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멘트값 내려라" vs "우리도 죽겠다"…건설 불황에 갈등 임계점

건설업계 "시멘트 가격 1만원 내려라"…"中 시멘트 늘리겠다" 압박도
시멘트社 "IMF급 침체에 전기료 오르는데…적자 내란 거냐" 울상

레미콘 공장에 믹서트럭이 줄지어 세워져 있다./뉴스1 ⓒ News1 장수영 기자

(서울=뉴스1) 최동현 기자 = 국내 건설업계와 시멘트업계가 시멘트 가격을 놓고 얼굴을 붉히고 있다. 건설사들이 유연탄 가격 하락을 이유로 시멘트 가격을 낮춰달라고 요구하면서다. 건설경기 불황으로 전후방산업이 모두 쪼들린 상황이라 시멘트 가격 협상이 '제로섬 게임' 양상으로 전개되는 분위기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대한건설자재직협의회(건자회)는 최근 쌍용C&E 등 주요 시멘트 제조사 7곳과 한국레미콘공업협회, 한국레미콘공업협동조합연합회에 공문을 보내 "이달 말 시멘트 가격 협상을 위한 자리에 참석해 달라"고 요청했다. 지난 6월 같은 내용의 공문을 보낸 지 3개월 만이다.

건자회는 시멘트 가격을 톤당 1만1000원 인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현재 시멘트 평균 가격은 톤당 11만2000원인데, 10만1000원으로 10%가량 낮추자는 것이다. 시멘트 원가의 30%를 차지하는 유연탄 가격이 최근 2년 새 60% 넘게 떨어졌다는 게 주된 근거다.

실제 유연탄 가격은 2022년 하반기 톤당 444.53달러를 찍었다가 내림세를 보이더니 지난달엔 144.76달러까지 떨어졌다. 원가 부담이 줄어든 덕에 쌍용C&E, 성신양회, 한일시멘트 등 주요 시멘트 제조사의 상반기 영업이익이 크게 늘었다는 게 건자회의 논리다.

건설경기 침체 속에서 시멘트사들만 '나 홀로 호실적'을 낸 모양새라 가격 협상의 주도권을 일단 건설사들이 쥔 분위기다. 가격 인하를 통해 업계 고통을 분담하라는 취지다. 급기야 건설업계는 시멘트 가격을 낮추지 않으면 중국산 시멘트 수입을 늘리겠다고 으름장까지 놓고 있다.

시멘트업계는 "속사정을 모르는 이야기"라며 울상이다. 지난해 시멘트 가격 인상 영향으로 영업이익이 증가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일시적 반등'에 지나지 않고, 오히려 올해 들어 시멘트 출하량이 크게 줄어 일부 업체는 설비 가동을 중단하는 등 비상체제라는 설명이다.

한국시멘트협회에 따르면 올 상반기 시멘트 생산량은 2274만 톤, 내수 출하량은 2284만 톤으로 전년 동기보다 각각 12.6%, 12.3%씩 감소했다. 반면 시멘트 재고는 126만 톤으로 전년 동기 대비 15.6% 증가했다. 시멘트 반제품인 클링커 재고는 무려 78.7% 급증했다.

시멘트업계는 향후 3년 내에 연간 내수 출하량이 역사적 최저점인 4000만 톤대로 떨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평시 연간 출하량(5000만 톤)보다 약 20% 줄어든 규모로, 4400만 톤을 찍었던 1997년 외환 위기(IMF) 당시에도 경험하지 못했던 '데스벨리'(Death Valley)를 걱정한다.

시멘트 원가의 30%를 차지하는 전기요금 문제도 있다. 올 하반기 전기요금이 오르면 원자잿값 하락 효과도 무용지물이다. 업계 관계자는 "시멘트 제조 원가에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전기요금이 오르면 수요 하락에 더해 실적 낙폭이 더 커질 수 있다"고 토로했다.

결국 시멘트 가격 협상은 서로 물러설 수 없는 '벼랑 끝 줄다리기'로 흐를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시멘트사) 이익이 늘었다고 적자를 감수하고 가격을 낮추란 것은 난처한 얘기"라며 "중국산 시멘트까지 (압박용 카드로) 언급하는 것은 공멸하자는 말밖에 더 되겠나"라고 했다.

dongchoi89@news1.kr