새끼다.
'국내 최초'라는 수식어도 중요하지만, 푸바오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들이 다양하다. 전 국민을 공포에 몰아넣었던 코로나19 팬데믹에 태어난 푸바오는 하나의 '힐링 탈출구'였다.
실제 강철원 사육사는 올해 1월 중순 <뉴스1>과 만난 자리에서 "전 국민이 힘들었던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푸바오가 태어나면서 많은 이들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면서 "랜선으로 엄마, 아빠, 이모, 삼촌, 언니, 오빠가 되어서 감정 이입을 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에 더해 푸바오와 사육사들의 관계를 보며 인간관계 속 스트레스, 감정적으로 당한 아픔을 치유하는 이들도 많았다.
푸바오 덕후(광적인 팬)를 자처하는 서울 거주 김다영 씨(34)는 "사육사와 교감이 잘 되는 것을 보면서 푸바오는 판다가 아닌 하나의 인격체, 사람 아기, 어린이 같았다"며 "푸바오를 떠나보내는 심정은 잘 키우고 있는 강아지와 중간에 생이별해야 하는 지경의 느낌"이라고 말했다.
◇에버랜드, 일 잘하네?푸바오 팬들이 '덕질'에 적극적일 수 밖에 없던 이유로 공통적으로 꼽는 것은 에버랜드가 생산해 내는 '다양한 콘텐츠'다. BTS가 글로벌 스타로 성장하고 유지할 수 있는 주요 요인으로 꼽히는 '끊임없는 소통'과 같은 맥락이라 볼 수 있다.
에버랜드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주기적으로 푸바오 관련 콘텐츠를 생산하고 '구매 욕구'를 절로 부르는 책, 굿즈(판촉물) 등을 선보이고 있다.
공식 유튜브 채널에 매주 월, 금요일 주 2회 푸바오를 비롯한 판다 가족 관련한 영상을 게시했다. 이에 올해 2월15일 기준 에버랜드 공식 유튜브 채널을 테마파크 업계 최초로 누적 조회 수 5억 회를 돌파한 바 있다. 지난해 7월엔 업계 최초로 구독자 수 100만 명을 넘었다. 2일 기준으로 132만 명을 기록했다.
그뿐만 아니라 에버랜드 공식 블로그에 강철원 사육사가 푸바오가 태어났을 때부터 올해 2월 중순까지 약 1년에 걸쳐 작성한 '아기판다 다이어리'를 공유하기도 했다.
푸바오와 관련 책과 카카오톡 이모티콘은 1위 행진을 이어갔다.
서점가에선 '푸바오 열풍'이었다. 에버랜드가 지난 2021년 7월 '아기 판다 푸바오'를 시작으로 출간한 총 4권의 포토에세이는 모두 베스트 셀러에 이름을 올렸다.
예스24에 따르면 올해 2월에 출간한 강철원 사육사의 첫 에세이 '나는 행복한 푸바오 할부지입니다'는 예약판매 하루 만에 종합 베스트셀러 5위에 오르며 인기를 끌었다.
지난 달 13일엔 에버랜드의 판다 가족 테마 카카오 이모티콘 시리즈가 4회 연속으로 공개 하루만에 인기순위 1위에 오르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지난해 11월 중순 서울 여의도 더현대에서 진행한 '푸바오 팝업 스토어'는 매출 10억 원을 돌파하며 그야말로 '대박' 났다. 푸바오가 태어났을 때 몸무게인 197g을 기념해 제작한 한정판 고급 가죽 키링 197개는 개점 당일 완판됐다.
◇ '똥'이라도 싸줘서 고마워
푸바오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팬들의 방법은 아이돌 팬 못지않다. 심지어 다소 혐오스러울 수 있는 '똥'과 관련해서 실시간 정보가 공유된다.
한 누리꾼은 "똥 싸는 것도 귀엽고 못 싸면 안타깝고 얼굴에 똥 묻히고 굴러도 귀엽다"며 푸바오에 대한 무한 애정을 드러냈다.
온라인 커뮤니티엔 중국으로 떠나는 푸바오의 안녕을 기원하는 이들의 인증 사진도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한 사찰에 '푸바오'를 위해 금등을 단 누리꾼은 "앞면엔 푸 이름, 뒷면엔 푸바오 중국가서 좋은 사육사 만나 건강하고 행복하길 기원한다는 축원문을 써서 금등을 달았다"며 "살아 있는 한 계속 달아줄 것"이라고 전했다.
무속인이라는 다른 누리꾼은 푸바오와 작별로 힘들어하는 이들을 위해 "이모, 삼촌들의 염원을 가득 담은 초를 켰다"며 "책임지고 푸바오를 위해 열심히 기도하겠다"며 신당 사진을 공유하기도 했다.
◇ 같은 실수 반복하지 않을래…쌍둥이 덕질 이어져푸바오에 대한 사랑은 지난해 7월 7일 태어난 쌍둥이 여동생 루이바오, 후이바오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푸바오 '덕질'을 늦게한 팬들은 나중에 쌍둥이 판다들을 떠나보낼 때 후회하지 않기 위해 에버랜드에 자주 방문한다.
올해 1월4일부터 판다월드 나들이에 나선 쌍둥이 판다 루이바오, 후이바오는 귀여운 외모와 앙증맞은 행동으로 팬들로부터 많은 사랑과 관심을 받고 있다.
태어날 당시 각각 180g, 140g에 불과했던 쌍둥이 판다는 생후 약 8개월이 지난 현재(3월 중순 기준) 몸무게가 20kg으로 늘어나며 폭풍 성장 중이다.
에버랜드는 판다뿐 아니라 동물원 내 다양한 동물들을 재조명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준비 중이다.
에버랜드 관계자는 "반려동물 인구 1500만 시대를 맞아 판다 외에도 레서판다, 아기 기린, 호랑이 남매 등 다양한 동물 영상들을 보며 교감하고 힐링과 위로를 받는 팬들이 증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3월부터 푸바오 가족과는 다른 매력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레서판다'도 자연 번식을 위해 합사 중이다. 세마리의 레서판다 가운데 '레시'(수컷)와 '레아'(암컷)의 자연 번식을 시도한다.
한편, 푸바오는 이날 오전 10시 40분 에버랜드를 출발해 인천국제공항까지 반도체 수송에 이용하는 특수 무진동차로 이동하며 전세기를 타고 중국으로 떠난다.
이와 관련해 에버랜드는 작별을 아쉬워하는 팬들을 위해 푸바오와 배웅의 시간을 갖는다. 푸바오가 탑승한 차량은 길가에 서 있는 방문객 사이로 판다월드부터 장미원까지 천천히 이동할 예정이다. 다만 자동차 내부에 있는 푸바오를 직접 만나볼 수는 없다.
seulbi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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